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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시장은 이기적인 전쟁터 … 그래도 믿음 줘야 할 한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지난달 30일 채권시장은 소란스러웠다. 이날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4월 의사록이 발단이 됐다.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는 격론 끝에 4대 3으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그런데 ‘4대 3’ 결정설은 대략 2주 전부터 시장에 파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채권 딜러는 “예전에도 루머는 있었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맞힌 적은 없었다. 시장엔 누가 흘렸거나 빼냈다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의사록 유출 루머에 채권시장 흔들



 루머의 파장은 컸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올라가던 시중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외국인들의 투자 동향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11~16일만 해도 국채선물을 팔던 외국인들은 17일부터 순매수로 돌아섰다. 22일 채권 브로커들 사이에 또다시 ‘동결 대 인하 3대 3, 김중수 동결 캐스팅보트’라는 소문이 돌았다. 외국인들은 국채 선물 매수량을 크게 늘렸다. 26일엔 2만1371계약을, 30일엔 사상 최대 규모인 2만4727계약을 순매수했다(1계약=1억원). 시장 관계자는 “금통위 결정이 4대 3이라면 다음 달 인하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금리 하락에 베팅한 것”이라며 “단순 소문만으로 외국인들이 거액을 걸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통위 의사록은 금통위 회의(매달 둘째 목요일) 2주 뒤 첫째 화요일 공개된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에서 격론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사전 유출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사전 유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의혹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 문제다. 시장에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흔히 시장은 이기적인 투자자들의 전쟁터라고 하지만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 부족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금리를 움직여 통화량에 영향을 주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한금융투자 박형민 수석연구원은 “김 총재는 동결의 당위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막상 공개된 회의록을 보니 4대 3이었다. 이렇게 되면 통화정책의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 “사전 유출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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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은 국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지난달 23일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은 “시장은 금리 인하를 예상했는데 한은은 금리를 동결했다”며 시장과의 소통 부족을 지적했다. 김 총재는 이에 “한 번도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적이 없다. 단지 시장이 저를 믿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시장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채권시장에서 현재 가장 큰 불확실성은 금통위”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한은으로선 시장과의 불협화음을 해소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체감 인식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4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리 동결 이유 중 하나가 인플레 우려였다. 한 금통위원은 “물가는 중앙은행의 가장 큰 고려 변수다. 하반기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고, 국민의 기대 인플레이션율도 여전히 높다”고 주장했다(금통위 의사록은 대개 익명으로 공개된다). 한은이 앞으로의 물가상승을 염려하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오히려 물가 통계는 디플레이션 초기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1일 발표된 소비자물가는 전달보다 0.1% 떨어져 두 달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선 1.2% 상승해 6개월 연속 1%대에 머물렀다. 사실 한은도 4월 초 내놓은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3%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의 2.2%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5~3.5%)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일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중앙은행 목표보다 물가가 덜 오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시장과 경제상황 체감 인식 달라



 성장에 대한 한은의 인식에 절박감이 없는 것은 큰 문제다. 금통위에선 심지어 “성장 흐름에 대한 전망을 보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에 비해 결코 저조하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은 전망대로 올해 우리 경제가 2.6% 성장을 이뤄내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2%대 성장인데, 이를 저조하지 않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정부와의 정책 공조도 한은이 명확히 해야 할 부분이다. 김 총재는 2월만 해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합을 강조했고, 시장에선 이를 새 정부 경기 부양책에 발맞춰 금리를 내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4월 들어 막상 정부가 추경안을 내놓고 금리인하를 요청했음에도 한은은 금리를 동결했다. 김 총재는 이때 “지난해 두 차례의 금리 인하 효과가 지금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지금도 통화 기조가 매우 완화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의 금리 인하가 새 정부의 재정확대와 조합을 이룬다는 것인데, 시장에는 이를 수긍하는 이가 많지 않다.



이상렬 경제부문 기자



국채 선물 장래 특정 시점의 예상 국채값(국채 선물 가격)에 투자하는 파생상품. 한국거래소에서만 거래되는 장내 상품. 보통 100억원 단위로 거래되는 국채 현물과 달리 최소 거래 단위가 1억원(1계약)으로 낮은 데다 이마저 소액의 증거금(3년물 기준 거래액의 0.9%)만 있으면 거래할 수 있다. 만기도 3개월로 짧다. 적은 돈으로 단기간에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채값이 크게 오르내릴 것으로 예상될 때 국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투자가가 수익률 관리를 위한 단기매매 상품으로 많이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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