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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생겨도 맛만 좋아 ···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한솥밥'

감자계란샐러드빵을 만들고 있는 조경규(오른쪽 첫째)씨 가족. 부인 방현선씨와 남매 준영·은영(왼쪽부터) 모두 놀이시간처럼 즐거워했다. 준영이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과정인 `마요네즈 짜기`를 하게 돼 특히 신이 났다.


요리로 사랑 키우는 웹툰 작가 조경규씨 가족



엄마가 길쭉길쭉 잘라 놓은 당근을 깍둑썰기 하는 은영(7)이의 손놀림이 야무지다. 중간에 한 개씩 슬쩍 입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아이, 달아.” 맛도 좋은 모양이다. 옆에서 준영(6)이는 삶은 계란 껍데기를 까고 있다.



계란을 주먹에 쥔 채 “얍” 기합소리를 넣고 힘을 줘 껍데기를 부수는 독특한 방식이다. 계란 속까지 뭉그러지지 않도록 힘 조절을 제법 잘한다. 음식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 ‘차이니즈 봉봉 클럽’ 작가 조경규(37)씨 가족의 요리시간.



그 자체가 놀이고, 교육이고, 이벤트다. 조씨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먹는 일이다. 동갑내기 아내 방현선씨와 은영·준영 남매, 이렇게 네 사람은 똘똘 뭉쳐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사 먹는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조씨의 서울 서교동 집을 찾아갔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 좋은 요리를 추천받기 위해서였는데, 덤으로 들은 얘기가 더 많았다.



밥과 빵과 국수와 과자와 돈가스와 샌드위치와 장어구이와 만두 등을 함께 먹으며 탄탄하게 다져 놓은 ‘식구애(食口愛)’ 이야기였다.





평범한 일상 음식에도 가족의 추억 가득



조경규 작가가 그린 가족 그림.
조씨는 평범한 일상 음식을 두고 “경이롭다”고 말한다. 음식마다 그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조씨에게 무생채는 초등학교 때 친구 도시락에서 처음 먹어 보고 너무 맛있어 엄마에게 보여 줄 ‘샘플’로 한 가닥 빈 도시락에 담아 갔던 반찬이었고, 식혜는 정초마다 형이랑 둘이 ‘건배’하며 마셨던 음료였으며, ‘닭다리’는 통닭 먹고 싶다고 우는 준영이를 달래 준 과자, 병어는 은영이가 마트에서 처음 보고는 “애기 얼굴같이 귀엽게 생겼다”며 “오늘 구워 먹자”고 말해 아빠를 놀라게 했던 생선이다.



이렇듯 음식 이야기는 한솥밥 먹는 가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아내와 처음 영화관에서 데이트하던 날을 떠올리면 치즈에 찍어 먹은 나초의 고소한 맛이 따라온다. “영화를 보며 나초를 아작아작 먹던 아내의 모습이 귀여워 좋은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하니 나초는 명실공히 가족의 탄생에 기여한 음식이다. 2008년 6월 20일 저녁식사로 먹었던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잊지 못한다. 3년 거주 계획으로 베이징(北京)으로 이사했던 첫날 저녁이었다. 집에는 먹을 게 전혀 없었다. 아내와 25개월, 9개월 된 두 아이를 집에 남겨 둔 채 조씨 혼자 무작정 베이징 거리를 헤매며 식사 거리를 찾았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상황에서 눈에 띈 간판 ‘서브웨이’는 여간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조씨는 그날 식사를 “익숙한 체인점 음식을 낯선 외국에서 먹으니 엄마가 해 준 ‘가정식 백반’처럼 입에 착착 감겼다”고 기억했다.



조씨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단다.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는 퇴근할 때 꼭 집으로 전화를 해서 ‘오늘 반찬 뭐냐’ 물으셨어요. 어머니가 부지런히 저녁 준비하시는 동안 아버지는 저녁 메뉴를 기대하며 귀가하셨던 거죠. 그렇게 만나 온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참 따뜻하게 남아 있어요.”



따뜻한 밥상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일까. 조씨는 하루 세끼를 모두 가족과 함께 먹는 가장이 됐다. 2002년부터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 겸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줄곧 집을 작업실로 썼기 때문이다. 과자 한 봉지를 뜯어도 네 식구가 모두 나눠 먹는 게 이 집 풍경이다. 몰래 먹기도 쉽지 않다. 음식을 함께 만드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과다. 은영이가 카레에 들어갈 채소를 처음 버터칼로 자른 게 다섯 살 무렵이었다. 조씨의 아내 방현선씨는 “아이들이 평소 안 먹던 채소도 자기가 자른 것은 잘 먹는다”고 말했다.



