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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 마흔 해, 가르침 얻기 보다 가르침 베푸는 사찰

봄볕이 완연한 봄날 이른 아침 부산역에서 기차를 내려 택시로 갈아탔다. 내원정사를 찾아 가는 내내 활짝 핀 산벚나무가 눈에 그득그득 들어왔다. 구덕산 산빛을 보고 있으니 “아, 산은 둘레마저 가득해 좋다”라고 노래한 한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내원정사에 들어서자 대적광전에서 기도를 마친 신도들이 절 마당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연만(年晩)했지만 웃음소리는 늙지 않았다. 소금 같은 웃음들이다. 웃음들이 양명(亮明)한 마당에 쌓이고 있었다. 대적광전 뒤로 돌아갔더니 대숲이 좋았다. 바람이 대숲의 몸통을 지나갈 때 사각사각 댓잎 부딪치는 소리가 생겨났다. 밤이면 댓잎 그림자가 대적광전 뒤뜰을 쓸 것이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빛이 물밑을 꿰뚫어도 물 위엔 흔적 하나 없네”라고 야보 선사는 노래했던가. 나는 청정한 불성(佛性)의 본래 자리, 내 마음의 근원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다.

부산 내원정사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내원정사는 산하에 유치원을 둔 흔치 않은 사찰이다. 법복 입은 아이들이 공양을 하러 가고 있다.

구덕산은 한창 화엄의 세계

내원정사 주지 정련 스님을 뵙고 삼배를 올렸다. 정련 스님이 “먼 산골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곳 구덕산은 한창 화엄의 세계입니다. 좋은 시절에 오셨습니다”라며 환하게 맞았다. 한국 불교의 중심지가 부산이라면, 부산 불교를 이끄는 한 축이 이곳 내원정사이다. 특히 정련 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부장·포교원장 등 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이면서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 소임도 맡고 있다. 조계종 종단의 큰 어른이다.

정련 스님은 내원정사 유치원 아이들에게 발우공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법복을 입은 아이들은 맑음 그 자체였다. 돌층계에는 아이들의 흰 고무신이 가지런했다. 작은 손을 앞가슴 앞에 모았는데 그 모습이 꼭 옥양목(玉洋木) 빛깔의 목련 꽃봉오리 같았다. 스님은 공양을 받을 때 수행자가 외우는 공양게(偈)를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쉽게 설명했다. “꼭꼭 씹어 먹어라”라고 자상하게 일러도 줬다.

스님이 직접 발우공양법을 가르쳐 주는 까닭은 한국 불교에서 음식을 먹는 예법을 각별하게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좋은 약으로 삼아 깨달음을 얻고자 음식을 받지 않던가. 스님들은 양껏 먹지 않고 모자란 듯이 먹지 않던가. 하루 한 끼만을 먹는 스님도 많지 않던가.

발우공양을 마친 한 아이에게 내가 물었다. “맛이 어땠어요?” 아이가 말했다. “좀 이상했지만, 맛있었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밥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다시 구슬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생각 안 했어요. 밥 먹는데 생각은 왜 해요?” 그 대답은 번뇌의 끝냄과도 같았다. 나는 몽둥이로 한 대 얻은맞은 듯했다. 역시 천진심(天眞心)은 당해낼 방도가 없다.

내원정사는 정련 스님의 원력으로 1972년 시작해 10년여의 대작불사(大作佛事)로 조성된 가람이다. 내원정사의 포교 40년은 천막법당에서 시작되었다. 정련 스님은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말했다.

“1000평의 벌판에 천막법당을 지어 불사를 시작했습니다. 중생의 병을 낫게 하고, 중생이 입고 먹는 것을 만족스럽게 해 주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과 같은 서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대여섯 명이 모였는데 이제는 신도가 1만2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련 스님은 ‘주는 불교’를 실천하기 위해 유치원을 설립했다. 유치원 원장 자격증과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직접 취득했다.

