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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가슴의 문제, 머리의 문제

고정애
논설위원
어제 2년 연장이란 어정쩡한 결론이 난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을 곁눈질하면서 떠오른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행위나 기술에 대한 위험성을 어떻게 느끼나를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 폴 슬로빅이다. 이른바 ‘위험 인식(Perception of Risk)’이다. 그의 연구를 변용하면 이런 문답이 가능하다.

 문) 다음 중 무엇이 가장 위험하다고 보나. 순서대로 나열해 보시오.

 ①원자력발전 ②자동차 ③권총 ④흡연 ⑤음주 ⑥비행기 ⑦수술

 여성에게도, 대학생에게도 1위는 원전이었다.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방사성폐기물에도 투영됐다. 방폐장을 원전, 심지어 핵무기 실험시설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봤다. “사람들은 원자력과 관련된 무엇에든 경기(驚起)를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고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댄 가드너 『이유 없는 두려움』)고 할 정도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문이냐고? 그렇지 않다. 사고 이전에도 두려움은 존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겐 10가지 보기 중 가장 덜 위험한 게 원전이다. 위험도만 따지면 자동차가 가장 꺼릴 부류고 그 다음이 흡연-음주-권총-수술 순이다.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이구동성으로 “원전이 안전하다”고 외친들 사람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다. 아무리 전문가의 견해라도 대중의 확고한 생각에 반대되면 철저히 무시되기 때문이다. 감성인 가슴이 이성인 머리를 압도해서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우리도 못지 않을 게다. 프랑스에선 원전에서 나오는 작업복·장갑 등 즉 저준위방사성폐기물은 표층매립한다. 우린 지하 100m까지 팠다(경주 방폐장). 그만큼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고 느꼈고, 돈을 들여야 했던 거다. “가슴을 설득하는 데 애먹었다”(송명재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이사장)고 한다. 우리 정부가 원자력 정책을 할 때 극히 신중할 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근래 협상 과정에서도 신중함이, 정교함이 발휘됐는가. 아쉽게도 부정적이다. 전문가 사이의 공감대도, 정부의 정책결정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장으로 간 게 아닌가 싶어서다.

 대표적인 게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 여부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의 핵 폐기물 처리가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라고 말하면서 드라이브가 걸렸다. 2024년이면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임시저장소가 포화가 되니 재처리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재처리 기술론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이 핵심인 양 부각됐다. 프랑스·일본 등 재처리 국가만 거명됐다.

 사실 세계 최다 원전 보유국(104기)인 미국 자신이 재처리를 안 한다. 현재로선 경제성이 없다고 본 거다. 일단 중간 저장해뒀다가 다시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을 두고도 정부는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갸우뚱한다. 산업화 가능성도, 파이로프로세싱한 연료를 땔 원자로를 개발할 가능성도 미지수다. 더욱이 정부의 입장은 “부지(임시저장소)에서 관리하되 중간저장시설 건설 등 관리 방침은 국민적 공감대 하에 추진한다”(2004년)는 거였다.

 그런데도 우리 쪽 요구가 ‘재처리해야 하고 그 방법은 파이로프로세싱’ 쪽에 무게가 실리니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국내 전문가도 말이다. 오죽하면 “파이로프로세싱 로비”(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란 주장까지 나왔다. 점잖게 말하는 이도 “확정되면 연구비가 조 단위 이상 올라갈 거다. 그러나 그건 원자력계 반쪽 의견”이라고 했다. 정부의 협상력이 높을 리 있겠는가.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선 “왜 주권 행사를 못 하느냐” “일본은 재처리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느냐”는 목소리부터 “탈핵(脫核)하자” “핵개발을 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원자력에 주권·일본까지 덧붙여져 더한 ‘가슴’의 문제가 된 거다. 정부가 이제라도 이성, 즉 머리의 문제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숙제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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