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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보다 사업 감각 뛰어나 발탁” VS “집안 후광 업고 쉬운 분야만 진출”

출판기업 현암사의 조미현(43) 대표는 1998년 말단 영업사원으로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해 2009년 대표가 됐다. 미술을 전공한 조 대표는 대학교수가 꿈이었지만 이젠 여장부 소리를 듣는다. “외모는 곱상해 말만 안 하면 ‘천상 여자’인데 입을 열면 ‘걸걸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아버지인 고(故) 조근태 사장은 조 대표를 포함해 1남2녀를 뒀다. 셋 모두 미술을 전공했고 경영보다 미술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조 대표는 “누군가 회사를 물려받아야 했는데 아버지는 형제 가운데 비교적 외향적인 내게 회사 일을 가르칠 만하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도 여성 리더십 … 딸들의 경영시대

여성 리더십의 시대, 기업에는 딸 CEO 경영의 바람이 분다. 주주총회에서 의사봉을 잡고,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딸들이 잇따른다. 크고 작은 기업에서 딸들은 회사를 살피고 일을 배운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삼성에버랜드 사장 정지이 현대 U&I 전무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진에어 전무 조미현 현암사 대표 남수정 썬앳푸드 대표
‘여자애가 설친다’는 말 들어가며 일 배워
대상그룹은 딸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대상은 지난해 임창욱 회장의 장녀 세령(36)씨를 식품사업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상무), 차녀 상민(34)씨를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부장급)으로 임명했다. 각각 식품부문 브랜드 관리·기획·마케팅, 신사업 발굴을 담당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임 상무는 지주회사 격인 대상홀딩스의 지분 20.4%, 임 부본부장은 38.4%를 갖고 있다. 임 회장(보통주 기준 2.9%)과 어머니 박현주 부회장(3.9%)보다 더 많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 조현아(39) 대한항공 부사장은 최근 호텔사업 지배력을 한층 강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대한항공은 이달 1일 제주 KAL호텔, 서귀포 KAL호텔, 제주 파라다이스호텔을 조 부사장이 대표인 ㈜칼호텔네트워크에 양도했다. 총자산 2343억원의 호텔 3개를 칼호텔네트워크에 넘기는 대신 대한항공이 신주 226만5439주(2265억원어치)를 인수하는 현물출자 방식이다.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30) 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 상무는 17일 계열사 진에어의 등기이사가 됐다.

아버지 못지않은 추진력이 있다는 평을 듣는 딸도 상당수다. 남충우 전 타워호텔 회장의 장녀인 썬앳푸드의 남수정(45) 대표는 95년 외식업체를 세우고 토니로마스·매드포갈릭 등의 브랜드를 선보였다. 매드포갈릭은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해외로도 진출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재벌 2세들이 취향 차원에서 외식산업에 진출하는 일은 왕왕 있지만 남 대표 같은 수완을 보여준 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딸들은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에 많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43)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40) 제일모직 부사장,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41) 부사장, 정몽구 회장의 맏딸 정성이(51) 이노션 월드와이드 고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맏딸 정지이(36) U&I 전무 등이다. 중견기업에서는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김경수 에몬스가구 회장, 김기문 로만손 회장,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딸들이 아버지 회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을 향한 질투 어린 시선도 있다.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력도 만만치 않다. 현암사 조 대표의 얘기다. “처음 들어갔을 때 부원들이 은근히 따돌렸다. 일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고, 괜한 일로 골탕 먹이고…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생각했다. ‘회사에서 어떤 얘기를 듣던지 내게 옮기지 마라. 직원들이 나쁜 행동하는 걸 보더라도 말하지 마라’ 직원들이 수금한 돈으로 화투 치는 걸 보면서도 아무 말 안 하고 6개월쯤 일하니 마음을 열더라. 출판가에서 잔뼈가 굵은 거래처 어른들을 만나 대금을 독촉할 때는 ‘어디서 조그만 여자애가 설치느냐’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딸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속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한다. 20대 후반의 딸이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중견 철강기업의 50대 오너 경영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스템이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중견·중소기업은 남자에게도 벅차다. 직원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능력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일부러 2년간 금융회사에서 일하게 한 뒤 입사시켰다. 아직 어려서 승계 여부를 말하기엔 이르지만 본인이 의지를 보여도 10년쯤 테스트해보는 게 필요하다.”

딸들 바라보는 아버지는 불안 반 기대 반
딸들의 경영 참여가 늘어난 건 시대 변화와 무관치 않다. 예전엔 오너 아버지에게 딸은 좋은 남편 만나 가정을 꾸리는 존재로만 인식됐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아들 못지않게 공부를 많이 한 딸들이 늘고 여성도 기업을 잘 이끌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됐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기업 가운데 여성이 대표인 곳은 2000년 95만 개에서 2010년 120만 개로 늘었다. 전체 사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4.8%에서 38.5%로 커졌다.

자식 수가 줄고, 딸만 둔 아버지들이 사위나 전문경영인보다 딸을 가르쳐 회사를 맡기려는 분위기도 작용했다. 가업승계지원센터 이창호 센터장은 “사위에게 회사를 넘기고 싶더라도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보기 위해 딸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포커스컴퍼니의 최정숙 대표는 “능력이 중요할 뿐 남녀 성별은 더 이상 문제가 안 되는 시대”라며 “여성 기업인을 힘들게 하는 게 접대 문화인데 오너의 딸들이 기업을 이끌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딸들의 경영 참여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최성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기업가 정신 없이 집안의 후광 아래 손쉽게 성과를 낼 분야에 진출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명수(인하대 교수) 한국경영사학회장은 “딸들의 경영 참여가 늘고 있지만 아직은 식품·호텔·유통처럼 소프트한 분야가 많고 그룹의 주력 기업이나, 중후장대 굴뚝산업을 맡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딸들이 경영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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