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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각장애 판사 만난 맹학교 아이들 '법관 희망' 봤다

한빛맹학교 학생들이 24일 시각장애인 최영 판사가 근무하는 서울 북부지방법원을 방문해 301호 형사법정 판사석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판사가 꿈이라는 이건열군, 마이크 앞에서 웃는 이는 이군에 이어 법대에 앉은 최요셉군. [박종근 기자]

24일 오후 2시 서울 북부지법 301호 형사 법정. “지금부터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법대 위에 앉은 이건열(15)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법정 안을 가득 채웠다. 신기한 표정의 이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군은 세 살 때 앓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가까이 있는 사물의 형체만 흐릿하게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의 꿈은 대개 안마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사법 사상 최초로 판사와 변호사가 잇따라 탄생하면서 전국 29만여 명 시각장애인들 꿈의 스펙트럼이 확장됐다. 이군의 꿈도 판사다. 그는 “지난해 애플과 삼성의 글로벌 소송전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며 “실제로 이렇게 법대에 서보니 반드시 꿈을 이루고 싶어졌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군을 포함해 19명의 한빛맹학교 장애 학생들은 이후 재판장석과 우배석, 좌배석 자리에 돌아가며 앉아 직접 재판을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서울 북부지법이 법의 날(25일)을 맞아 개최한 초청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후천적 시각장애 1급인 김재왕(35) 변호사도 참석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1시30분 304호 법정에선 19명의 학생이 시각장애인 최영(33·사진) 판사가 좌배석으로 참여한 민사 11부 재판을 참관했다.

 “재판장님, 원고의 말은 99% 거짓입니다.”

 피고의 외침에 재판장인 황현찬 부장판사와 차동경 판사가 서둘러 피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사이 오른쪽에 앉은 최영 판사는 시선보다 더 빠른 손놀림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관련 법률 등을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양측 주장을 경청하는 최 판사의 태도는 진중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이환희(16)군은 “최 판사님이 보이진 않았지만, 시각장애인이 법대에 앉아 있는 것을 상상만 해도 내가 판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 판사와 김 변호사는 4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수많은 난관을 뚫고 이 자리에 섰다. 최 판사는 1998년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시력이 점점 나빠져 2005년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그는 다섯 번의 도전 끝에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지난해 북부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김 변호사는 2003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할 무렵 시력이 나빠졌다. 병원에선 시신경이 죽는 증상이라고만 할 뿐 병명이 확실치 않았다. 2009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해 김 변호사는 로스쿨에 입학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을 하다가 한계를 느껴 제도나 정책을 바꿀 수 있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란다. 로스쿨 졸업 후인 2012년 2월부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5명의 동료 변호사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대선 때 “청각장애인들이 선거 토론회나 방송을 볼 때 제공되는 수화 화면이 작다”는 등의 이유로 법원에 임시조치 신청을 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최 판사의 집무실은 불편함이 없게 잘돼 있었다”며 “일선 기업까지 이런 대우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업무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다고 하자 “시각장애인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더 경청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형사법정 체험 도중 검사석에 앉은 신나라(16)양은 “시각장애인 검사는 없나요? 이제부터 제가 도전해 볼래요”라고 말했다.

글=정종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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