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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있는 블랙유머로 좌중 압도 의원들, 쓴소리보다 덕담 바빠

#박근혜 대통령은 9일부터 19일까지 주말을 제외한 9일 동안 11차례 국회의원들과 식사를 했다. 전체 의원 300명 중 절반이 넘는 166명을 만났다. 원외인 새누리당 당협위원장 59명을 만난 12일 오찬까지 포함하면 12끼 동안 225명을 마주했다. 한 번 식사할 때마다 평균 18명(국회의원만 보면 15명)꼴로 만난 셈이다. 비(非)박근혜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 등 참석 안 한 이가 있긴 했지만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초청받았다. 민주통합당 의원은 세 차례 식사를 통해 30여 명 만나는 데 그쳤다.

12차례 225명 만난 박 대통령 식탁정치 스타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6일 공화당 상원의원 12명에게 백악관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사비로 밥을 샀다. 14일에도 공화당 의원들과 오찬을 했다. ‘시퀘스터(예산 자동 삭감)’로 인한 연방정부 폐쇄를 막기 위해 상원에서 예산안이 통과되는 게 필요해서다. 상원은 지난달 20일 예산안을 의결했고, “오바마의 밥상정치가 효과를 봤다”는 말이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10일에도 공화당 상원의원 12명과 만찬을 했다. 이후 예산안도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오바마는 한 달 사이 공화당 상원의원(45명) 중 거의 절반을 만났다. 이에 오바마의 저격수로 불렸던 공화당의 폴 라이언조차 “솔직하게 대화할 기회를 준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하는 등 공화당 의원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식탁정치’를 선보였다. 시작 시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 달 정도 이르다. 박 대통령과 의원들의 식사를 조율한 청와대 정무수석실 안팎에서 “오바마의 밥상정치가 효과가 크다는 언론 보도를 참조했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식탁정치엔 특유의 스타일이 드러났다는 평이 나온다.

참석자들은 박 대통령과 식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으로 ‘블랙유머’(우울한 내용을 익살스럽게 말하는 것)를 꼽는다. 19일 만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은 결례가 될 법한 이야기도 잘 받아주는데 외부에는 참모진이 굉장히 어렵게 느낀다고 알려져 안타깝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그게 다 유언비어예요”라며 웃었다. 세간의 ‘불통 리더십’ 논란을 웃음으로 일축한 것이다. 12일 민주당과의 만찬에서도 의원들이 “초기에 개혁을 하려면 의지를 갖고 개입하라”고 하자 “이건 개입하라 하고, 이건 개입하지 말라 하니 혼란스럽다”고 해 참석자들이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폭탄주 술자리보다 말 절제하게 되더라”
15일 오찬에선 박 대통령이 “최근 싸이가 2집 내고 류현진 선수가 2승을 거뒀는데 이런 게 끼와 꿈이 실현되는 사회”라고 하자 축구협회장을 지낸 정몽준 전 대표가 “왜 싸이와 류현진만 말씀하시느냐. 손흥민도 두 골 넣었다”고 웃음 섞인 추임새를 넣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제가 다 얘기하면 정 의원님이 하실 말씀이 없으시잖아요”라고 화답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시중 유머도 구사했다. 한 유부남이 늘씬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자 친구가 “아이가 다섯이야. 정신차려”라고 했다. 유부남이 “저렇게 예쁘고 늘씬한 여자가 아이가 다섯이나 있다니…”라고 감탄하자 친구는 “너희 집 아이가 다섯인데 딴 여자 쳐다보지 말라고”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한 번 성공한 유머는 ‘재활용’한다. 12일 민주당과의 만찬에서 누군가 “(의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것 같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그게 (국회의원의) 직업병이더라고요”라고 해 좌중이 웃었다. 이에 17일 새누리당과의 오찬에서도 박 대통령은 “농담을 해도 결국 업무 얘기로 돌아오니 어쩔 수 없다. 아이고, 우리 모두 직업병이네요”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말엔 “여성성이 드러난다”는 평도 있다. 9일 만찬에서 “코에 뾰루지가 났는데 아마도 여러분이 그리워서 상사병이 걸린 것 같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식사자리 후 의원들을 배웅할 때도 현관까지 나와 세심하다고 느낀 이가 많았다고 한다. 참석자들의 근황을 파악해 오는 철저함도 보였다. 10일 국회의장단 오찬에서 박병석 국회 부의장에게 “국회 배지를 한글로 바꾸는 법안을 제출하셨죠?”라고 묻고,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에게 “국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건 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식사 때마다 추경 예산과 부동산 대책 법안 통과 등을 국회에 촉구하는 건 잊지 않았다. 경제민주화 입법과 안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기회로도 활용했다.

의원들은 앞다퉈 지역구 방문 요청
식사 메뉴는 중국식이거나 갈비구이·현미잡곡밥 등 때마다 달랐다. 하지만 술은 항상 자제한다. 오찬에는 콜라나 포도주스가 나오고, 만찬에는 와인 한두 잔 정도가 전부다.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때는 전 의원을 대상으로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고 소주 폭탄주를 돌리는 분위기였는데 박 대통령은 와인 한 잔 정도만 마신다”고 전했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박 대통령이 여성이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 시절 소주 폭탄주 술자리 때보다는 말을 절제하게 된다”고 했다.

여야 의원들은 식사자리에서 ▶덕담이나 농담 구사형 ▶지역구 민원형 등으로 나뉜다. 16일 오찬에서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농담을 했다고 한다. “북한이 왜 못 쳐들어 오는지 아느냐. 첫째는 박 대통령이 계시고 둘째는 골목마다 대폿집이 있고, 셋째는 거리마다 총알택시가 있고, 넷째는 집집마다 핵가족이 있어서다. 대한민국 역대 국회의장은 몇 분인지 아느냐. 그동안 경상도 분이 의장을 맡을 땐 이장, 호남 분이 의장을 맡을 땐 으장이라 했다. 이번에 충청도 의장이 나와 처음으로 의장 발음을 하니 의장은 1명밖에 없다.” 이에 박 대통령은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같은 날 민주당 상임위 간사들과의 만찬에서도 한 의원이 농담을 했다. “(12일 만찬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 생일을 챙겨주셨다는데 온 김에 오늘 간사들 생일을 적어놓고 가야겠다. 나는 참고로 9월 9일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인사 문제 등에 대해 쓴소리를 했지만 새누리당 의원 중 그런 이는 적었다고 한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문제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쓴소리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밖에선 비판을 많이 하지만 사실 어느 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대놓고 문제를 제기하겠나”라고 털어놨다. 지난달 30일 당·정·청 워크숍에서 청와대를 따갑게 질타했던 모 의원도 “와이프가 더 이상 사고 치지 말라고 했다”며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어떤 의원은 “사람이 많아 진지한 대화를 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은 민원성 발언은 빠뜨리지 않았다. “의원들마다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지역구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기 바빴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번 식탁정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처음엔 ‘소통을 위한 노력’이란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지난 17일 윤진숙 장관 임명 강행 뒤 기류가 바뀌었다.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열심히 듣는다고 상대방이 느끼도록 메모하는 제스처는 있는데 결국은 자기 얘기”라며 “이런 게 반복되면 참석한 의원들이 대통령의 액세서리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고, 맨날 나오는 얘기여서 귀담아듣지도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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