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퇴직은 연장전 아닌 후반전" 5060 새 일 찾아 나섰다

지난달 17일 ‘전직스쿨’ 졸업식을 마치고 권봉식·이병석·김종선·이희봉씨(왼쪽부터)가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을 찾았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발놀림엔 힘이 넘쳤다. 이희봉씨는 “함께 있으니 어른이 양복 입고 자전거 타는 것조차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처음엔 ‘율무차’를 찾아 이곳에 왔다. 구직정보를 뒤적이다 허기가 느껴지면 무료로 비치된 율무차를 마셨다. 배를 채울 순 없었지만 마음이 편해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빈둥대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새벽이면 인력시장으로 나갔다. 일을 오래 쉬다 보니 몸은 갈수록 쇠약해졌다. “아저씬 그냥 가세요”라는 말과 함께 번번이 내쫓겼다. 쉰 살을 몇 해 넘긴 권봉식(53)씨는 5년째 ‘구직 중’이다.

[이슈추적] 서글픈 중장년 구직자 … '전직스쿨'서 동병상련 힐링



지난달 11일 오후 2시 서울 공덕동 한 빌딩 7층에 자리한 노사발전재단. 권씨는 이날도 어김없이 그곳에 있었다. 다만 이번엔 율무차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였다. 15평 남짓한 강의실에 권씨를 비롯한 중년 20명이 줄지어 앉았다. 몇 해 전까지 크고 작은 기업에서 일했던 퇴직자들이었다. 이들은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노사발전재단이 지난달 8일부터 운영하는 ‘제1기 전직스쿨’의 학생이 됐다.



 “이력서 준비 다 해오셨죠?” 선생님(컨설턴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얼굴들이 컴퓨터 모니터에 차례로 떠올랐다. 전직 사장님, 상무님, 부장님의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머리를 자르고 염색도 해야겠죠. 나이가 너무 들어보이네.”



퇴직금 날리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리고



이들 앞에 네 개의 질문이 담긴 종이가 한 장씩 놓였다. “일하면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답을 채워주시면 됩니다. 10분 드릴게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 무엇을 바꿔냈는가’가 핵심이었다. 손에 잡힌 펜이 지난 20~30년간의 기억을 빠르게 훑어냈다.



 바로 토론실습이 이어졌다. 점잖은 중년들이 몸과 의자를 부지런히 움직여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과거 대기업 건설사에서 해외개발 담당 이사를 지낸 허원(56)씨의 ‘무용담’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1999년 대우건설 워크아웃 기억나죠? 내가 차장이던 시절인데 출자(出資)를 설득하느라 밤새워 여기저기 뛰었지. 딱 ‘OK 사인’ 떨어지니까 눈물이 찔끔 나더라고.”



 끝까지 손사래를 치던 권씨도 입을 열었다. 그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기업을 스스로 그만두고 나왔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적자에 허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결국 무너졌다. 절망감에 빠져 매일을 술과 주식투자로 보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다시 일어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내와 아이들도 힘없이 놓아 보냈다. 생활보호 대상자인 어머니에게 나오는 지원금으로 3~4년을 버텼다. 1년 전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면서 권씨는 혼자 남았다.



 “너무 먹을 게 없어서 무료급식소도 찾아가 봤어요. 앞까지 갔는데 도저히 내 손으로 문을 못 열겠더라고. 이상하죠. 그 문만 지나면 밥을 준다는데도, 그러면 배를 채울 수 있는데도…. 결국 그냥 돌아왔어요.” 그들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져 모임당 30분으로 주어진 시간을 일찌감치 넘겼다.



