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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아베가 아무리 떨어뜨려도 '1달러=100엔' 주저하는 엔저

달러당 99.51엔(4월 10일), 99.53엔(11일), 99.5엔(21일), 99.47엔(25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의 최근 엔화가치 움직임이다. 일본은행이 엔화를 마구 풀어대는데도 달러당 100엔의 벽을 좀체 뚫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장중 99.94엔까지 이르렀으나 100엔 돌파에는 끝내 실패했다. 그렇게 몇 차례 문턱에서 주저앉더니 급기야 2일엔 97엔대까지 밀렸다. 금세 깨질 것만 같던 ‘1달러=100엔’이 마지노선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주요 20개국(G20)조차 용인한 엔저(円低)에 왜 브레이크가 걸린 걸까. 이성적으론 마땅한 설명을 찾기 어려운 요즘 시장 상황을 당사자인 외환딜러들은 감성(센티멘트·sentiment)으로 풀이한다.



엔화 가치, 90엔대서 묶인 까닭
연일 99.51엔, 99.53엔, 99.5엔 …
'100엔 시대' 심리적 부담
외환 딜러 99엔대서 엔화 매수

 지난달 24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장중 엔화가치가 달러당 99.77엔까지 올랐다. 99.38엔에서 시작한 상승세가 100엔을 가뿐히 넘어설 듯했다. 딜러들의 눈과 귀는 모니터에 집중됐다. 100엔이 한 번 무너지면 엔화가치 하락이 가속화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문, 그러니까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겠다’는 요청이 쑥 들어갔다. 대신 엔화 매수 주문이 쏟아졌다. 결국 엔화가치는 99.35엔으로 되돌아갔다. 외환은행 김중석 딜러는 “달러당 엔화값이 100엔에 근접하자 전 세계 외환딜러들이 ‘이 정도면 싸다. 사두자’라는 생각에 엔화를 많이 사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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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싸다’는 딜러들의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통화가치는 상대적이고, 숱한 변수가 작용한다. 분초를 다투는 외환시장에선 딜러가 달러당 몇 엔이 적정가치인지를 정밀히 계산할 여유가 없다. 쏟아지는 뉴스에 기반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적정 엔화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이 판단에 큰 영향을 주는 게 숫자다. 홈쇼핑에서 파는 2만9900원짜리는 단 100원이 비싼 3만원짜리보다 훨씬 싸게 느껴진다. 외환딜러이기에 앞서 사람인 외환시장의 거래자에게도 이런 심리는 똑같이 내재돼 있다. 하물며 90엔대라는 두 자릿수에서 100엔대라는 세 자릿수로 바뀌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엔화가치가 100엔에 근접하면 딜러들의 심리적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외환·파생상품 거래 전문회사인 삼성선물의 정미영 리서치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달러당 100엔을 돌파하는 것은 99엔에서 불과 1엔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많은 외환딜러들이 ‘100엔은 넘기 힘든 장벽’으로 인식하고는 그에 맞춰 환거래를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100엔을 돌파하기가 어려워진다.”



 100엔이 외환딜러들에게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엔 지금과 다른 ‘역방향 마지노선’으로 작용했다. 2008년 엔-달러 환율이 100엔 초반일 때의 일이다. 이따금씩 엔화가치가 오르면서 달러당 90엔대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100엔의 벽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해 3월 중순에 2주 정도 99엔대에 머물기는 했다. 그러나 이내 100엔대로 복원됐다. 요즘 달러당 100엔이 엔화가치 추가 하락을 막는 지지선이라면, 당시에는 그 이상 가치가 오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저항선이었던 것이다. 달러당 엔화가치는 그해 9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진 뒤에야 본격적인 100엔 아래, 즉 두 자릿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1달러=100엔의 마지노선’은 일종의 신앙처럼 자리 잡았다. 더더욱 이런 믿음을 굳혀주는 것은 최근 10년간 엔-달러 환율 평균이 100.25엔이라는 사실이다. 10년 동안 환율은 100엔을 가운데 놓고 70엔에서 120엔대를 오갔다.



 앞으로 환율은 어떨까. 달러당 100엔이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 될까. 그렇지는 않다. 과거를 보면 100엔이 강력한 저항선·지지선으로 작용했으나 언젠가는 무너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말께부터 100엔대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려면 넘어야 할 또 다른 심리 장벽이 있다. 일본 소비자와 기업들의 센티멘트다.



 지금 일본에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행이 지난 3월까지는 매달 3조4000억 엔(약 38조원), 4월부터는 월 7조 엔(약 80조원)씩 돈을 풀어대는데도 물가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0.9% 하락했다. 엔화가치가 그만큼 올랐다. 이래서야 달러당 100엔에 접어들기는 난망이다.



 돈을 찍어대는데도 물가가 떨어진다는 건 돈이 돌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증권 김승현 투자전략부장은 “일본에서 늘어난 통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 시중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은 대부분 지급준비금 성격이다. 고객들이 예금인출을 요구할 때에 대비해 쌓아놓는 돈이다. 이게 늘어난다는 건 저축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소리다. 일본은행이 소비심리를 자극해 경기를 부양하려고 열심히 돈을 찍어내는데, 막상 일본 소비자들은 풀린 돈을 쓰지 않고 저축을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굳어진 습관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투자를 해서 고용을 늘리고 이게 소비로 이어져야 경기가 살아나고 물가가 오를 텐데 꿈쩍을 않는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20년간 버블 붕괴의 늪에서 헤어날 만하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거기서 다시 헤어나오려는 찰나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들이 미래와 투자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사그라진 듯하다.”



 과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를 한 기억이 쌓여 ‘트라우마’를 형성했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 외환딜러와 일본 소비자·기업의 센티멘트 말고도 엔화가치 추가 하락을 막는 요소가 있다. 일본 기업의 호황을 예감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사재기다. 외국인들은 4월 셋째주에만 일본 주식 160억 달러(약 17조6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한편에서 일본 기관투자가들은 전에 투자했던 해외 자산을 팔아 차익을 챙기고 있다. 외국인이 엔화 표시 자산을 많이 사고, 일본 기관이 달러 자산을 파는데 엔 약세가 계속 진행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양적완화의 수위를 조절하는 올 연말께 100엔대 환율이 정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미영 센터장은 “환율 마지노선은 무너지면 봇물 터지듯 하는 성향이 있다”며 “100엔 선을 완전히 넘으면 순식간에 환율이 달러당 105엔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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