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돌아온 김무성 … 당권 도전 등 향후 행보에 눈길 쏠려

부산 영도 재선거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김무성 후보와 부인 최양옥씨가 24일 선거사무실에서 당원들이 걸어준 화환을 목에 걸고 인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왕년에 박근혜계의 좌장이던 새누리당 김무성(62) 후보가 국회로 돌아왔다. 1996년 15대 총선부터 부산 남구을에서 내리 4선을 했던 김 후보는 이번에 지역구를 영도로 옮겨 5선 고지를 밟았다. 그는 지난해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을 때만 해도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 보였으나 1년 만에 화려하게 재기했다.

 정치권이 김 후보의 원내 진입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여권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계의 막내인 그는 보스 기질이 강해 따르는 사람이 많다. 서청원·홍사덕 전 의원 등 원로급들이 국회를 떠나면서 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서 중심 축 역할을 할 인사가 마땅찮은 게 현실이다. 박근혜계뿐 아니라 정몽준·이재오 의원 등 비주류 인사들과도 관계가 원만하다. 그래서 새누리당에선 벌써부터 내년 전당대회 때 김 후보가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그의 한 측근은 “김 후보가 정권 초기에 박 대통령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하다”며 “특정 현안이 생겼을 때 중진으로서 힘을 보태는 역할은 하겠지만 당장 독자 행보에 나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 후보의 관계는 애증(愛憎)이 교차한다. 박 대통령은 2인자의 역할 공간을 두지 않는 타입이지만 김 후보는 보스에게도 ‘할 말은 한다’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었던 2005년 당 사무총장에 기용돼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부상했다. 그러다 2006년 6월 박 대통령이 당 대표직을 내놓고 물러났을 때 마찰이 일었다. 김 후보는 하루빨리 대선 캠프를 꾸리자고 주장했으나 박 대통령은 캠프는 천천히 만들자는 쪽이었다. 김 후보는 사석에서 “(당시 박 대통령이)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2007년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김 후보는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선거전을 지휘했고, 이 때문에 이명박계로부터 미운 털이 박혀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했다. 이에 그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부산에서 박근혜 바람을 일으키며 4선에 성공했다. 18대 국회 초반 그는 명실상부한 박근혜계 좌장으로 친이-친박 갈등의 최전선에 섰다. 두 사람 사이가 다시 삐걱대기 시작한 건 2009년 5월 ‘김무성 원내대표설’이 불거지면서다. 이명박계는 당 화합 차원에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카드를 내밀었고 김 후보도 의지를 보였으나 박 대통령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여기다 그해 10월 김 후보가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2010년 2월 김 후보가 세종시 타협안을 제시하자 박 대통령은 “가치 없는 얘기다.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며 ‘파문(破門)’을 선고해 주변을 긴장시켰다. 이후 김 후보는 이명박계의 지원을 얻어 2010년 원내대표가 됐다.

 지난해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김 후보가 공천 탈락했을 때 그가 탈당했으면 둘의 관계는 영원히 끝날 뻔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고심 끝에 백의종군을 선언해 보수 진영을 결속시키는 반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지난해 10월 안철수 돌풍에 고전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김 후보를 구원투수(총괄선대본부장)로 영입했고, 김 후보는 당사에서 ‘야전침대 투혼’을 발휘하며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김 후보를 중국 특사로 보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후보는 이날 밤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의 축하인사를 받으며 “박 대통령을 잘 도와서 정권을 빨리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유권자들의 말씀을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기록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그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지 못한 문제가 심각하다”며 “앞으로 피곤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글=김정하·권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관련기사]
▶'불임정당' 민주당, 기초의원까지 12곳 전패
▶쟁점 떠오른 '안철수 신당', 최악의 시나리오는…
▶"차가운 민심 밑바닥 봤다" 민주, 논평 서면 대체
▶'127석' 민주당, 투표날 브리핑룸 불 껐다
▶안철수, 노회찬 총선 득표율 넘어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