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서소문 포럼] 자유학기제, '열린교육' 꼴 안 나려면

강홍준
논설위원
박근혜정부는 우리 교육 역사에서 한 번도 시행하지 못했던 엄청난 교육실험을 하고 있다. 올해 일부 중학교부터 시행하는 자유학기제가 그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알기 위해 공약을 만든 교수와 관료들을 대상으로 취재해 보니 ‘엄청나다’는 표현 외엔 갖다 붙일 다른 용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는 두 가지다. 먼저 ‘~로부터의 자유(free from~)’이다.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이어지는 입시, 시험, 평가 부담에서 한 학기만이라도 숨통을 터주자는 자유다. 또 다른 하나는 ‘~를 향한 자유(free to~)’다. 중학교 시절 여유를 갖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 자신을 성찰해 보자는 자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유의 두 가지 의미는 독일의 좌파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나온 자유의 개념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프롬은 앞선 자유를 소극적 자유로, 뒤의 자유를 적극적 자유로 유형화했다.



 시험이나 입시에서 벗어나는 자유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일 것이다. 그래도 속박이 사라지니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자유는 지금껏 자유를 구가한 경험이 없던 중학생에게, 한 학기 동안 뭘 해야 할지 프로그램이 없는 학교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줄 것이다. 이미 불안이란 그림자는 학교 현장을 엄습하고 있었다. 다른 학교에 비해 제일 먼저 자유학기제 시범 실시를 해야 하는 연구학교 교장이나 교육청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봤다.



 “자유학기제 기간 동안 시험은 어떻게 되는 건가.”(A교장)



 “교육부가 빨리 교육청에 시행 매뉴얼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교육청이 학교에 시행 지침을 내려보낼 수 있다.”(도교육청 B과장)



 학교 교사가 아마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매뉴얼도, 교안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상당수 학교는 중앙정부가 짜놓은 교육과정이란 지도 밖을 행군한 적이 없다. 그래서 학교는 위를 향해 어서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시행 지침을 보내 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다 자유학기제는 교육학자들이 사용하는 추상적인 용어와 이상적인 모델로 가득찬 매뉴얼로 재해석될까 걱정스럽다. 이런 자료는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학교로 내려갈 것이다. 이 상태가 되면 교육당국과 학교 현장은 완전히 따로 노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청소년 단체의 한 관계자는 “위에서 아래로 진행하는 자유학기제는 시범사업만 실컷 하다 결국 실패로 끝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관적인 예측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자유학기제가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열린교육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을 정책당국자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열린교육은 90년대 초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뜯어고칠 획기적 대안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청와대가 열린교육 확산에 나서면서 사달이 났다. 모든 학교가 열린교육의 실체도 모른 채 열린교육 실현을 위해 교실을 뜯어고쳤다. 토론식 수업을 하지 않는 교사는 마치 무능한 교사인 양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도 학교는 교육청이나 교육부에 매뉴얼이나 자세한 시행지침을 달라고 했다.



 결국 자유학기제의 성패는 두 번째의 자유, ‘~를 향한 자유’를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자유학기제의 취지에 맞게 이를 선택한 학생, 학교가 참여와 체험을 스스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뭘 하고 싶은지 탐색하고, 물어보고, 계획하고, 체험하는 게 진정한 자유의 행사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이 이 기간 동안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6개월을 낭비하느냐고? 이렇게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어른이 되고서도 스스로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자유학기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불안감을 이겨내는 인내심이 우선 필요하다.



강홍준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