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6) 박 대통령의 술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들과 자주 저녁을 했다. 반주는 막걸리 아니면 양주였다. 막걸리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의 일반 양조장에서 만든 보통 막걸리였다. 양주는 시바스 리갈 12년산이었다.



"비탁 한잔 하자" 손수 양은 주전자에 맥주 붓고 …
79년 수석들과 자주 저녁
"문경서 초등교사 하숙 때 맥주에 섞어 나눠 마셨지"

 1979년 봄께의 일로 기억한다. 그날 반주는 막걸리였다. 주흥이 오르자 박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



 “비탁 한잔 하자.”



 옆에 서 있던 검식관이 알아듣고 쏜살같이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커다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왔다. 노란 주전자 안에 이미 막걸리가 채워져 있었다. 박 대통령이 맥주병을 들더니 그 안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1978년 9월 20일 충북 옥천의 고(故) 육영수 여사 생가에 들러 쉬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오원철 청와대 경제 제2수석비서관(왼쪽)이 박 대통령에게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가운데 서있는 사람은 최광수 의전 수석비서관이고 박 대통령의 옆에 둘째 딸 근영씨가 앉아 있다. [중앙포토]
 마침 박 대통령 바로 옆에 앉았던 내가 말했다. “제가 (맥주를) 넣겠습니다.”



 그는 잘라 답했다. “아니, 이 사람아. 자네는 비법을 모르잖아.”



 박 대통령은 적당히 맥주를 부어 넣고 나서 일회용 나무젓가락 하나를 집었다. 쪼개더니 손으로 비볐다. 나무젓가락을 쓸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다. 나무젓가락 하나를 양은 주전자에 담갔다가 꺼냈다. 젓가락에 묻은 술을 입으로 맛보고 나더니 말했다. “으음. 됐네.”



 비어(맥주)와 탁주를 섞어 만든 비탁이 완성됐다. 모두 한 잔씩 따라 마셨다. 맛이 기가 막혔다. 옛날 시골에선 겨울이면 밀주를 담가 먹었다. 처음 술이 익어 용수를 넣으면 기포가 소리를 내며 올라온다. 한 잔 떠서 마시면 최고였다. 꼭 그 맛 같았다. 박 대통령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문경에서 초등교사로 하숙 생활을 할 때 동료 교사들 모두 맥주가 먹고 싶은데 그때 월급 가지고는 가당치가 않아. 맥주 두어 병을 사서 막걸리와 섞어서 비탁을 만들어 가지고 여럿이 나눠 마셨지.”



 세월이 지나 박 대통령 옆에서 곁눈으로 배운 비탁을 몇 번 만들어봤다. 그런데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비법을 몰라서인지, 입맛이 변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로얄 살루트 21년산
 1979년 7~8월 즈음. 박 대통령은 평소처럼 청와대 수석들과 함께 반주를 들며 저녁을 먹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박 대통령이 옆에 있던 검식관에게 말했다.



 “어이, 내 침대 머리맡에 보면 술병이 하나 있어. 그거 좀 가져오게.”



 검식관이 술병을 가지고 왔다. 처음 보는 술이었다. 병이 도자기로 돼 있었다. 21년산 로얄 살루트다. 검식관이 들고 내려올 때부터 이미 3분의 1 정도는 비어 있었던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은 술병을 들더니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한 잔씩 따르고 나에게 술병을 넘겼다. 멀리 앉아 있는 사람들에겐 내가 돌아가며 술을 따랐다.



 자리에 돌아가 한 잔을 조심스럽게 마셨다. 혀에 닿는 감촉과 술맛이 그만이었다. ‘이야. 이런 술도 있구나.’ 한 잔으로는 영 아쉬웠다.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계산을 시작했다. ‘아까 술병을 들어보니 3분의 1쯤 남았던데. 대통령과 경호실장·비서실장·수석까지 해서 10명 정도니. 잘 하면 나에게 한 잔이 더 돌아오겠구나.’



 박 대통령은 자기 혼자 그 술을 즐겼던 게 멋쩍었는지 해명을 했다.



 “이거 박준규(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가 외국에 다녀오다 사다 줬는데 내가 이걸 침대 머리맡에 두고 밤에 잠이 안 올 때마다 한 잔씩 따라 먹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맞은편 김계원 비서실장이 두 손으로 병을 들었다. “아, 각하. 이걸 올려다 놓겠습니다.”



 검식관이 그 병을 받아서 나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뭐. 그럴 거 있어. 그냥 들지”라고 말하면서도 검식관을 말리지는 않았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 황홀한 술을 다시 만난 건 3년 후였다. 1982년 김종호 건설부 장관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일행은 김 장관과 나, 김용휴 총무처 장관, 이범준 의원 네 명이었다. 바로 그때 그 술 로얄 살루트가 나왔다. 김 장관이 가져온 술이었다. 그날 넷이서 두 병을 마셨다. 이제 이 술이 그렇게 흔해졌나 싶어 놀랐다. 어쩌면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는지도 모른다.



정리=조현숙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