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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러 대사를 대통령급 임명하고 4강 모두에 남북통일 이점 인식시켜야”

김성룡 기자
이광정 상사가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평화통일을 제시함에 따라 통일의 방법론을 깊이 천착해 온 원로 정치학자 진덕규(75·사진)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진 교수는 19세기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의 독일 건국과 1990년대 동·서독 통일 과정을 분석해 남북 통일에 적용할 교훈을 추적해 온 전문가다. 진 교수를 신촌 이화여대 인근 커피숍에서 세 차례 만났다. 학술원 회원으로 연구에 매진해 온 진 교수는 곧 ‘국민통합’을 주제로 학술원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통일 방법론 연구의 권위자,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남북대화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국제정치학에선 ‘대화를 통해 전쟁을 막은 경우는 없다’고 얘기한다. 한쪽이 전쟁을 결심하고 밀고 내려오는데, 다른 쪽이 타협을 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체임벌린 총리의 대독 유화책은 실패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대화, 유화책만으론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힘을 갖추고 있다. 남북대화에 나서야 한다.”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서 배울 점은.
“현실주의적인 접근이다. 첫째, 비스마르크의 외교 경험, 둘째, 작은 독일 통일론, 셋째, 관세동맹, 넷째, 국민들의 독일 통일 열망. 이런 것이 종합돼 통일이 이뤄진 거다. 한 단계의 성취가 더 높은 성취로 이어졌다. 정치지도자는 정말 현실주의자였으면 좋겠다.”

-비스마르크의 외교 경험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비스마르크는 처음부터 외교에 관심을 뒀다. 프랑스 지배 세력까지 분석했다. 외교로 시작해 정치로 들어온 것이 특징이다. 우리 지도자들은 너무 분화되어 있고 외교·경제·교육 등 제반 영역에 종합적 사고가 없다.”

-주변 4강에 대한 외교 역량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소한 4강 대사는 대통령급 인사, 즉 대선 유력 후보였거나 총리 정도는 지낸 인사가 초당적으로 맡아야 한다. 4강에 ‘대한민국과 함께하는 게 좋다’는 걸 인식시켜 줘야 한다. 지금 외교 역량으론 그것이 되겠나.”

-현실주의 노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미·중·일·러의 관계를 고차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남북 통일이 동아시아 전체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초기 단계의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즉 민족주의가 팽창주의가 아니라 문화적인 성격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북 통일이 동북아에서 팽창과 분쟁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4강에) 확고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

-독일 건국엔 관세동맹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관세동맹은 공통의 경제 이해를 가져왔다. 정치적인 통일은 대체적으로 경제와 문화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다. 우리도 북한과 경제·문화 교류부터 하고, 정치는 뒤따라오게 해야 한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90년대 독일 통일에서 배울 점은.
“첫째,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통일을 지지했다는 서독에 유리한 요소, 둘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 정책으로 시작된 동독과의 화해 노력, 셋째, 미국·영국·프랑스를 설득한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적 능력을 들 수 있다.”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 준 교훈은.
“서독은 동독에 고속도로를 깔아주며 경제 지원을 했다. 총리실에서 동독 스파이가 적발됐지만 면직 수준으로 넘어갔다. 통일 당시 동·서독 경제의 격차가 컸지만 화폐를 1대 1로 교환해줬다. 남북 관계도 국민들이 대결 대신 서로 하나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깃발이다. 깃발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 철저한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큰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6·25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게 확실히 보상해줘야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맞는 얘기다. 경제가 악화될수록 이데올로기 대결이 커진다. 실미도 사건도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결국 국가가 불러서 (북한에) 간 것인데 그 국가는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간 당사자와 가족에 국가는 보답해야 한다. 그래야 애국심이 커지고 안보가 강해진다. 미국·영국이 좋은 사례다.”

-내년 소치 겨울 올림픽 때 남북 협력도 필요한 것 같다.
“좋은 생각이다. 경평전처럼 남북 축구선수를 섞어 경기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올림픽에서도 한 종목만이라도 남북 단일팀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국민통합은 국가 발전 전략의 하나라고 했다.
“로마·중국·인도 등 역사상 주요 제국들은 통합과 관용이 지배할 땐 평화와 번영을 이뤘고 분열과 불관용이 지배할 땐 내리막 길을 걸었다. 통합은 배분이 전제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합의해 나가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며칠 전 야당 지도부를 만나는 걸 보고 잘했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고 정치를 해주면 좋겠다. 여야나 영호남, 보수·진보 등으로 갈등하는 단계를 확 차고 넘어갔으면 한다. 대통령은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과 국민의 지도자다. 또 청와대는 세계를 위해 일하는 곳이다. 문화가치를 정립해 달라. 국민이 부자라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게 아니다. 이렇게 잘사는 지금, 국민들의 불만이 많은 건 문화시민에 대한 가치가 정립되지 않아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다. 내가 죽고 싶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이 길을 온 것도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내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게 인생이다. 나는 부모님과 농사 지으며 아버지의 아들로 살고 싶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배신하기보다 배신당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듯 원수를 사랑할 순 없어도 내가 남을 배신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배신당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존재하는 것은 다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행복의 기준은 나이마다 다른데, 가정이 행복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부부간에 대화가 적다. 젊었을 때부터 대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진덕규 한국 정치를 역사정치학적으로 접근해 깊이 있는 성과를 냈다. 한국 정치의 이념 과잉과 전근대적 성격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파헤친 『한국 현대 정치사 서설』(2000), 『한국 정치의 역사적 기원』(2002) 등을 썼다. 1938년생으로 연세대 정외과 졸업 뒤 같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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