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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의 부시 vs 뜨는 클린턴 '가문의 맞짱' … 2016 판 커지나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공립학교를 다닌 소녀는 항상 선생님들한테 뭘 해도 남다르다는 칭찬을 받고 자랐다. 소녀의 꿈은 우주비행사였다. 열세 살이 되자 미 항공우주국(NASA)에 편지를 보내 어떻게 하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NASA의 답변은 간단했다. “우리는 여성 우주비행사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소녀가 처음 부딪친 ‘유리천장’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성별이 꿈을 제약하는 장애물은 될 수 없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미국인들 벌써 차기 대선 관심
당사자 출마 내비친 적 없지만
"첫 형제 대통령 vs 첫 부부 대통령"?
언론·지지자들 대결 군불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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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해 리처드 닉슨과 존 F 케네디가 맞붙은 대선 직후 ‘일리노이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소녀는 거리로 나가 재검표 요구 운동에 합류했다. 당시 소녀와 함께 구호를 외치던 이들은 아마 몰랐으리라. 이 소녀가 장차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고,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자리를 노리게 될지 말이다.



 텍사스 출신의 소년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며 자랐다. 상원의원 출신 할아버지에, 아버지는 소년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석유개발 사업으로 이미 백만장자의 부를 이뤘다. 명문 사립 기숙학교에 다닌 소년은 열일곱 살 때 인생을 바꿀 결단을 내린다. 멕시코에 건너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중남미 전문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소년은 미 대통령 후보로 나선 아버지를 위해 단상에 섰다. “저는 결코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매료돼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버지가 지금까지 제가 본, 그리고 앞으로 볼 사람 중 가장 훌륭한 분이기에 자신 있게 나선 것뿐입니다.” 하지만 당시 연설을 들은 이들은 아마 알았으리라. 이 청년이 장차 라티노가 가장 사랑하는 공화당 정치인이 되고, 백악관 주인 자리를 노릴 것이라고 말이다.



 이 소녀와 소년이 바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66)과 존 엘리스 젭 부시(60)다. 2016년 대선에서 맞붙을 양당의 유력 후보로 꼽히며 벌써부터 미 전역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3년도 더 남은 레이스에서 벌써 이들이 부각되는 이유는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대중은 이들의 피에 흐르는 ‘정치 DNA’에 주목하며 양대 정치 명문가의 빅 매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대감은 지난달 25일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기념관 헌정식에서 고스란히 표출됐다. 힐러리와 젭이 한 무대에 선 것이 행사에 참석한 5명의 전·현직 대통령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NBC방송은 ‘2016 프리뷰’, AP통신은 ‘부시가와 클린턴가, 텍사스에서 무대에 오르다’라는 제목으로 이들을 조명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헌정식 전날 밤 댈러스에서 열린 각기 다른 행사에서 연설을 했는데, 현장에는 이들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세를 과시했다.



 두 가문 중 먼저 명성을 쌓은 쪽은 부시 가문이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정치 명가인 케네디가와 비견될 정도다. 젭의 증조할아버지인 새뮤얼은 재력가로 명성을 날렸고, 할아버지 프레스콧은 코네티컷에서 상원의원(1952~63)을 지냈다.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이고,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그의 형이다. 젭 역시 플로리다 주지사(1999~2007)를 역임했다.



 부시 가문은 조지 W 부시까지 5대 연속 명문 예일대 출신이다. 프레스콧,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는 미 정·재계를 주무르는 거물들을 대거 배출한 예일대 비밀 클럽 ‘스컬 앤드 본스’ 회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하면 클린턴가는 신생 명문가라고 볼 수 있다. 빌 클린턴이 4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부상해 부인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오바마 행정부 국무장관으로 활약하며 입지를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클린턴가는 사실상 두 사람이 실력과 정치적 열정만으로 키운 자수성가 가문인 셈이다.



 빌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했고, 힐러리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 법학대학원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빌과 힐러리는 존 F 케네디, 마틴 루서 킹 등이 주도한 사회 변화를 보며 청소년기 때부터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워왔다. 특히 보수적 집안 출신에 당초 공화당을 지지했던 힐러리는 킹 암살과 베트남 전쟁 때 반전운동 등을 계기로 민주당으로 돌아서게 됐다고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에서 밝힌 바 있다.



 클린턴 가문의 이너 서클은 빌이 대학 졸업 무렵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 장학생으로 갔을 당시 만난 엘리트들과 예일대 법학대학원 동문들이 중심이다. 힐러리가 영부인으로 백악관에 있을 때 함께한 자문그룹 ‘힐러리랜드’ 등 이념적 동지들이 대부분이란 것도 특징이다.



 두 가문은 1992년 대선에서 처음 맞붙었다. 빌이 재선에 도전하는 조지 H W 부시를 저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재임하고 물러난 빌의 바통은 아들 부시가 이어받았다. 그 역시 재선에 성공했다. 뒤이어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에게 패해 클린턴가의 백악관 재입성은 불발에 그쳤다.



 그래도 아버지 부시가 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부통령이 된 것을 시작으로 힐러리가 올 초까지 국무장관을 역임한 것을 고려하면 두 가문은 30년 넘게 워싱턴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 언뜻 보면 라이벌로 비춰질 수 있지만 아버지 부시와 빌이 부자지간에 비유될 정도로 두 가문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AP는 설명했다.



 암살과 사고사 등 비운으로 얼룩졌던 케네디가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미 국민은 이제 두 정치 명문가를 응원하고 있다. 아직 힐러리와 젭 모두 명시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발표된 뉴햄프셔대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는 민주당 후보군 가운데 61%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확보했다. 바로 다음 날 나온 페어리디킨슨대의 공화당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는 젭이 14%로 3위를 차지했는데, 1위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18%)이나 2위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16%)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젭에게는 라틴계가 압도적으로 많은 플로리다에서 유일하게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공화당 정치인이라는 저력도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을 집중 분석한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40대 흑인 대통령’이라는 변혁 뒤 미 정계를 지배했던 ‘왕조’의 일원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백 투 더 퓨처’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예견했다. 2016년 두 사람의 맞대결이 현실화한다면 누가 당선되든 새 기록을 세우게 된다. 미국 최초의 ‘부부 대통령’ 아니면 최초의 ‘형제 대통령’이다.



유지혜 기자





부시가 vs 클린턴가 … 이름의 역사



조지 H W 부시의 본명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다. H W는 유력한 은행가였던 외조부 조지 허버트 워커의 이름에서 땄다. 조지 W 부시의 이름도 조지 워커 부시이지만, 두 사람은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부시 41’과 ‘부시 43’으로 더 유명하다. 젭의 아들 조지 P 부시의 조지는 할아버지, P는 상원의원을 지낸 증조부 프레스콧의 이름에서 따왔다.



 클린턴이라는 성 뒤에는 빌의 아픈 가족사가 숨어 있다. 빌의 친부 윌리엄 블라이드는 그가 태어나기 직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빌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정 폭력을 일삼던 계부 로저 클린턴의 성을 따르지 않다가 열네 살이 돼서야 이를 받아들였다. 힐러리는 결혼 뒤에도 처녀적 성인 로댐을 계속 쓰다 보수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빌이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된 1978년 이후 어쩔 수 없이 로댐 클린턴으로 성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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