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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살아난다 마법이 시작된다

1 로버트 사부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3)
동물 나라 동화책을 보다가 책 속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온다면? 생일 카드를 펼쳤을 때 케이크에 촛불이 켜진다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마법, 이를 만끽할 기회가 생겼다. 5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세계팝업아트전’이다. 전시는 널리 알려진 팝업북은 물론 회화·조형·사진·영상 등 다양한 팝업 작품 4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팝업북의 대가 로버트 사부다와 해리포터 팝업북으로 유명한 브루스 포스터 등 저명한 국내외 팝업 아티스트 19명이 대거 참가한,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규모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팝업을 예술로 명명한 첫 기획전이라는 것. 단순히 종이를 접고 자르는 기법이 아니라 엄연한 조형의 한 장르임을 선언한다. 이를 섣부르다 볼 것도 아닌 것이 최근 유럽에선 팝업 아티스트들의 개인전이 활발하게 열리는 데다, ‘종이 건축’이니 ‘종이 공학’이라 부를 정도로 팝업의 정교한 작업을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이를 이해하는 ‘개론서’나 다름없다.

2 전시 문구를 팝업 작품처럼 입체감을 살려 만들었다. 3 루이까또즈의 신상품 가방을 전시한 대형 팝업 설치물(2012) 4 마틸드 르밀의 ‘ML 팩토리’(2012)
탄성이 절로 터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일단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각오할 게 하나 있다. 유치원 단체관람객이다. 평일 하루에만도 서너 팀이 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팝업=동화책’이란 연결고리에선 당연한 광경. 영화로 치면 남녀노소 다 즐기는 ‘전체 관람가’에 온 것이라 여기는 게 낫다.
‘병아리 떼’들이 내는 환호와 감탄도 전시장 배경음악으로는 꽤 괜찮다. 명작동화·현대동화 등 팝업북이 차례대로 놓여 있는 ‘움직이는 책: 책들이 살아있다’를 둘러볼 땐 더욱 그렇다. 책 대부분이 투명 플라스틱 상자 안에 있지만 책과 연결된 외부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설치해놔 팝업의 재미를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비슷한 어린이 관람객이 워낙 많다 보니 괜히 체면 차릴 필요가 없다.
어른·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을 기다려 보는 책들도 있다. 로버트 사부다의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신데렐라』등 ‘팝업북의 명작’ 들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트럼프 카드가 반원을 그리며 마치 공중에서 휘날리는 듯한『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참을 들여다봐도 낱장 카드의 연결과 고정성이 놀랍기만 하다.
브루스 포스터의 『해리포터』도 관람객들이 한참 눈을 떼지 못하는 작품이다. 공상 속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그럴듯하게 재현해냈다. 브루스 포스터의 작품은 이것 말고도 『유명인의 위기』『건축학의 경이로움』 등 다양하게 볼 수 있다.
팝업북이라고 동화책만 있는 건 아니다. 디자인·3D 팝업북도 생각보다 꽤 비중 있게 다뤄진다. 각 장마다 원색의 그래픽 패턴으로 팝업을 만들어낸 데이비드 A 카터의 『숨바꼭질』, 거대한 도시 빌딩이나 은하수처럼 생동감 넘치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보여주는 필립 위제의 『은하들』『파워팝』 등이 대표적이다.
전시장 한편에 모아놓은 팝업북 희귀본도 놓치지 말 것. 19세기 초반부터 1980~90년대 제작된 것들까지 있다. 최소현 큐레이터는 “팝업북의 경우 초판이 실패하면 금세 절판돼 20년 전 책들을 보기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치 오차도 없이 계산하고 자르고 접고…
아마도 이번 전시의 핵심은 두 번째 테마일 터다. 책을 벗어나, 또 기능이나 효과를 따지지 않고 작업한 ‘순수 예술로서의 팝업’ 코너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정교한 도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종이를 잘라내야 하는 완벽함을 기본으로 한다. 호주 출신의 작가 잉그리드 실리아커스의 건축 모형작 ‘여성화’만 봐도 그렇다. 종이를 실낱같이 자르고 접어 3개의 구를 만들고 이를 층층이 연결했다. 마치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은데, 종이의 무게를 치밀하게 계산해야만 아래층이 찢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업 당시를 두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정확성을 필요로 했다”고 회고했다.
스토리가 담긴 작품들도 있다. 4개의 나무판 위에 각각 종이 잎사귀를 만들고 색을 입혀 계절의 변화를 표현한다거나(리지 토마스, ‘숨은 사계’ 시리즈), 미국을 상징하는 카우보이·핀업걸의 이미지에 팝업 효과를 추가해 마치 영화의 한 컷 같은 느낌을 내는 작품(토마스 엘런)은 신기하면서도 이해가 쉬운 작품들이다.
이와 반대로 심오한 ‘개념 팝업 아트’도 존재한다. 영국 출신의 폴 잭슨은 흰색 종이로 만든 팝업 카드 8개를 똑같이 제작해, 각도를 서로 달리해 일렬로 배열했다. ‘뮤지엄’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미니멀리즘 팝업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여전히 ‘그래 봤자 종이 아니냐?’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작품을 보시라. 중국 출신 작가 유 조르디 푸의 작품 ‘구름 샹들리에’다. 종이처럼 얇은 알루미늄 한 판을 레이저 커팅하고, 그 속에 LED를 설치했다. 빛을 받은 알루미늄은 음영을 만들어내며 입체감을 극대화시킨다. 중국 특유의 문양을 그려낸 듯한 커팅 덕에 작품은 전통과 첨단을 조합한 분위기도 자아낸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으로는 궁·고구려벽화 등 한국 전통문화 유산을 소재로 삼은 카드(박석), 타로 카드가 팝업처럼 젖혀지는 효과를 내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설치물(권지은) 등이 전시장을 채웠다.

브랜드와 협업하며 하나의 장르로 성장
전시를 보다 보면 궁금하다. 팝업북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시초는 책이 입체효과를 필요로 한 13세기부터였다. 천문·종교·지도책에 회전 기법으로 처음 등장했고, 16~17세기엔 의학·해부학 책에서 많이 쓰였다. 어린이를 위한 팝업북은 18세기가 돼서야 대량 생산됐으며, 성인 책에 팝업북이 나온 건 20세기의 일이었다.
이처럼 800여 년간 책이라는 장르에 묶여있던 팝업은 최근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건축·인테리어·웹디자인·광고 등 산업 분야로 응용이 활발해진 것.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했던 세계적 작가 마틸드 니베와 벤자 하니 역시 “5~10년 전만 해도 팝업은 전문서적조차 구할 수 없어 독학하다시피 배워야 했던 분야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팝업이 예술로서 도약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순수 예술이 먼저 정착되고 산업과 응용되는 순서와 달리 팝업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 디스플레이, 팝업 카탈로그 등이 팝업 분야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마틸드 니베)
“에르메스·샤넬·불가리 등과의 협업이 일반인들에게 팝업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벤자 하니)
전시는 마지막 테마로 이런 ‘응용 팝업’들을 한곳에 모아놨다. 루이까또즈의 신상 가방을 홍보하는 대형 설치물, 샤넬 향수 브로슈어, 설화수 브랜드북 등이 눈길을 끈다. 어디서 한번 본 듯한 반가움이 드는 한편, 팝업이 얼마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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