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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창호에 비치던 불빛의 따스함 담았죠

“처음엔 스팸 메일인 줄 알고 열어보지도 않았어요. 해외에서 페어 참가하라는 연락이 종종 오니까 그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죠.”
송승용(35) 디자이너는 지난 설날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올해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미래의 디자이너’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은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과 연계된 디자인 행사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미래의 디자이너’ 선정된 송승용씨


전혀 예상치 못한 낭보였다. 이 상은 참가자가 출전하고 심사를 하는 형식이 아니라, 경력 15년 미만의 모든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물망에 오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올해는 셋을 뽑았는데 송씨가 그중 하나였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11일 밀라노에서 열린 시상식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의 경력, 화려하다고만 볼 수 없다. 동아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랭스 국립 고등미술학교 학사·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클로디오 콜뤼시(Claudio Colucci)의 스튜디오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기간은 2년 남짓. 2010년 귀국해 ‘SY 디자인’이란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런데 심사단이 어떻게 그를 찾아냈을까. 18일 그를 만났을 때 이 질문부터 던졌다. “아마 인터넷으로 저를 알린 게 중요했던 거 같아요.”

프랑스에서 돌아온 건 외국에서 작업실 하나 운영하기도 쉽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막상 국내에선 해외 갤러리와의 교류가 어려웠다. 작품 하나 보내려 해도 운송비가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렇다고 작품값을 올릴 수도 없는 일. 돌파구를 온라인에서 찾았다. 건축·인테리어·디자인 등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디진(dezeen)’이라는 사이트에 작품 사진을 보냈다. “점점 클릭 수가 올라가고 반응이 좋아지더라고요. 해외 갤러리나 언론 매체에서 먼저 찾는 일이 많아졌죠.”

1, 5 ‘사랑방’ 2, 6 ‘롱’ 3, 7 ‘다미 컬렉션’ 4, 8 ‘오브제-O’
그의 작품이 호평받는 건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가령 의자를 앉는 기능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등받이를 키워 사다리를 만들고 발판을 넓혀 때론 선반으로 확장한다. 이들을 몇 개 붙이면 파티션으로도 쓸 수 있다. “물건이 가진 더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주고 싶어요. 고정관념을 벗어나 상상을 하는 즐거움을 주자는 것이 제 작품의 목적이죠.”

그렇다고 ‘멀티 기능’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은 아니다. 그도 처음엔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가구들을 만들고 싶어 했다. 논문 주제도 그렇게 잡았다. 하지만 파리의 평범한 가정,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네들이 그러더군요. 가구를 아무리 기능적으로 만든다 한들 얼마나 넓어지겠느냐고. 오히려 도시 전경을 시원스레 볼 수 있는 창문 하나에서, 따뜻한 온기를 주는 전등 하나에서 얻는 위로가 더 크다고요.”

그때부터 가구의 물리적 기능이 아닌 감성적 기능에 의미를 뒀다. 의자에 앉아 커다란 갓을 내리면 혼자만의 공간이 되는 ‘오브제-O’, 집 안에서의 유목을 즐기도록 전기선을 10m로 늘인 전등 ‘롱(Rong)’ 등이 그런 예다.

감성적 디자인은 우연하게도 우리 전통과 통했다. 문창살, 창호 등 그의 작품에선 한국적 소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가 처음부터 전통을 의식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가령 의자 두 개를 맞붙여 만든 ‘사랑방(SALANGBANG)’도 그랬다. 문을 열면 의자가 나란히 놓이는 소파 같고, 문을 닫으면 아늑한 쉼터가 되는 작품은 스케치 당시만 해도 미니멀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좀 더 따뜻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시골 외가를 떠올리게 됐다.

“초등학교 때 1년쯤 경남 산청군의 초가집에 살았어요. 그때 본 창살과 창호가 생각났죠. 닫혀 있지만 불빛이 새어나올 때 느껴지는 온기, 그게 딱 이었어요.” 외관을 나무 창살로 바꿨고, 다음 작품 ‘rong’과 ‘다미 컬렉션’에도 나무 창살을 응용했다.

그는 6월 열리는 ‘디자인 바젤’에서 신작을 발표한다. 상을 후원한 W호텔과의 협업 형태로, 방콕 W호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는 작품들이다. 페어·심사단 반응이 좋을 땐 실제 호텔에 설치된다. 현재는 3D 작업만 마친 상태. 그는 5월 한 달간 실물 제작에 매달려야 한다.

세계에 이름을 떨칠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지만 의외로 그는 담담했다. “제 작품이 꼭 대단하다거나 예술성이 넘친다고는 보지 않아요. 실험적이면서도 따뜻한 이미지가 지금 우리가 찾는 무엇이겠죠. 디자인의 역할이 그런 위로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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