(왼쪽) 구덕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내원정사 전경. (오른쪽) 정련 스님이 아이들에게 공양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못을 파면 물 생기고 물고기 모이듯 …

“유치원을 85년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 주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른 동네에서 데려와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그러더군요. 누가 이곳까지 오겠느냐고요. 그러나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못을 파 놓으면 물이 생겨나고, 물이 생겨나면 물고기가 모여듭니다. 아이들의 유치원 교육은 아주 중요합니다. 어린 나무를 구부려 놓으면 평생 그렇게 자랍니다. 그래서 아이들 시기의 교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숲과 자연을 활용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교육을 저희에게 맡긴 어머니가 안심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원정사의 유치원은 전국에서 유명한 유치원이 되었습니다.”

정련 스님은 또 내원정사 뒷산을 가꾸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스님은 아이들을 위해 공을 들여 만든, 내원정사 뒷산 체험장을 함께 걸어가면서 말씀을 보탰다.

“매년 어린 나무를 5000그루씩 40년 동안 심었습니다. 어린 나무는 커 가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큽니다. 바람에 넘어지지 않을 만큼 뿌리를 내리면서 삽니다. 나무가, 숲이, 산이 커 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대나무 서른 그루를 심었는데 이렇게 큰 대숲이 되었습니다. 마흔 해가 지나니까 해마다 쉰 가마니나 매실을 땁니다. 나무는 거짓말을 모릅니다.”

뒷산 체험장에서 아이들은 직접 감자·호박·고추·옥수수를 심고, 토끼를 기르고, 닭을 길러 달걀을 얻는다. 뒷산 체험장에서 아이들은 장수풍뎅이와 함께 살고, 애벌레·쥐·풀벌레·나비·산새, 그리고 사철 피는 여든 종의 야생화와 함께 산다.

“아침에, 점심에, 구름 많을 때에, 비가 듣기 시작할 때에 걸어보게 합니다. 각각의 때마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끄러운 것, 거친 것, 단단한 것, 차가운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을 가슴에 담게 합니다. 볍씨 하나에 쌀알 250개가 열린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볍씨와 같고, 태양과 같고, 산과 같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라고 알게 됩니다. 자연 자체가 법문인 것입니다.”

절 뒤편에 조성된 대숲을 걷고 있는 정련 스님과 문태준 시인.
석가 탄신일엔 동자승들과 시내 탁발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내원정사는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행사를 진행한다. 아이들 200여 명이 삭발을 하고 부산 시내에서 탁발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정련 스님이 직접 목탁을 치면서 행렬을 이끈다. 그리고 이날 아이들이 탁발을 해서 모은 돈은 어려운 친구 돕기, 미아 찾기, 결식 아동 돕기를 위해 성금으로 직접 전달한다. 뒷산 체험장을 내려와 대적광전 앞에 섰을 때 정련 스님의 말씀이 다시 이어졌다.

“무슨 일이든 직접 해봐야 압니다. 무릎이 상하고, 추위가 뼛속에 스며들어도 기도를 해봐야 기도를 알게 됩니다. 내가 직접 한 발짝 걸음을 떼어야 하는 것입니다.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빨래도 해보고, 밥도 떠먹여 드리고, 배설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늙은 몸도 씻겨드려 봐야 봉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님의 것이지 않습니까. 혜능 스님의 말씀은 혜능 스님의 것이지 않습니까. 내가 직접 해봐야 내가 한 만큼 부처님 말씀이 내 것이 되고, 혜능 스님 말씀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원정사를 떠나 올 때에야 나는 정련 스님이 거처하는 ‘육화료(六和寮)’의 주련을 읽게 되었다. 그것은 황벽 선사의 글이었다. “세간의 번뇌를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화두를 딱 잡고 일념으로 해야 공부가 이루어진다. 한 차례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어찌 얻으리오.” 주련을 읽으니 정련 스님의 말씀이 한 번 더 뚜렷하고 분명하게 들려왔다.

글=문태준(시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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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