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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갈 듯 파란 하늘 신내린 듯 휘도는 집시 모든 게 뜨거운 곳

미하스의 좁은 골목길. 흰 집으로만 지어진 마을에서 흰색 이상의 많은 색들을 만난다. 창문 열고 맞은편에 사는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모습이 정겹다.
스페인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으로 알려진 안달루시아. 지중해를 품고 있어 다채로운 음식과 문화로 스페인의 대표선수 격인 지역이다. 역사적으로는 사라센이라 불렸던 서아시아의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오래 받아온 영향으로 여전히 이슬람 문화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시인이며 여행작가인 이병률씨가 세비야, 론다, 말라가, 그라나다, 미하스 등 안달루시아 사람들과 풍경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가다

1 론다의 누에보 다리는 깊이 100m가 넘는 계곡에 다리를 놓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역할을 한다.
2 계곡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도시 론다의 최고 인기장소인 전망대에서 바라본 론다 평원.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심어진 농가들을 내려다보면 단번에 축복받은 땅의 기운이 느껴진다. 3 안달루시아 지방의 아기자기한 손 그림들이 그려진 여러 접시. 이 접시들을 보고 있노라면 요리가 배우고 싶어진다. 4 스페인의 대표 먹거리, 전통 발효 햄을 파는 하몽 가게. 남자의 가슴팍 크기의 하몽을 걸어놓은 가게들이 여느 구멍가게보다 훨씬 많이 눈에 띄었다.
돼지 뒷다리햄, 하몽 샌드위치의 묘한 맛
누군가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쏜다면 금방이라도 하늘에 큰 금이 갈 것만 같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몰고 오는 청명한 날씨였다. 그 날씨에 고스란히 비친 세비야는 잘 닦인 유리 위에 세워진 세트장 같았다.
성당의 종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골목 어귀에 앉아 맞은편 집 지붕 위까지 날아올라간 한 떼의 유채꽃씨 무리들이 자리를 잡고 자라 온몸을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새들이 어디선가 힘차게 날아올랐다가 성당 첨탑 위로 올라가 앉는 것을 보는 것. 세비야의 봄은 이토록 곡선도 직선도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 것은 하몽이었다. 하몽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햄이다. 스페인의 전통적인 저장식품으로 돼지의 뒷다리 부위를 소금에 절여 공중에 매단 다음 그늘에다 반 년에서 일 년 동안 건조시킨 저장음식이다. 어딜 가나 골목에 하나씩은 하몽 가게가 있었고, 길거리에나 공원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조차 모두가 하몽을 먹고 있었다. 하몽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 같았다. 이쯤 되면 홍어나 김치처럼 중독이 강한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저장을 해서 오래 두었다 먹는 방식도 어느 정도 닮은 듯하다. 특히 그들은 바게트와 치즈와 하몽을 얹은 샌드위치를 들고 다니면서까지 먹는데 삼박자로 치자면 우리의 삼합에 비교할 만한 것일 수 있겠다.
그들의 주거형태에 있어서도 지하실의 중요도가 굉장히 높은 것은 바로 이 하몽 때문이다. 큰 돼지 뒷다리로 만든 하몽을 걸어 놓고 식사 때만 되면 지하에 내려가 몇 조각을 베어 온 다음 식탁에 내놓는다. 물론 하몽의 절대적인 단짝으로 와인을 빼놓을 수가 없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지역의 햄 종류보다도 조금 짠맛이 강한 특성을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서유럽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상 염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몽 중에서도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를 제일로 꼽는다. 도축 전에 도토리(베요타)를 먹여서 급히 지방층을 늘린 돼지로 만든 것으로 식당 어딜 가나 메뉴 상단에 올라와 있거나, 어느 골목을 지나든 이 하몽의 독특하면서도 풍미 넘치는 향내를 맡을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먹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아침과 점심 식사에 비해 저녁의 식사량은 혀를 내두를 정도니 말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남에게 먹이는 것 또한 좋아한다는 사실.

5 집 안팎을 가꾸기 좋아하는 안달루시아 사람들. 어떤 타일로 어떻게 장식을 해놓았는지가 일단 그 집의 얼굴인 셈이다. 6 흰색과 노인은 무척 잘 어울린다. 태양을 피해 그늘을 따라 걷는 노인의 모습이 여린 새 같다.
7 안달루시아에는 여전히 돌포장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돌포장길을 걸으면 잃어버린 시간들이 돌아올 것만 같다.
또 하나 넘쳐나는 게 있으니 그것은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타일과 접시 같은 세라믹들이다. 특히 스페인 기념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접시들은 음식을 담아내는 용도 이외에 동시에 거의 다가 벽걸이용으로도 쓰인다는 특성을 보인다. 스페인풍의 집이라고 하면 예외 없이 장식되어 있는 타일과 벽에 걸어 놓은 접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오래된 것과 새로 된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린 사람에 따라 화풍도 구분되며 재질에 따라 그 지역의 특산으로 나뉘기도 한다. 어떤 접시를 어떻게 얼마나 걸어 놓았느냐가 그 집의 분위기와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이다. 누대를 통해 물려받는 접시에 대한 상징과 의미도 굉장하다고 한다.
세비야를 찾은 때는 지난 4월 초, 오렌지 꽃향이 진동하는 시기였다. 가로수로 심어 놓은 오렌지 나무 사이를 걸으며 곧 이 도시에서 만나게 될 집시들을 떠올리면서 가슴 두근거렸다. 내가 가진 집시의 이미지는 ‘유랑’과 ‘신통력’, 그 두 가지였다. 인도 쪽에 그 뿌리를 둔 집시들은 수세기에 걸쳐 서아시아를 넘어 동유럽을 건너 스페인까지 흘러들어온 유랑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주머니에 든 동전 몇 개, 그리고 커피잔에 남은 커피 가루 몇 개만으로도 사람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나는 그들이 흔들리면서 살고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을 가졌을 거라 오래전부터 믿어 왔다.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본 건 투우경기장 옆에 위치한 제법 규모가 있는 공연장(El Patio Sevilla)에서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집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세비야의 풍부한 색깔을 담고 있는 공연이었다. 세련된 무희들의 춤과 연주자들의 음악 모두 플라멩코가 가진 특유의 온도를 넘치게 담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또 예술적으로도 손색 없는 무대였다.