조씨 가족에게 ‘무엇’을 먹는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길거리 음식도 먹고, 라면도 먹고, 과자와 통조림도 꺼리지 않고 먹는다. 단, 뭐든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즐겁게 먹어야 한다는 소신은 분명하다.



“과자가 아이들 몸에 나쁘다고 안 사 주는 부모도 있다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는 데 가끔 먹는 과자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요? 엄마·아빠와 함께 하드나 사탕·초콜릿 등을 즐겁게 먹은 추억이 아이들을 두고두고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데요.”



아빠 조씨의 음식 철학이 맞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은영이가 한마디 거든다.



“방과후 수업 끝나고 나오는데 엄마가 기다리시더라고요. 집으로 오는 길에 떡볶이집이 있거든요. 엄마하고 둘이 서서 떡볶이 위에 튀김을 올려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래서 엄마가 더 좋아졌어요.”



4인 4색 식성, 서로 챙겨주는 끈끈함



샐러드빵 재료를 들고 있는 은영과 준영. 요리할 때마다 둘은 `커플 앞치마`를 입고 나온다.
매일 한자리에 둘러앉아 먹는다고 가족들의 식성이 같은 건 아니다. 사소하게 조금씩, 제각각이다. 계란요리만 해도 아빠와 은영이는 계란 프라이를, 엄마는 계란말이를, 준영이는 삶은 계란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우유도 다르다. 아빠는 초코맛 우유, 엄마는 바나나맛 우유, 은영이는 딸기맛 우유, 준영이는 흰 우유를 좋아한다. 과자 취향도, 도넛 취향도, 채소 취향도 모두 4인 4색이다.



가족이 서로 다른 식성을 알아 주고 챙겨 주는 과정은 끈끈한 정을 확인시키는 시간이 된다. 초코 도넛을 좋아하는 준영이가 누나를 생각하며 분홍 하트 모양 도넛을 시킨다든지, 은영이가 가게에서 ‘초코송이’ 과자를 보고 “이거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건데”를 외치며 골라온다든지 등의 사례가 생길 때마다 부모 마음은 흐뭇해졌다. 식성이 달라 좋을 때도 있다. 삼계탕 등 닭요리를 먹을 때다. 엄마 방씨는 “남편과 은영이는 다리와 날개 부분을 좋아하고, 나와 준영이는 담백한 살코기를 좋아하니 한 마리 시켜 사이좋고 알뜰하게 나눠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부모의 식성을 닮았다는 걸 확인할 때도 신기하면서 어쩐지 흐뭇하다. 오이를 못 먹는 아빠의 독특한 식성을 그대로 닮은 준영이는 베이징오리구이를 먹을 때도 오이는 빼고 먹는다. 또 복숭아를 통째로 들고 팔꿈치로 과일즙을 줄줄 흘리며 먹는 아이들 모습에서 부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사실 식습관은 유전이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 내는지도 모른다. 조씨의 아버지는 어려운 식재료 손질을 도맡아하셨단다. “갈치면 갈치, 파인애플이면 파인애플, 멜론이면 멜론 등을 척척 손질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아빠는 정말 대단하시다’ 생각했다”는 게 조씨의 어린 시절 얘기다.



그 아버지를 보고 배운 조씨는 수박 하나를 자를 때도 ‘쇼’를 한다. 아이들을 앞에 앉힌 뒤 시간을 질질 끌면서 “으다다다∼” 요란스럽게 외치며 칼집을 내고 온 힘을 다하는 듯 맨손으로 반을 가른다. ‘쩍’ 소리를 내고 수박이 갈라지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준영이는 “아빠 진짜 힘세다. 누나도 봤어?”라며 흥분한다. 이마에 땀을 훑는 척 마무리하면서 조씨는 ‘이 맛에 산다’ 느낀단다.



행복한 음식 공동체는 이렇게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만들어진다. 음식에서 맛보다, 영양소보다 중요한 게 함께 먹는 부모의 역할 아닐까. 온 가족이 함께 만든 샐러드빵을 오물오물 씹어 먹는 은영이·준영이의 달콤한 표정이 그 증거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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