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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한 손으로 거뜬 … 차 지붕, 아기처럼 가벼워졌네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WPM 1단계 사업 성과 발표 및 전시회’에서 행사 도우미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된 폭 1800㎜의 대형 마그네슘 소재 자동차 루프(지붕)와 초경량 마그네슘 자동차 휠을 들어 보이고 있다. ‘WPM 사업’이란 2019년까지 세계시장 10억 달러 이상, 시장점유율 30% 이상 달성이 가능한 10대 핵심소재 개발사업이다. [김성룡 기자]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WPM 1단계 성과 발표 및 전시회’ 행사장. 초경량 마그네슘 사업단 부스에서 20대 여성 도우미 한 명이 왼손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루프(지붕) 패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전혀 무겁지 않다”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쏘나타 같은 중형차 지붕에 올리는 패널이 3.65㎏으로 누구나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무게다. 일반 중형차 지붕이 성인 남성이 들기도 다소 버거운 10㎏ 안팎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이어트’에 크게 성공한 셈이다.

 비결은 바로 ‘소재 혁신’에 있다. 철이 아니라 마그네슘을 주원료로 했기 때문. 마그네슘은 강철보다 4배나 가볍고 전자파 차단, 충격 흡수가 뛰어나 차세대 자동차용 소재로 꼽힌다. 자동차 무게가 가벼워지고 연비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어서다.

 WPM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2010년부터 민간기업·연구기관 등과 함께 세계 시장을 선도할 10대 핵심 소재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이날은 지난 3년간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쉽게 말해 소재 전문기업들의 ‘기술 잔치’인 셈이다. WPM은 ‘World Premier Materials’의 약자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소재를 뜻한다.

 이날 초경량 마그네슘 사업단이 선보인 마그네슘 주조 판재는 폭이 1800㎜에 이른다. 기존 마그네슘 판재의 폭이 400~500㎜라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기술 성취다. 이 사업단의 서강렬 사무국장(포스코 팀리더)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광폭 마그네슘 판재”라며 “자동차 지붕 등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고 자랑했다.

차세대 조명으로 각광받는 발광다이오드(LED)에 들어가는 기초소재인 ‘수퍼 사파이어’(맨 위). 제일모직이 내놓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판’. 기존 제품과 달리 구부릴 수 있기 때문에 ‘꿈의 디스플레이’로도 불린다. [김성룡 기자]
 초경량 마그네슘 사업단에는 포스코를 주관기관으로 현대자동차와 성우하이텍·동양강철·포항공대 등 기업과 연구기관·대학이 협업하고 있다. 포스코 순천공장이 마그네슘 판재를 생산하면 뒷좌석 프레임은 오스템이, 로드휠(바퀴휠)은 성우오토모티브가 시제품을 생산하는 식이다. 판재 성형·가공 분야에서 실력을 키워온 자동차부품 업체들이 신소재 쪽으로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서 국장은 “덕분에 기술 선도형 중소·중견기업이 성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0년 국내 2000억원 규모인 마그네슘 소재 시장은 2019년께 3조4000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능과 효율이 뛰어난 ‘효자 소재’가 ‘알짜 부품’으로, 이를 공급받아 경쟁력 있는 완제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중견기업인 사파이어테크놀로지가 주도한 ‘수퍼 사파이어 단결정 사업’은 이날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수퍼 사파이어는 차세대 조명으로 각광받는 발광다이오드(LED)에 들어가는 기초 소재다. 이 회사는 2010년 WPM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엔 모 대기업과 각각 두 개의 그룹을 만들어 기술력을 경쟁하는 구도였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1년 만에 기존 원기둥이던 사파이어 단결정을 직육면체 형태로 생산해 경쟁 대기업보다 제품력에서 월등히 앞섰다.

 이 회사 이희춘 대표는 “신공법을 통해 불순물은 제로에 가까우면서 효율성을 대폭 개선한 사파이어 단결정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지름 6인치짜리 사파이어 잉곳(덩어리)을 공급하고 있는데 조만간 8인치, 12인치 등 대구경 제품을 내놓아 효율성을 높인다는 포석이다. 이 대표는 이날 독자 기술로 개발한 지름 8인치, 폭 10㎝가량 되는 사파이어 잉곳을 들어 보이며 “시가 2만 달러가 넘는 세계 일류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불과 2년 새 1000억원대 매출과 580여 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KC㈜로부터 사파이어 잉곳의 원료인 초고순도 알루미나를 제공받고, 대기업인 LG이노텍·일진디스플레이·한솔테크닉스 등과 협업해 웨이퍼를 만드는 등 대·중소기업 사이에서 공조를 이뤄낸 것도 또 다른 성과다. 이 대표는 “2018년까지 1조4000억원대인 세계 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일모직은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구부리고 휠 수 있는 소재를 내놓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투명 고분자 필름과 분리·코팅, 투명전극 기술 업체 20여 곳이 손잡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판’ 사업단은 현재 1단계로 가로 300㎜, 세로 300㎜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2018년까지 40인치 이상의 대형 TV에 유리기판 대신 접고 펼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효성이 주관 기업인 폴리케톤 사업단은 폴리에스터 대신 폴리케톤을 원료로 만든 타이어코드를 선보였다. 타이어코드는 타이어 속에 들어가는 보강재로, 자동차의 안전과 성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재다. 효성은 시장점유율 43%로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핵심 기술을 확보한 소재 기업은 상품화에 성공하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 독과점적인 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세계적인 화학 기업인 듀폰이다. 이 회사가 1960년대에 개발한 ‘폴리아미드필름’은 자동차와 조선·항공·반도체 등에서 활용되면서 연간 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초기에는 성장세가 더딜 수 있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부품소재 전문기업인 일진그룹의 허진규 회장은 “한국 대기업은 창업부터 매출 1조원에 이르는 기간이 평균 30년이었는데 우리는 40년가량 걸렸다”며 “처음에는 더디 가지만 한 번 실력을 인정받으면 성장세가 안정적으로 지속된다”고 말했다.

 다만 숙제도 있다. 현장에선 뿌리 깊은 ‘외형 중시’ ‘기술 사대주의’ 풍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원한 A소재 회사 대표는 “소재 전문회사의 매출 100억원은 단순 제조업 1000억원과 맞먹는다”며 “그런데도 금융회사에서는 지적 소유권과 생산 노하우 대신 단순 외형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B중소기업 대표는 “국내 대기업들은 일본산과 비교해 국산 부품의 품질이 낫더라도 납품 단가는 무조건 10%를 빼려고 든다”며 “이런 ‘선진국 사대주의’가 만연해 있는데 어느 기업이 소재 연구개발(R&D)에 투자하겠느냐”고 되물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이기섭 원장은 “WPM은 한국이 ‘세계 4대 소재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손을 맞잡은 사업”이라며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소재 사업을 개발하고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동반 성장하는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상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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