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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조용필처럼 …

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이쯤 되면 신드롬이다. ‘가왕(歌王)’ 조용필 열풍이 한동안 식지 않을 듯하다. 23일 10년 만의 앨범 ‘헬로’를 발표한 그다. 이날 출시 당일 CD 2만 장이 매진된 데 이어 LP와 MQS(마스터 퀄리티 사운드·초고음질 음원) 발매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용필 LP 발매를 앞두고 서울 용산 아이파크 백화점은 턴테이블 특가전까지 마련했다.

 네이버가 23일 생중계한 컴백 쇼케이스 시청자 수는 25만 명. 아이돌 최고 기록인 샤이니(12만 명)의 갑절이 넘은 수치다. ‘헬로’의 수록곡은 각종 음원 차트에선 여전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조용필이 기존의 중년팬에게만 어필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조용필(가운데)이 23일 열린 쇼케이스에서 게스트로 나온 후배 가수 박정현(왼쪽)·국카스텐과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후배들은 조용필의 노래를 재해석해 불렀다.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무대였다. [양광삼 기자]
 1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를 냈던 2003년은 조용필 개인에게, 또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변환점이었다. 그 해 처음으로 디지털음악 시장(1850억원)이 음반시장(1833억원)을 앞질렀다. 불법 음원 다운로드, 공짜 음악 서비스가 가속화했다. 조용필은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35주년 공연을 매진시키며 한국 가요 공연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공연 직후 발매한 18집은 흥행하지도 못했다.

 또 조용필은 그 해 아내를 잃었다.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하나 생겨서 앨범을 낼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미루다 앨범을 준비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곡이 휴지통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가요계 생태계가 달라졌다. 음반만 내선 돈을 벌 수 없는 쪽으로 변해갔다. 기획사가 끼 있는 연습생을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켜 노래도 시키고, 연기도 시키고 해외에서 수익을 내야 했다.

 이 와중에 80~90년대를 풍미한 수많은 가수가 음반을 낼 엄두를 못 냈다. 덩달아 중년의 대중도 옛 노래나 들으며 추억을 곱씹어야 하는 ‘뒷방 늙은이’ 신세로 밀려났다. 가요의 세대 단절은 남북을 갈라놓은 DMZ 못잖게 심각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흘러 2013년이 됐다. 올 초 민해경은 11년 만에 신곡 5곡이 담긴 정규 17집을 냈고, 재결성한 그룹 들국화도 이달 열린 콘서트에서 감동적인 신곡을 발표했다. 이문세도 데뷔 35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앨범을 낼 예정이다.

무엇이 이들을 불러 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세시봉 열풍 등 최근 몇 년 간 가요가 대중문화 이슈를 주도해왔다. ‘나 가수’ ‘불후의 명곡’과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전 뮤지션들의 음악이 동시대 음악으로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그런 두 가지가 맞물려 기성 뮤지션들의 컴백이 이뤄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그런 흐름의 정점에 서 있다. 그의 19집은 세대 사이에 놓인 깊은 강을 쓸어버릴 만큼 위력적이었다. 그가 ‘전설’에 안주하지 않고 오랜 단련을 거쳐 세대를 관통하는 젊은 감각,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 정신으로 빚은 질 높은 음악을 들고 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아이돌의 ‘후크송’이 아니어도, 뜻 모를 가사가 아니어도 좋은 음악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한국 음악의 또 다른 미래를 제시했다.

 조용필의 장인 정신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화두를 던진다. 멘토의 시대라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짜 멘토링임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보컬 그룹 팬텀이 23일 쇼케이스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건 ‘조용필’ 이름 석 자라 생각해 자작곡 ‘조용필처럼’을 만들었다”고 말했듯이.

글=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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