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1965·2013 … 박 대통령의 '수출 DNA'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착을 가졌던 ‘수출진흥회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했다.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주재했던 이 회의를 박 대통령이 34년 만에 이어받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1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은 박 전 대통령이 1970년 6월 수출진흥회의에 참석해 보고를 받는 모습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남덕우 재무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박정희 65년 첫 수출진흥회의
재임 중 100배 이상 성장 일궈
박근혜, 회의 되살려 정례화



 박 대통령은 두 손으로 빨래 짜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 장관, 쥐어짜지만 말고….”



 물가안정을 위해 긴축재정을 하더라도 수출을 늘릴 수 있도록 대기업엔 자금을 지원하거나 세제지원을 해 줄 길이 없겠느냐는 게 당부의 요지였다. 당시 남 장관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청와대를 나왔다고 회고록에 밝히고 있다.



 “24시간 수출만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65년부터 ‘월례 수출진흥회의’를 열어 직접 수출을 챙겨왔다. 이 회의는 69년부터 전경련·무역협회장단 등 100명이 넘는 인사가 참여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로 진화했다. 박 전 대통령은 79년 10월 26일 서거하기 전까지 150여 차례 개최된 회의를 거의 모두 직접 주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수출진흥회의를 마지막으로 주재한 지 34년이 지난 2013년 5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었다. 수출진흥회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110분간 진행된 회의에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10명의 장관과 정·재계 인사 180여 명이 참석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 김관영 의원도 지역구(전북 군산) 규제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멤버로 참여했다. 아버지처럼 박 대통령도 이날 직접 사회를 보면서 회의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무역과 투자 진흥은 특정 부처나 정파를 넘어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며 “기업의 애로사항을 확실히 풀어주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을 이뤄주는 것이 바로 정부의 경제 살리기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규제완화”라며 “정부는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회의는 기업인들이 애로사항을 얘기하면 장관들이 답변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른바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분쟁 조정)’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장의 불편함과 애로사항 250건이 보고됐다. “엔화 대책을 마련하는 게 곧 중견기업에 대한 수출지원 대책이다” “특수장비차를 수출하는데 바이어에게 보여주려고 해외에서 쇼를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예산을 지원해달라” 같은 요구가 이어졌다. 중소기업의 수출지원 대책과 관련해선 즉석에서 50건의 해결책이 마련됐다.



 이날 무역투자진흥회의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과거의 수출진흥회의와 닮았다. 참석자 규모나 구성, 업계의 고충을 듣고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박정희정부에서 4년3개월간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수출진흥회의가 워낙 중요하다 보니 기업인과 경제단체장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고 항상 박 전 대통령이 회의를 마무리했다”며 “오늘 회의도 당시와 맥락이 똑같다”고 말했다. 경제기획원 출신의 황병태 전 주중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20대 청년이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수출을 하니까 상징적인 인물로 내세워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걸 강조했다”며 “김우중 회장이 수출진흥회의에 나와 일하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64년 1억 달러 수출을 돌파한 한국은 수출진흥회의가 시작된 지 12년 만인 77년 100억 달러 수출탑을 쌓았다. 10여 년 만에 100배의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 회의는 80년대엔 명맥만 유지하다 86년 이후 중단됐다.



 98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부활했지만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선 연 한두 차례 열리는 데 그쳤다. 박근혜정부는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분기별로 정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신용호·강태화 기자



[관계기사]

▶ 의료관광 온 외국인 묵을 '메디텔' 건립 허용

▶ 수출 엔진, 대기업 → 중소기업 … 50년 만에 바뀐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