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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니까 가능한 선남선녀의 백일몽 같은 일탈

일흔 살이 넘으면서 우디 앨런(78)은 줄곧 유럽을 무대로 한 영화를 찍어왔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기념패라도 증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런던에서 4편,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2008)와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 2011)에서 1편씩을 찍었다. 그의 일곱 번째 ‘유럽 영화’는 최근 국내 개봉해 9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로마 위드 러브’(2012)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디 앨런이 뉴욕을 벗어났다는 건 큰 ‘사건’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비행공포증이 있어 근거지인 뉴욕을 떠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다. LA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2002년 단 한 번 갔을 뿐이다. 그는 왜 오랜 고집(?)을 꺾고 유럽행 비행기를 기꺼이 탔을까. 지난해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외국 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농담 섞인 설명을 하긴 했지만, 정확히는 유럽의 투자 환경이 예술영화에 호의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유럽 투자자들은 정말 너그럽다. 내가 뭘 썼는지 시나리오를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뭘 찍는지도 잘 모르면서 어쨌든 내 작품이 웬만큼은 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2004년 ‘매치 포인트’부터 7편의 ‘유럽 연작’을 하게 된 이유다.

사연이야 어찌 됐건 ‘유럽 연작’은 우디 앨런표 고품격 유머에 유럽의 눈부신 풍광을 보너스로 얹어주니 고정 팬이라면 챙겨볼 이유가 충분하다. 유럽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보다 밀도는 떨어지지만 ‘로마 위드 러브’ 역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에펠탑 등과 같은 관광명소를 음미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 바티칸 박물관 등이 잠시 로마 여행을 다녀온 듯한 상념에 젖게 한다. 바르셀로나보다 뜨겁진 않지만 파리보다는 충동적인 로마의 매력이 『데카메론』처럼 다양한 남녀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다.

색색의 초콜릿 상자를 떠올리게 하는 총 4개의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는 애인과 애인의 여자친구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남자 이야기. 휴가차 로마에 온 유명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은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과 우연히 만난다. 잭은 여자친구의 절친이자 마성의 매력을 지닌 모니카(엘런 페이지)에게 넘어가기 일보 직전. 둘째는 어느 날 눈 떠보니 언론이 쫓아다니는 스타가 돼 일상이 뒤죽박죽 돼버린 평범한 시민 이야기. ‘유명한 걸로 유명한’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에 대해 언론은 어떤 속옷을 입는지 궁금해하고 그의 아내 스타킹이 찢어진 것도 유행을 선도한다며 호들갑을 떤다.

조신한 신혼부부가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욕망에 눈뜨게 되는 이야기가 그 뒤다. 결혼 직후 로마에 살러 온 안토니오와 밀리 부부. 밀리는 우연히 만난 영화배우와, 안토니오는 방을 잘못 찾아온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스)와의 소동에 휘말린다. 마지막은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이야기. 은퇴한 오페라 연출가 제리(우디 앨런)는 예비 사돈이자 장의사인 지안카를로(테너 가수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샤워 중 노래하는 걸 듣고 그를 프로 무대에 데뷔시키려 한다.

4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탈과 혼란, 그리고 복귀다. 각자의 상황에 조금씩 불만을 갖고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한 기회에 내밀한 욕망에 눈뜨게 된다는 것. 욕망에 눈떴다고 해서 큰 파국이 오는 것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치 ‘상상은 자유, 단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는 듯. 『도시수집가』(2012)에서 칼럼니스트 이명석이 말했던 대로 이 영화에서 로마는 ‘달콤한 거짓말의 도시’로 그려진다.

로마이기에 가능한 일일 성싶은, 로마가 아니었으면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았을 법한 달달한 백일몽 같은 이야기들의 짜임새는 성글다. 샤워만 하면 ‘별은 빛나건만’을 정상급 가수 수준으로 불러젖히는 캐릭터 설정이라든지, 콜걸 역도 마다하지 않고 코믹하게 소화하는 페넬로페 크루스의 관록 같은 포인트가 없었다면 좀 허전할 뻔했다.

그래도 여든을 앞둔 노감독이 특유의 까칠함을 잃지 않은, ‘웬만큼은 되는’ 신작을 내놓는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우디 옹(翁), 다음 번엔 한국에서도 한 편 찍으시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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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