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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고비용 단어 영광·위대·존엄

1991년 걸프전쟁의 연합군 총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은 깜짝 놀랐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프랑스군이 예상보다 훨씬 취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가 자랑하던 첨단 재규어 전투기에 야간 공격 기능조차 없었다. 다른 폭격기도 성능이 떨어져 작전에 제대로 투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신간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에서 인용)



슈워츠코프는 프랑스군을 이라크군 정예부대와 맞닥뜨리지 않도록 외곽에 배치했다. 프랑스군은 모욕을 느꼈지만 전방에 배치됐다면 더 큰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2년 이라크전에 프랑스가 참전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나쁜 기억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프랑스군의 허약한 체력은 이미 1970년대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에게 간파당했다. 슈미트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에게 “냉전시대 프랑스의 상황 중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재래식 군사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강대국 프랑스의 군대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프랑스 육군은 4000대의 현대적 장갑차를 원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500대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헬리콥터가 현대전에서 중요해지자 900대 확보를 계획했으나 190대로 만족해야 했다.



이는 사실 핵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56년 수에즈 전쟁 때 소련의 압력과 미국의 방관 속에서 핵무기 없는 서러움을 톡톡히 맛봤다. 그런 가운데 독자노선과 ‘프랑스의 영광’을 부르짖었던 샤를 드골 대통령이 집권하자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60년 2월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첫 핵실험을 했다. 영국보다 8년 늦게 핵 보유국이 됐지만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사실 핵무기는 위력에 비해서는 비용이 싼 편이다. 이는 핵개발의 경제적 명분이기도 하다. 한 도시를 초토화하려면 재래식 폭탄을 적재한 폭격기로는 엄청난 규모의 항공 전력과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핵무기를 적재한 폭격기라면 소수로도 가능하다. 방공망에 대부분 격추돼도 살아남은 한 대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핵무기 개발·유지와 업그레이드 비용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드골은 1차 핵무기 확보에 전체 국방비의 20%, 전체 무기조달 예산의 40%가 필요할 것이며 제2세대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비용이 조금 더 들어갈 것이라는 참모의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아주 보수적으로 계산한 숫자였다. 실제로는 기본 핵무기 확보에 전체 국방예산의 절반 이상이나 들어갔다. 폭격기 등 전체 핵 전력 확보에 투입된 비용은 훨씬 더 많았다. 65~71년 중무기 획득 예산의 절반 이상을 핵무기가 잡아먹었다. 다른 분야의 군 현대화는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프랑스군은 핵무기 때문에 오히려 허약해졌다.



프랑스는 핵폭탄·미사일·전략폭격기·첨단전투기·항공모함 등 비용이 한없이 들어가는 무기체계를 운용하며 강대국의 일원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속까지 알차지는 못했다. 현실적으론 오직 미국만이 이 정도 규모의 군대를 실질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핵을 비롯한 엄청난 전력을 유지하려 했던 소련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경제난을 겪다 무너졌다. 이젠 미국도 경제적 압박에 과도한 군사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핵무기·영광·위대·존엄은 정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고비용 단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군대를 유지하고 목에 힘을 주려면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돈 없이 버티는 군대는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을 텐데….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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