스페인 속 아랍 세상, 알바이신 지구
그라나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기대가 컸던 알바이신 아랍지구로 향했다. 알바이신 아랍지구는 이슬람교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라나다가 크리스천들에게 함락되자 세력이 약해진 그들만이 모여 살았던 요새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동네에 있을 법한 야트막한 산 하나가 온전히 알바이신 아랍지구였고 구불구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골목길들로 연결되어 있어 그라나다에서는 알람브라 궁전 다음을 잇는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랍문화 특유의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랍계 사람들이 아랍물건을 내놓고 팔거나 아랍음식 냄새가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어도 스페인이라는 캔버스에 잘 스며든 물감 같았다. 알바이신 아랍지구 일대를 꼭 가보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그 옆에 붙은 사크로몬테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곳은 그라나다에 정착한 집시들이 산의 경사면을 파고 동굴을 만들어 살았던 지역으로 여전히 오래전부터 살았던 동굴들이 남아 있는 데다, 그 동굴과 바깥을 연결해서 지은 집에서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 지역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적이 드문 시간에는 접근 자체가 어렵지만 집시풍의 플라멩코 공연이 열리는 밤 시간에는 미니 버스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외부인에게 공개되는 아주 특별한 동네였다.
밤 11시에 시작한다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사크로몬테의 공연장(Venta El Gallo)에 도착했을 때 두 명의 무희가 무대 한쪽에 서서 타콘(굽을 치는 발동작) 연습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집시의 얼굴을 한 여인들이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네 명의 무용수가 단독으로 춤을 추는 무대가 펼쳐졌는데 그때 제일 나이 어린 한 집시 여인의 춤에 미칠 듯한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눈빛, 발동작, 손뼉소리. 그 모든 것들에 팽팽히 신기(神氣)가 내비쳤다. 그녀의 몸은 온통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고 무대 옆 의자에 앉아 그녀의 무대를 지켜보던 무용수들조차 그녀의 춤에 넋을 놓았다. 춤을 추면서 접신이 된 상태였다(스페인 말로는 그 경지를 ‘두엔데’라고 한다).
그녀가 그 순간, 만난 것이 영원이었을지 절대였을지 아니면 천국이었을지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음과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울렁이는 것, 그 사이에서 그 무희의 영상은 칼끝이 되어 나를 무참히 찔렀다. 아주 먼 곳으로부터 유랑의 유랑을 거쳐 대륙의 끝인 스페인에 도착해, 그것도 스페인의 끄트머리라고 할 수 있는 이곳으로 오기까지 그들은 그들만의 질기디질긴 심장을 놓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8 스페인 예술의 절정인 플라멩코. 접신한 상태에서 춤을 추는 한 무희의 모습을 보면서 몇 겹의 영혼과 마주쳤다.
9 고독하고 한 맺힌 눈빛으로 낡은 기타에 목소리를 얹어 노래했던 집시 노인.
두 개의 공연을 보고 난 며칠 후 말라가의 어느 날 밤, 나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인적이 드문 거리에 앉아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그 두 번의 공연에서 받았던 인상이 워낙 진해서 며칠 동안 그 후유증에 갇혀 지냈으므로 조금은 마음의 소란을 제거해도 되겠다 싶어서였다. 한데 불쑥 그 자리에 한 노인이 나타났고 그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노래를 잇는 목소리는 거칠고 묵직했으며 한을 저며내는 듯했다. 그 깊은 밤의 주인은 집시 노인의 음악이었다. 나는 그만 거두어들이기로 했던, 집시들의 춤으로부터 얻은 푸른 멍이 채 풀리기도 전에 다시 그 안으로 떠들려 끌려가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길들과 사람들, 이 둘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고 인생의 일일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길들 앞에서는 어떤 선택이 필요하지만 사람의 경우엔 선택만으로는 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길은 사람을 가두지 않지만 사람은 사람을 가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집시들을 만나서 사람을, 사람의 바다를 만났다.

온종일 사랑 나눈다는 안달루시아 사람들
밤 사이 핏발 선 감정이 물러가고 아침이 되어 미하스로 가는 길이었다. 문득 바다가 펼쳐졌고 처음엔 그냥 바다인가 싶다가 이내 그것이 지중해인 것을 알고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차분하고 아름답고 드넓은 바다였으나 사람 없는 지중해는 왠지 지중해가 아닐 거란 생각에 빠졌다. 바다를 자기 몸처럼 아끼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중해는 비로소 지구 최고의 바다로 완성되며 승격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은 행운 이상의 복을 거머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땅의 기운들을 온몸에 두르고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스페인과 안달루시아는 다르다고. 스페인은 스페인이고, 안달루시아는 안달루시아일 뿐이라고. 그 말들은 차라리 구호 같기도 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던 한 노인의 일갈은 또 어떤가.
“스페인 사람들은 밤마다 사랑을 나누지. 하지만 우리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하루 온종일 사랑을 나눈다네.”
안달루시아 사람의 드높은 자존심과 자긍심만이 아니라도 그 말은 왠지 허튼소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본 풍경과 내가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뜨거웠기 때문이다. 땅과 사람들이 하나가 된 모습들에서 거대한 풍경이 일어났다. 이 파문이 당분간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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