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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아베의 일본, 불량국가의 길을 걷는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1848)은 “유럽에는 지금 자본주의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 우리는 마르크스를 패러디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지금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날뛰고 있다.” 1952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점령통치가 막을 내린 날을 기념하는 이른바 주권회복의 날 행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국왕 부부 앞에서 신들린 듯 두 손을 수직으로 치켜들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였다. 아베는 축사에서 그가 구상하는 일본의 모습을 선포했다. “우리는 일본을 전 세계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강하고 튼튼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



 아베의 강하고 튼튼한 일본에 세계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가. 그런 일본은 이웃 나라들을 전율케 하고 세계인들에게 고강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일본이요, 1930~40년대 아시아를 잔악하게 짓밟던 군국주의 일본일 뿐이다. 아베의 편협한 민족주의 노선은 그의 역사 부정의 연장선에서 나온다. 그는 “침략의 정의(定義)는 학계에서나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어느 나라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달렸다”(4월 23일 참의원 답변)는 황당한 궤변으로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과 중국과 동남아를 침략했던 객관적인 사실을 부인한다. 그건 일본 국민에 대한 우민(愚民) 정책이다. 과거의 잘못에 눈감는 자는 그 잘못을 다시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국제적인 상식은 말할 것도 없고 선악을 구별하는 최소한의 윤리기준도 갖추지 않은 사람이다. 아베의 자폐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사과한 고노 담화(1993)와 일본의 침략과 지배로 고통을 받은 아시아인들에게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를 부정하는 그의 도덕적 품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치유가 어려워 보인다. 기생집 많은 한국에서 매춘은 일상적인 것이고 위안부는 사기꾼이 쓴 책 때문에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아베는 유례가 드문 도덕적 허무주의자다. 게이샤 하우스가 많던 일본은 매춘 천국이었던가.



 우리는 아베의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부정에만 반발하느라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바탕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의 존재를 잊고 있다. 무라야마 담화는 사죄의 대상이 한국인이 아니라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이다. 그래도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그 담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무라야마 담화에 비해 김-오부치 공동선언은 구체적으로 한국인을 상대로 반성하고 사죄한다. 공동선언 제2항이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우리는 아베에게 자민당의 보수 본류인 오부치의 반성과 사죄도 부정하는가를 추궁해야 한다. 골수 보수우익에다 단세포적인 유형의 인간 아베가 사회민주주의자 무라야마의 정치적 성과를 말살하는 것은 보수의 본능적 반응이다. 그러나 자민당의 정통 계보를 잇는 선배 총리 오부치가 서명한 김-오부치 공동선언에는 어떤 입장인가를 물어야 한다. 아베는 우리가 침묵하는 것을 고맙게 알고 김-오부치 공동선언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가 만약 김-오부치 공동선언까지 부정한다면 한·일 관계는 상당기간 복원이 불가능할 것이다. 방대하고 가공할 사회·정치세력인 ‘일본회의’라는 전국 조직이 아베의 군국주의 노선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한(본지 5월 1일자 1면) 아베의 장기집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표현의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면서 내용이 구체적인 김-오부치 선언을 승계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아베의 딜레마다.



 아베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여 정식 군대와 상징이 아닌 국가원수로서의 ‘천황제도’가 부활된 일본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야망에 포획되어 국제협약과 보편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망동(妄動)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높은 수준의 문명·문화국가 일본을 고립된 불량국가로 후퇴시키고 있다. 그래서 세계 여론이 아베의 국수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우리 시민사회가 전 세계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다시 아시아 평화를 교란하는 아베의 반시대적인 야망과 그를 지원하는 ‘일본회의’의 정체를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아직은 아베의 천박한 국수주의적 선동에 물들지 않은 일본인들에게도 직접 호소해야 한다. 북한 문제로 한·미·중과의 정책공조가 절실한 시기에 아베가 반동적인 노선을 고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 김정은을 고무하는 것임을 널리 인식시켜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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