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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미나리 캐서 반찬 해 먹고, 간식용 라면으로 끼니

“괜한 봉변을 당할까 봐 바깥출입을 최대한 삼갔습니다. 나중에는 부식 재료가 떨어져 앞뜰에 심어둔 대파·시금치나 미나리·쑥을 캐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 체류 인원 완전 철수가 시작된 27일 낮. 남북출입국사무소(CIQ)를 통해 귀환한 최명식(48) 화인레나운 법인장은 사뭇 상기된 표정이었다. 최 법인장은 “출입문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안내 문구를 붙인 다음 이중 자물쇠를 채우고 나왔다”며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간의 생활에 대해서는 “지난 9일 북측 근로자들이 철수하면서 주재원들은 공장 설비 등을 둘러보며 걱정만 할 뿐이었다”고 전했다. A제조업체 김모 부장은 “낮 시간엔 주로 재고 파악과 공장 정리를 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과 시간 이후엔 남아 있는 주재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TV로 남측 소식에 귀 기울이는 게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3일 북한의 출경제한 조치 이후 식자재 공급이 끊기면서 식량 부족 문제를 겪기도 했다. 최 법인장은 “다행히 우리는 사내식당을 운영해 일주일치 식자재가 확보돼 있었다”며 “나중에 식자재가 바닥나고 현지 식당(개성옥)마저 철수했으나 북측 근로자에게 간식용으로 제공하던 초코파이·라면을 먹으면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철모와 위장복 차림의 북한군 2~3명이 한 조로 공단 출입구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것 빼고는 북측 근로자의 공단 출입도 철저히 봉쇄돼 있었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단 내부에는 남측 주재원들만 남아 마치 외딴섬과 같은 상황이었다. 김모(59) 주재원은 “숨죽이면서 보낸 것은 맞지만 (남북한 양쪽 인력들이) 서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남측 주재원들에 대한 별다른 신변의 위협은 없었지만 ‘심리적 불안’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특히 개성공단에서 남측과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전화 연결 때 긴장감이 높아졌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공단 주재원 김모씨는 “유선전화는 북한이 언제든 도청할 수 있는 장비여서 하고 싶은 말을 마냥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구순회(51) 대화연료펌프 개성법인장은 “저녁에 숙소에 혼자 있는 게 불안해 현지에 같이 남은 다른 공장의 직원 두세 명과 함께 잠을 잤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북측 근로자들 소식이 주재원에게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김모 주재원은 “북측 경비원에게서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댐 건설 등 노력 동원을 하는데 일이 매우 고되고 힘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측 경비원이나 근로자들도 공단 재가동을 바라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공단 철수 때는 ‘벌금 해프닝’도 벌어졌다. 또 다른 업체 최모 법인장은 “북한에서 빠져나올 때 미처 신고 못 하고 나온 물건에 대해서 세관원들이 일일이 20달러, 30달러씩 벌금을 물리더라”며 “마지막까지 외화벌이에 정신이 없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공단 주재원들이 철수하면서 기업들의 출구전략이 가시화됐다. 의류업체 화인레나운 박윤규(61) 회장은 “직원들 중 몇 명은 끝까지 공장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위험은 크지만 그래도 기업활동을 이어 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 기업들은 정부의 보상이 충분하지 않으면 법정 공방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이미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정부에 요청할 피해 보전액을 산출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정에 밝은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피해 보전액 규모는 최소 1조20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며 “공장이 재가동될 확률이 사실상 희박한데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대손충당금(금융회사가 대출금을 떼일 경우를 대비해 미리 쌓아놓은 자금)’이라도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의 개성공단 출구전략도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중소기업청은 각 기업당 최대 10억원 한도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기존 정책자금 상환도 최대 18개월 유예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부가세 환급금을 입주 기업들에 조기에 지급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은 남북협력기금 외에 자체 재원으로 입주기업에 대한 대출한도를 현재 수출 실적의 60~90%에서 100%로 확대했다.

이상재·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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