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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2) 헬기 지사

1976년 전남 광산군(현 광주시 광산구 일대)에서 공무원들이 모내기하고 있다. 오른쪽 둘째가 고건 전남도지사. [사진 고건 전 총리]

전라남도엔 섬이 많다. 그중에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300여 개다. 웬만한 큰 섬은 한 개 면 단위다. 도지사로 일하며 면 소재지가 있는 섬은 거의 한 번씩 들렀다. 그중 절반 이상은 도지사가 방문한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섬에 갈 때는 헬리콥터를 자주 이용했다. 배로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부두 접안 시설이 부실해서 배를 댈 수 없는 섬이 많았다. 내가 타고 다녔던 헬기는 ‘재일전남도민호’였다. 일본에 사는 전남도민 출신 교포들이 모금해서 사준 농약 살포용 헬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1970년대 전남은 전국의 식량기지 역할을 했다. 봄마다 모내기를 제때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당시 전남도지사의 주요 업무였다. 모내기 실적은 면장이 군수에게, 또 군수가 도지사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보고가 관습적으로 이뤄졌다. 현장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어제 10%라고 보고했으니 오늘 11%로 하자’는 식이었다.

 그래서 수를 냈다. 헬기를 타고 모내기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도 찍었다. 헬기를 타고 군청에 가면 군수가 모내기 실적을 보고했다. 그러면 내가 위에서 본 모내기 현장 얘기를 했다. 헬기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해 봉투에 넣어 겉에 ‘아무개 군수 귀하’라고 써서 보내기도 했다. 보고한 모내기 실적과 현장에서 확인한 실적은 차이가 났다. 사진을 받은 군수는 당황하면서도 뒤늦게나마 모내기 독려에 나섰다. 몇 번 그 일을 반복했더니 헬기를 타고 군청이나 면사무소 위를 지나갈 때면 헬기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나온 직원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군청이나 면사무소 주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군수나 면장을 찾아 ‘지사 헬기가 떴다’고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늘 타고 다니던 헬기가 나주에서 추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농약 살포용 헬기라 크지 않았고 사고에 취약했다. 급한 일정 때문에 헬기를 타지 않는 날이면 조종사는 본업인 농약 살포를 했다. 한창 농약을 뿌리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놀란 마음에 현장으로 바로 갔다. 조종사가 무사한지 확인하러 논두렁 사이로 급하게 뛰어갔다. 다행히 조종사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안도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마침 일이 있어 헬기를 이용 안 했는데. 내가 탔었다면….’

 헬기와 얽힌 사연은 또 있다. 도민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전남 사람이 잘 먹는 음식 두 가지를 열심히 먹었다. 홍어와 꼬막이었다. 모두 칼슘이 많은 음식이다. 다정(多情)도 병이라고 했다. 전남 사람들과 정을 쌓으려 막걸리와 꼬막, 홍탁을 부지런히 먹었더니 정말 병이 생겼다. 신장결석이었다. 통증이 심했다. 헬기를 탈 때 가장 괴로웠다. 기체가 흔들리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덮쳤다. 도지사가 아프다는 얘기가 소문 나선 안 된다. 입이 무겁다는 광주 강내과의 강종남 원장과 상담을 했다.

 “개복 수술을 해야 합니다. 치료를 마치려면 한 달 정도 걸립니다.”

 지금이야 치료가 간편하지만 당시 의술로는 어쩔 수 없었다.

 “바쁜데 무슨 수로 한 달이나 시간을 냅니까.”

 “통증이 심하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진정제 처방을 해드리겠습니다.”

 당시 전남의 섬 지역에 가뭄이 들었다. 농산물이 땅에 있던 염분까지 빨아들여 하얗게 말라붙었다. 현장을 챙겨야 했다. 강 원장이 처방해준 진정제를 호주머니에 넣고 통증을 참으며 헬기를 타고 다녔다. 20여 일 지났을까. 그날도 헬기를 타고 나니 통증이 심했다. 그날 밤 신장에서 방광으로 결석이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 원장에게 물었더니 “흔들리는 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물리치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근육이완제를 처방해주면서 요령을 알려줬다.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시고 요의를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세요. 그리고 놋대야를 두고 소변을 보시면 아마 신석(腎石)이 빠져나온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강 원장이 시킨 대로 했다. 그랬더니 놋대야에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 얼마나 기뻤던지 화장실 바깥에 있는 아내에게 들리도록 “돌이 나왔다”고 소리를 쳤다. 전남도민과 어울리기 위해 먹어댄 홍어와 꼬막으로 생긴 결석을 가뭄의 고통을 분담하느라 헬기로 돌아다니다가 치료했다. 다정 때문에 생긴 병을 다정 덕분에 고쳤다고나 할까.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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