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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통째로 즐기는 통 큰 재미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학창 시절의 교과서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사람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줄까지 멈출 수 없는 재미’ 때문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모든 교과서를 이내 독파하곤 했다. 이 사람은 요네하라 마리, 몇 해 전 50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번역가, 서평기고가,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일본인이다. 글쓰기·책 읽기를 업으로 삼게 된 사람이라 교과서마저 재미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의 얘기는 다르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 5년쯤을 다닌 체코 프라하의 학교에선 다들 그랬단다. 나중에 일본에 돌아가 중학교에 편입했을 때 그는 모든 교과서가, 특히 역사 교과서가 너무 재미없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도 출간된 그의 저서 『대단한 책』에서 이런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퍽 놀랐다. 다른 책도 아니고 교과서를 그처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 그런 교과서가 있다는 게 낯설었다.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에 그래도 재미를 느낀 건 국어 교과서였는데, 그렇다고 미리 통독하고 싶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설명문, 논설문, 고전문학, 현대시, 소설, 수필 등등이 고루 등장해야 하는 사정상 대부분 짧은 발췌문 위주였고, 그래서 어떤 글이든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국정 교과서에 실린 글은 시험에 절대적이었다. 주제어에 밑줄 긋고, 은유법인지 직유법인지, 시험 출제자의 의도에 맞춰 답을 외워야 했다. 장편소설 같은 긴 글의 원문 전체가 교과서에 실린다면 큰 일 날 판이었다. 자연히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재미는 정규 수업 이외의 활동에서 알아서 터득할 일이었다. 요즘이야 교과서도, 예문도 한결 다양해졌지만 짧은 글, 발췌문 위주인 건 여전하다. 통독의 즐거움, 통독의 요령은 역시나 다른 방식으로 익혀야 하는 셈이다.



 물론 재미가 길이에 달려있는 건 아니다. SNS에 돌아다니는 짧은 글 한 토막이 큰 웃음을 주는 게 좋은 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여러 시간 들여 통독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재미를 맛보게 한다. 음원 한 곡이 아니라 음반 전체를 듣거나 그림 한 장이 아니라 화집 한 권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요네하라가 재미없는 일본 교과서의 대표로 타박한 건 2000년대 초 처음 출간돼 동아시아에 역사 왜곡 논란을 낳았던 이른바 『새로운 역사 교과서』다. 요네하라는 ‘지루해서 읽는 것이 고통이었다’면서 이 교과서에 반대하는 일본 지식인들이 쓴 책, 그중에도 오에 겐자부로의 글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대비시킨다. 특히 오에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필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해외 유명인의 글이, 같은 인물이 남긴 글 전체와 비교해 부적절하게 인용됐다는 걸 지적한다. 짧은 발췌문이 아니라 원문을 통독하는 건 재미를 넘어 이런 의미도 있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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