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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금 캐는 사람들

윤창희
경제부문기자
금값이 좀 떨어졌지만 금은 금이다. 지난 주말 강원도 홍천을 갔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남자 대여섯 명이 강바닥에서 흙을 퍼내 접시에 담는다. 인터넷 동호인들인 이들은 하천가 돌 주변이나 풀뿌리 흙까지 담으며 무언가를 찾는 데 여념이 없다. 이렇게 퍼낸 흙을 패닝접시라 불리는 둥근 판에 담아 물속에서 몇 차례 흔드니 흙과 모래는 흘러가고 작은 입자만 남는다. 1~2㎜밖에 안 돼 보이지만 루페(확대경)로 보니 반짝반짝 광채가 인다. 와! 사금(砂金)이다.



 남아공에서나 나는 줄 알았던 금을 우리나라 강에서 캐다니. 묘한 흥분이 온다. 돌아와 자료를 뒤져보니 사금 캐기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5년 광복 후 생업으로 사금 채취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80년대 이후엔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사금 캐기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동호회 중심의 취미활동이다.



 금 성분이 들어있는 암석이 풍화작용으로 부서지면, 그 속의 금 입자들은 하천으로 흘러가 바닥에 쌓인다. 이를 사금이라 한다. 동호인들이 올려놓은 체험기를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천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사금이 있다. 동호인 카페 ‘금을 줍자’의 매니저 ‘태양중심’은 “삼천리 곳곳에 사금이 알알이 박혀 있다”고 말한다.



 운때가 맞는 날 숙달자들은 하루 한 돈(3.75g) 정도의 수확을 올리기도 한다. 간혹 5㎜ 이상 되는 알갱이도 발견되는데, 괴금(槐金·nugget)이다. 하지만 욕심을 품으면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철저히 취미로만 접근해야 한다는 게 고수들 충고다.



 황금광 시대였던 1930년대 일본은 세계 5위의 금 생산국이었다. 그리고 그 금 생산의 상당 부분이 한반도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동호인들은 옛 금광지역의 주변 하천을 표적지로 삼는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 동호인 카페에 올라온 30년대 신문기사를 보니 쓴 웃음이 난다. 사금과 관련된 갖가지 사건사고, 대박 스토리, 심지어 금광에 들어갔다 변사체로 발견된 미국인 얘기까지, 허망한 꿈을 꿨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담겨 있다. 38년 매일신보는 강원도 횡성에서 학생이 사금을 채취해 일본에 헌납했다는 사실을 선전한다. 이런 기사들은 동호인들에겐 옛 금광의 위치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 자료다.



 요 며칠 금값 급락을 계기로 중국·홍콩·인도에서는 금을 사려는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인의 금 사랑은 전 세계 금값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베이징의 최대 금상점인 카이바이에는 19일 금괴를 사러 온 부자들이 10m 줄을 섰다. 한국의 은행 PB센터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싼 김에 사두려는 투자수요, 또는 이 참에 국세청 몰래 자식에게 금덩어리 하나 안기려는 절세 수요일 것이다. 그래도 1㎏에 5200만원 하는 골드바는 서민에겐 먼 나라 얘기다. 애들 돌 반지를 몇 년 전에 다 팔아먹고 금붙이 하나 없는 기자에게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금 얘기만 나오면 더 눈이 간다. 금, 넌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윤창희 경제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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