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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력으로 진솔한 소박함으로 김광석을 추억하다

‘그날들’
1990년대, 김광석의 동의어는 대학 축제였다. 꽃피는 4월을 질투하던 지루한 중간고사를 마침내 끝내고 맞이한 찬란한 5월. 캠퍼스 잔디밭 여기저기서 막걸리에 순대 볶음, 파전 따위를 벌여 놓고 대낮부터 벌겋게 취한 사람들이 통기타 반주에 맞춰 김광석의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곤 했다. 그 무리에 끼어 있다 보면 왠지 인생을 조금 알 것 같기도, 살짝 어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뮤지컬 ‘그날들’, 대학로뮤지컬센터 6월 30일까지 /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 5월 19일까지

지난해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시작된 1990년대 추억하기가 올해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로 이어진 것은 그래서 필연이다. 90년대 초·중반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이 대한민국의 허리가 된 지금, 그들이 치열한 일상의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받고 싶은 곳이 바로 꿈과 낭만,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대학 캠퍼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가수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지난 3월 15일 첫 스타트를 끊은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4월 4일 유준상·오만석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개막한 ‘그날들’에 이어 연말에는 영화감독 장진의 작·연출로 기획 중인 서울시뮤지컬단의 ‘김광석’(가제)까지. 이미 공개된 두 작품은 저작권 문제로 ‘김광석 뮤지컬’이라 내세울 수 없지만, 어쨌든 경쟁은 시작됐고 선택은 관객의 몫으로 주어졌다. 과연 어떤 작품이 오래오래 사랑받는 진짜 ‘김광석 뮤지컬’로 살아남게 될까?

김광석 노래와 지금의 우리 사이에 20여 년의 간극이 있는 만큼, 공개된 두 작품 모두 2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플롯을 택했다. 그러나 ‘그날들’은 과감히 대학 캠퍼스를 버렸다. 소극장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를 연이어 롱런시킨 천재 연출가 장유정은 “히트곡에 기대어 추억에 호소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공식을 깨겠다”며 기발한 스토리를 꾸며냈다. 청와대 경호원과 한·중 수교 20주년에 얽힌 두 갈래 미스터리가 교차하는 발칙한 상상력이다. 의문의 퍼즐 조각을 맞추다 보면 가슴 찡한 휴먼드라마가 드러나는 장유정 브랜드가 블록버스터급으로 고스란히 사이즈만 키운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두 건의 실종사건이 맞물려 돌아가며 20년 전 비밀에 사랑과 우정을 한꺼번에 엮어낸 구성은 짜임새 있고 몰입도도 높았다. 봄날의 꽃가루와 의문의 악보를 복선으로 활용한 구성력과 상상력엔 감탄이 나왔다. 베일에 싸인 진실을 과거와 현재의 중첩된 기억으로 이미지화한 무대 디자인과 무술훈련을 토대로 한 역동적인 군무 등 볼거리도 충실했다. 대신 김광석의 노래는 한발 물러났다. 경호원들이 절도 있는 군무로 무술시범을 구사하면서 록 버전으로 편곡된 ‘변해가네’를 부르는 등, ‘김광석 낯설게 듣기’라 명명해도 좋을 만큼 원곡과 다른 옷을 입은 노래들이 무슨 맥락으로 사용됐는지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내적인 고백을 하는 잔잔한 발라드가 화려한 대극장 무대와 만나는 지점은 고민이 더 필요해 보였다.

반면 ‘어쿠스틱 뮤지컬’을 표방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설정은 진부했지만 날것 그대로의 김광석을 만날 수 있었다. 17년 전 김광석 같은 가수를 꿈꿨던 대학 밴드 멤버들이 다시 뭉쳐 콘서트를 열면서 추억의 책장을 넘기는 소박한 플롯은 예측 가능하고 평범했지만 거기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MT와 축제, 군대, 고시, 막노동 알바, 라이브 카페 등 청춘을 거쳐온 누구나의 기억 속에 자리한 배경들에 실연과 좌절 등 누구나 겪어온 경험을 엮고 김광석의 명곡들을 적소에 배치해 보편적 정서를 건드렸다. 김광석의 음색을 빼닮은 주인공 이풍세처럼 ‘이 풍진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일상의 갑을관계에 지쳤을 때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좋아서 어울리던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아련한 정서 말이다.

노래 위주의 콘서트 형식이지만 스토리 전개도 허술하지 않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효과적인 매개로 작용하는 것이 콘서트다. 콘서트 사회자를 자처하는 멀티맨이 극 안팎을 넘나들며 객석에 말을 걸고, 배우들이 악기 연주를 겸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점도 관객이 구경꾼을 넘어 무대의 일부가 되게 했다. 뮤지컬을 보러 온 건지 극중 엑스트라가 된 건지, 기분 좋은 헷갈림은 이 소박한 추억여행에 동승한 마음을 한층 들뜨게 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수식어를 버려도 좋을 만큼 기발한 상상력으로 창조해낸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주크박스 뮤지컬의 공식을 충실히 구현한 편안한 추억여행.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옷을 입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20년의 세월을 넉넉히 견디는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하며 쓸쓸한 인생을 위무해 준다는 것. 김광석의 노래가 가진 태생적 미덕일 것이다. 연말에 찾아올 세 번째 작품은 또 어떤 옷을 입고 또 한 해 멀어져 가는 청춘을 위로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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