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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다정함의 세계

다정함의 세계   - 김행숙(1970~ )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문학은 끊임없이 낯설게 하기를 지향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익숙한 서정시의 세계와는 다른 낯선 일군의 시인들이 등장한다. 기존의 서정과 현실 세계를 넘어 혹은 그 이면에 기반하고 있는 ‘미래파’라고 불리는 이들. 그 대표주자 중 하나가 김행숙 시인이다. 이 시를 보면 기존의 독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당혹스럽다. 시인은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먼저 느낀 다음 이해하라고 권한다. 발이 녹고 무릎이 없어지고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은 이곳은 시의 제목에 의지하자면 ‘다정함의 세계’이다. 이어지는 “괜찮아요”와 “고마워요”라는 정감 있는 대화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것은 당황스럽게도 독자의 몫이다. 수평선처럼 잔잔한 이곳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 오를 때 두 사람이 양팔을 벌리고 꼭 끌어안는 다정함의 세계는 완성된다. 이 낯선 방식은 공감의 폭은 좁아지는 반면 상상력의 폭은 넓어지는 듯하다. 아, 모르겠다. 맞게 읽었는지 시인에게 물어봐야겠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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