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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3) 낚시와 행정

1976년 9월 14일 행정 순시용 배인 ‘신안호’ 선상에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고건 전남도지사(오른쪽). [사진 고건 전 총리]

낚시를 좋아했다. 당시 낚시는 중·하위직 공무원에게 거의 유일한 주말 취미 활동이었다. 낚싯대만 있으면 돈이 거의 안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스트레스도 풀고 평소에 가기 어려운 벽지도 둘러볼 수 있었다. 언론인, 동네 이장과 도정에 대해 허물 없이 얘기도 나눴다. 대신그 곳의 군수에게는 낚시를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어느 주말 전남일보·전남매일 편집국장, 김영진 도청 기획관리실장과 함께 광산군 서창면 매월리(지금의 광주시 광산구 일대)의 저수지로 향했다. 저수지 주인 격인 김씨 성을 가진 이장이 안내를 맡았다.

 한창 낚시에 빠져 있는데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던 정공진 전남매일 국장이 갑자기 일어나 소리쳤다.

 “어. 내 낚싯대, 내 낚싯대!”

 낚시에 서툴러 벌어진 일이었다. 제때 채임질을 못해서 붕어가 낚싯대를 끌고 달아났다. 꽤 큰 놈이었는지 낚싯대를 저수지 가운데까지 끌고 갔다. 난감해하던 김 이장이 마침 제방 밑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청년을 불렀다.

 “너 헤엄 잘 치지. 저것 좀 건져와라.”

 “저 헤엄 잘은 못 치는데요.”

 김 이장은 낚싯대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저 정도까지는 갈 수 있잖아.”

 머뭇거리다가 청년은 겉옷을 벗고 저수지로 들어갔다. 그는 15m쯤 헤엄쳐 낚싯대를 찾아 가슴에 걸었다. 다시 제방 쪽으로 헤엄쳐오기 시작했다. 그때 청년의 수영 동작이 힘 없이 느려지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차’ 싶었다. 낚시 바늘이 수초에 걸린 상태에서 낚싯대의 탄력 때문에 청년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가슴에 걸친 낚싯대를 떼어버려야 하는데 청년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그 순간 김 이장과 내 눈이 마주쳤다. 청년을 물속에 들어가라고 한 책임 때문인지 김 이장이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난 김 이장에게 소리쳤다.

 “낚싯대부터 떼어버리세요.”

 김 이장이 낚싯대를 청년에게서 떼어놓는 데 성공했다. 힘이 빠진 청년을 옆에서 끌고 나오는 김 이장에게 외쳤다.

 “이장님, 이제 괜찮죠?”

 “안되겠는데요. 지사님, 들어오셔야겠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지사가 동네 청년을 낚시터에서 익사시켜…’. 순간적으로 신문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부랴부랴 겉옷과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청년의 뒤로 가서 그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7~8m를 밀고 또 헤엄치면서 제방에 닿았다. 겨우 뭍으로 나온 청년은 물을 토해냈다.

 그날 낚시는 일찍 파했다. 광주 시내 충장로 매운탕집으로 가서 언론인들과 소주 한잔을 마시려는데 뭔가 허전했다. “어, 내 안경이 없네.” 낚시터에 떨어뜨리고 온 것 같았다. 기사에게 찾아오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기사가 찌그러진 안경을 내밀었다. 어제 잃어버린 내 안경이었다. 얘기를 듣고 동네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저수지를 다 뒤졌다고 했다. 저수지 바닥을 발로 밟으며 찾다가 안경이 찌그러졌단다. 고마우면서도 어찌나 미안했는지. 나중에 낚싯대를 건진 그 청년이 3대 독자란 얘기를 전해 들었다.

 2005년 유원지로 바뀐 매월리 저수지 터에 다시 가서 3대 독자 청년을 김 이장과 같이 만났다. 30여년 세월이 흘러 청년은 초로(初老)의 모습이었다. 전남대 경영학부 2학년이라는 아들과 함께였다.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한참이나 웃고 얘기했다. 낚시가 만들어준 기분 좋은 추억이다.

 나는 낚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정치와 행정은 낚시와 닮은 점이 많다. 낚시를 하려면 먼저 붕어가 좋아하는 미끼를 정성스레 만든다. 정치·행정도 국민의 수요에 맞춰 정성을 다 쏟아야 한다. 붕어가 물지 않고 돌아가면 다시 미끼를 정성스레 갈아준다. 정치에서도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려면 시대정신에 맞게 정책을 손질해야 한다. 미끼를 문 붕어를 낚아 올릴 때는 채임질 타이밍이 생명이다. 정책도 한 박자 늦거나 빠르면 실패로 끝난다. 붕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면 낚싯줄과 낚싯대의 탄력이 중요하다. 행정이 낚시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그 탄력이다. 정성을 들이고 타이밍을 맞추고 탄력으로 이끄는 점에서 낚시와 행정은 공통점이 많다.

 낚시꾼과 정치인은 거짓말을 잘하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낚시꾼의 거짓말은 자기가 잡은 물고기의 크기를 과장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의 거짓말은 나라와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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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