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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창의성은 일사불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형준
홍익대 교수·불문학
요즘 고(高)학년 강의실에 들어가 보면 여러 학번 학생들이 아주 고르게 잘 분포되어 있다. 심한 경우 04학번부터 11학번까지의 학생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해외 연수가 보편화되고 휴학을 하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전에는 함께 입학한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졸업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학번의 벽이 허물어진 채 함께 수업을 듣는다. 선후배 간의 벽을 허물고 소통할 기회가 더 많아진 셈이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다. 학생들 스스로 선후배 간의 관계가 이전만 못한 것 같다고 내게 가끔 호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통할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선배와 후배가 화합하고 소통하려면 선배는 선배끼리 후배는 후배끼리 어울리는 게 먼저다. 좀 어렵게 표현한다면 같은 학번끼리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된 이후라야 소통도 가능하고 화합도 가능하다. 그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니 모두 특색 없이 흩어진 모래알이 된다.



 요즘 ‘창조경제’가 대세다. 대통령이 그 단어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첨단 정보기술(IT)을 창조산업에 접목시켜 경제를 이끌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많은 정부 부처가 업무의 목표를 창조경제의 구현에 두겠다고 말한다. 외교부 장관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과학기술외교를 하겠다고 말하고 국방부 장관은 신무기체계 투자확대의 이유가 창조경제 핵심동력 육성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심지어 통일부 장관까지 창조경제를 들먹인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정부 부처가 그렇게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창조경제’가 완수되리라는 믿음을 전혀 주지 않는다. 그 단어를 남발하는 장관들을 보면서 본연의 얼굴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국방부 장관의 얼굴은 좀 근엄한 얼굴이다. 외교부 장관은 좀 점잖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장관들도 각자 가져야 할 얼굴이 있다. 그렇게 정부 부처의 색깔이 다 다르길 기대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모두 ‘창의경제’로 분칠을 한다. 본연의 얼굴이 있어야 비로소 창의성의 전제 조건인 소통이 가능해지고 융합이 가능해지건만 모두 같은 색깔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외교부 장관이나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안 나온다고 해서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통일부 장관이 점잖게 ‘나는 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테니 창조경제를 책임진 분들 잘 해주시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부 다른 부처와 손발이 안 맞는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공자가 말씀하셨다. 군자는 남들 따라 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되 열린 태도로 남들과 화합하고, 소인은 열심히 남과 닮으려고 애를 쓰지만 역으로 남들과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장관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열린 군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진정한 창의성이란 그런 열린 군자에게서 나온다.



 한두 마디 말실수한 것 가지고 ‘본연의 얼굴’ 운운한 것이 좀 지나치다는 감이 들긴 한다. 하지만 너도나도 창조경제 운운하는 장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 정부의 인사방침에 역시 문제가 있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논공행상이나 정치적 이유보다 일 중심으로 인사를 행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원칙이 너무 획일적이다. 일 전문가들을 맺어줄 접착제와 그들을 함께 버무려 맛을 내줄 소금이 안 보인다. 그러니 온통 대통령 눈치 보면서 남 따라하기 경쟁만 하는 사람들만 보인다. 일사불란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창의성은 일사불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에서 온다. 자율성을 갖되 큰 비전만 공유하고 열려 있으면 된다.



 하나만 더 덧붙이자. 창의성은 유연함에서 온다.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 모든 부처가 창의성을 모토로 하는 것은 균형 잡힌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창의성보다는 안정을 모토로 하는 부처도 있어야 한다. 국방부와 통일부, 외교부 장관의 입에서까지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심란해지는 이유다.



진형준 홍익대 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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