취업의 벽 … 고용법상 55세 이상은 고령자



수업 6일째인 지난달 15일엔 ‘모의 전투’가 진행됐다. 오전 10시가 되자 이들 중 17명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열리는 취업박람회장에 모였다. 모두가 매끈한 양복차림에 한 손에는 지원서가 가득 담긴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백수가 영 사장님 같네. 쑥스럽게.” 기분 좋은 농담이 오갔다. 흩어진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절반이 넘는 10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집합시간까지 한 시간도 더 남은 시각이었다. “면접은커녕 지원서를 받아준다는 곳도 거의 없어요.” 직업군인 출신이자 1기생의 ‘맏형’인 이병석(61)씨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기업 수는 약 250곳. 그중 10%(23곳) 정도가 ‘중장년층 채용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몰랐어요? 우린 중장년층도 아니에요. 고령자라고, 고령자.”



 현행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에 따르면 55세 이상은 ‘고령자’, 50~54세는 ‘준고령자’다. 중장년층은 40대다. 전직스쿨에는 11명의 고령자, 4명의 준고령자, 5명의 중장년층이 참여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희봉(54)씨는 “집에서는 한참 더 돈을 벌어야 하는 아빠인데, 취업시장에서는 고령자로 분류되는 게 슬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12월 퇴직했다. 올해로 대학교 4학년, 고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이 있다. “끝까지 뒷바라지 해줘야죠. 그래서인지 내 큰 모습을 기억하는 가족에게는 차마 취업이 어렵다는 말이 안 나오데요. 매일 한두 개씩 원서를 넣으면서도 더 좋은 곳으로 가려고 찾고 있다고 둘러댑니다.” 17명 아버지가 며칠간 공들여 준비한 지원서를 넣은 평균 기업 수는 1.6개였다. 세 명은 단 한 군데의 문도 두드리지 못했다.



동기 20명 중 드디어 재취업자가 나왔다



8일간 진행되는 ‘전직스쿨’ 교육 과정에는 내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클릭 몇 번이면 취업정보가 좌르륵 뽑아져 나오는 세상. 이들에겐 ‘정서(情緖)’가 ‘정보’ 못지않게 필요했다. “다른 무엇보다 같이 아픔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는 게 정말 큰 힘이 돼요. 지원한 회사에서 퇴짜를 맞아도 자신감만 있으면 또 힘내서 부딪히는 거죠.” 정보통신(IT) 시스템 개발자로 일하다 올 초 퇴직한 김종선(48)씨는 연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난달 17일 전직스쿨 1기의 졸업식이 열렸다. 기다리던 ‘취업 성공’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았다.(※졸업식 이후 한 명이 취업에 성공해 지난달 30일 첫 출근을 시작했다) 하지만 20명의 표정은 이제 막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이날도 한 명을 향한 나머지 19명의 ‘칭찬샤워’가 이어졌다. “곧 밖으로 튀어나올 ‘주머니 속의 송곳’.” “폭소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폭탄’.” 개그맨 뺨치는 재치와 기발함, 그리고 웃음이 이어졌다. 서로 함께하는 8일간 "사회에서 버려졌다”는 마음의 상처가 어느정도 아물었다는 증거였다.



 “길 잃은 양 떼가 아니라 길 잃은 ‘프로’가 될 뻔했다. 이제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54세 김모씨), “30년 동안 일하던 회사 밖으로 나오니 남은 시간이 ‘연장전’처럼 느껴져 너무 힘겨웠다. 이제 연장전이 아니라 후반전이라는 생각으로 인생 2막을 열겠다.”(54세 허모씨).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광고의 기획자였던 이모(54)씨가 한마디로 졸업식장을 평정했다. “시작은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미약하였으나 끝은 동반성장(同伴成長)으로 창대하리라.”



글=김혜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전직스쿨=노사발전재단이 4월 시작한 중장년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 40대 이상 퇴직(예정)자 중 40명(서울·강남센터 각 20명)을 선착순으로 선발해 8일부터 약 2주간 진행됐다. 함께 교육을 받으며 ‘취업동아리’처럼 그룹별로 활동을 한다. 하반기에는 지방까지 대상을 확대해 ‘2기 전직스쿨’을 모집할 예정이다. 노사발전재단 외에도 올해 전국 25개 기관이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로 지정돼 중장년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자세한 정보는 ‘장년일자리희망넷(www.4060job.or.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