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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기에 ‘전속계약’ 강요 유감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다. 중소기업 전문가인 동료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물어보니 “전속계약”이라고 한다. 국내 대기업들이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에 대해 국내 경쟁사는 물론, 중국을 비롯한 외국 경쟁사 납품을 막는다는 것이다. 전속계약은 공정거래법에 위반하기 때문에 어느 대기업도 이를 서류로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계약을 어기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괘씸죄에 결려 피해 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전속계약에 묶인 중소기업들은 종속적인 위치에서 대기업에만 납품할 뿐, 독일의 히든 챔피언처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부품 전문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이 문제를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부품업체가 가진 특수기술이 부품에 실려 국내 경쟁 기업은 물론, 해외 경쟁 기업으로 팔려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자사 경쟁력을 유지하고 국익의 손실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속계약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경제연구원과 중앙일보가 주최한 ‘중견기업 육성’를 주제로 한 포럼에 참석했다. 내 왼쪽에는 독일 기업에서 25년간 활동한 경영자, 오른쪽에는 대기업 중역 출신으로 10여 년 전 창업을 한 경영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전속계약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니, 독일 기업 경영자는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벤츠의 경쟁력은 단지 부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떨떨해하는 필자에게 오른쪽의 경영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전속계약의 필요성에 대해 대기업 경영자들이 말하는 것을 뒤집어 보면, 자신들의 경쟁력은 단지 중소기업이 제공하는 부품에서 나온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두 경영자가 계속해서 해준 말을 옮긴다. 대기업은 부품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탁월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R&D 능력, 미래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자인 능력, 제조원가를 경쟁자보다 훨씬 낮출 수 있는 공정관리 능력 등…. 세계적인 기업은 협력회사와 함께 좋은 부품을 개발하는 방법과 더불어, 이러한 능력을 다양하게 결합함으로써 도전자로부터 차별화하는 위치에 올랐다. 완제품을 생산하는 독일의 세계적인 대기업은 부품회사들이 다른 나라 기업에 부품을 판매하는 데 대해 제약을 하지 않는다.

 두 경영자의 설명은 필자가 깜박 잊고 있었던 국제경영 이론을 떠올려주었다. 이론에 의하면 기업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가지고 사업을 한다. 하나는 기업이 내부에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능력, 다른 하나는 기업이 활동하는 현지에서 제공하는 풍부한 원료, 낮은 임금, 기업친화적인 정부제도와 같은 혜택이다. 기업이 세계시장과 현지시장에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네 가지 형태가 나온다. 첫째는 독자적인 능력을 가지고 세계시장에서 사업하는 ‘세계기업’, 둘째는 독자적인 능력을 현지에 가지고 가는 ‘세현기업’, 셋째는 현지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이용해서 현지시장에서 사업하는 ‘현지기업’, 넷째는 현지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이용해서 세계로 진출하는 ‘현세기업’이다.

 한국 대기업들은 외형으로는 ‘세계기업’에 필적하는 규모를 갖추게 되었지만 내부적인 경쟁력보다는 국내 부품회사가 제공하는 혜택에 의존하는 ‘현세기업’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이 전속계약을 강요해서 경쟁력을 갖추는 ‘현세기업’ 방식은 중진국 기업 입장에서 불가피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대기업이 ‘세계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할 유산이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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