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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쌓인 이끼와 삼나무숲 … '원령공주'가 태어난 곳

2013년은 일본 여행의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이태 전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다는 정서적 안정이 하나고,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는 엔화 약세 현상이 다른 하나다.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정연범 소장은 “이미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올해는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본, 이곳① 세계자연유산 규슈 야쿠시마

week&이 이번 달부터 ‘일본, 이곳’ 기획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week&은 한 달에 한 번씩 일본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뻔하고 흔한 일본 여행은 사양한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인 200여만 명이 일본을 다녀왔을 만큼, 일본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여행지여서다. week&이 엄선한 ‘일본, 이곳’ 첫 회는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야쿠시마(屋久島)다.



여행을 떠나는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끌리기도 하고, 책을 읽다 밑줄 그은 구절에 설레기도 한다. 때로는 영화 한 편이 메마른 가슴에 청량한 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는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가 그랬다. 이 영화를 본 뒤로, 그러니까 일본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쓴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배경이 일본 남쪽의 외딴 섬이란 사실을 알고 난 뒤로 야쿠시마는 언젠가는 꼭 밟아야 할 이름이 되었다. 마침 올해는 야쿠시마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된 지 20주년 되는 해다.



밑동만 남은 삼나무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나무 안은 여남은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넓다. 구멍 뚫린 하늘은 마침 하트 모양이다. 추정 수령 3000년이라는 윌슨 그루터기 모습. 1914년 어네스크 헨리 윌슨이라는 미국인이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섬 자체가 동물원 … 사람 겁 안내는 사슴·원숭이



야쿠시마는 규슈(九州) 남쪽 도시 가고시마(鹿兒島)에서 남쪽으로 60㎞를 더 가야 나오는 작은 섬이다. 면적이 500㎢이니까 제주도 4분의 1 크기다. 섬의 90%가 산이라고 하니 섬이 곧 산이라 해도 맞고, 해안선 빼고는 전부 숲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규슈에서 가장 높은 산 미야노우라다케(해발 1935m) 주위로 해발 1800m 이상 봉우리 7개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깊은 산맥이라는 뜻의 오쿠다케(奧岳)다. 야쿠시마에서는 이 깊고도 높은 산중에 신이 산다고 믿는다.



야쿠시마에는 ‘사람 2만 명, 사슴 2만 마리, 원숭이 2만 마리’라는 말이 내려오지만, 현지 공무원에 따르면 인구는 1만4000명이 조금 넘고, 사슴과 원숭이는 각각 6000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그래도 놀라웠다. 숲을 걷다가 야생 사슴과 원숭이를 수시로 만났다. 녀석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야쿠시마에서는 인간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야쿠시마에는 ‘한 달에 35일 비가 온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비가 많이 내린다는 뜻이다. 연 강수량은 해안지역이 평균 4000㎜, 오쿠다케가 평균 1만㎜다. 일본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야쿠시마다. 하여 야쿠시마 여행에 좋은 계절은 봄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섬에는 태풍이 줄 지어 들이닥친다.



하지만 야쿠시마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삼나무다. 그것도 1000년 이상 묵은 삼나무다. 야쿠시마에서는 1000년 이상 묵은 삼나무를 ‘야쿠스기(鹿兒杉)’라 부른다. 삼나무 평균 수명이 500년 안팎이라는데, 이 섬에는 2000그루가 넘는 야쿠스기가 산다. 17세기부터 일본 본토의 사찰과 신사를 짓는다고 수많은 삼나무를 베어냈는데도 이만큼 남아있다.



그래, 야쿠시마는 이 정도 되는 섬이다. 전체가 거대한 산인 섬이고, 비가 하도 많이 내려 전체에 이끼가 낀 섬이고, 1000년 넘게 사는 나무가 숲을 이루는 섬이다. 이 정도는 돼야 일본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고, 1500만 명 가까운 일본인이 관람한 영화의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 이와사키 호텔 객실은 오션 뷰보다 마운틴 뷰가 더 비싸다. 이유는 창문 앞에 모초무다케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어서다. 2 야쿠시마에는 6000마리가 넘는 사슴이 산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3 7200년 묵었다는 삼나무 조몬스키를 보러 가는 길은 다양한 모양의 나무를 구경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선 대가리 모양의 삼나무도 있다. 4 하야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무대가 된 이끼 숲. 시야가 온통 푸르다.


봄에도 검푸른 녹음 … 숲의 정령 나타날 듯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야쿠시마는 푸르지 않았다. 차라리 거무튀튀했다. 이른 봄인데도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검푸른 녹음을 섬은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이 산자락 안, 깊은 계곡에서 ‘원령공주’를 구상한 하야오 감독은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영화를 만들면서도 환하거나 밝은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다. 순수 자체인 대자연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대결은 내내 우울하거나 기괴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시라타니운스이코(白谷雲水峽). 우리말로 하면 흰 구름과 물의 계곡쯤 되겠다. 물소리 요란한 계곡을 따라 4.2㎞를 올라가니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위에도 이끼, 가지에도 이끼, 줄기에도 이끼, 길에도 이끼가 켜켜이 앉아있었다. 누천년 세월을 거치며 내려앉은 이끼의 초록은 마침 내리는 빗물을 머금어 허공까지 번져 보였다. ‘고케무스모리(苔むす森·이끼 숲)’라 불리는 이 계곡에서 하야오 감독은 사슴신 시시가미가 사는 신성한 연못의 영감을 얻었다. 어디선가 숲의 정령 고다마(木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타날 것 같았다.



시라타니운스이코에도 야쿠스기가 있었다. 니다이스기(二代杉)는 어미와 자식 2대에 걸친 나무다. 야쿠스기가 무더기로 잘려 나가던 시절 이 나무도 밑동만 남고 베어졌다. 남은 밑동에 씨앗이 뿌리를 내렸고 긴 세월이 흘러 자식 나무도 야쿠스기가 되었다. 니다이스기의 수령은 2500년이었다.



그러니까 이 깊은 계곡에서도 나무를 베어 간 것이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이 옛날 나무를 옮기던 길이었다. 쌀을 구하기 어려웠던 야쿠시마 사람들은 삼나무를 베어 히라기(가로 50㎝, 세로 10㎝의 나무토막) 2310장과 60㎏쯤 되는 쌀 한 가마와 맞바꿨다. 옛날 야쿠시마는 나무를 팔아 밥을 먹었고 지금 야쿠시마는 나무를 지켜 돈을 번다. 야쿠시마 주민의 90%가 관광업에 종사한다.



천 년 묵은 나무의 비밀은 척박한 땅



야쿠스기 중에는 7200년을 살아 ‘조몬스기(繩文衫)’라고 불리는 것도 있다. ‘조몬’이 석기시대란 뜻이니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다. 야쿠시마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섬의 20%쯤 되는 산악지역만 인정받았다. 그 20% 지역만큼은 벌채가 없었다. 조몬스기가 그 20% 지역에 살고 있다.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길은 길고 길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산로 입구까지 40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서 그때부터 5시간 산을 올라야 조몬스기를 만날 수 있었다. 왕복 9시간, 하루에 꼬박 22㎞를 걸어야 하는 산행이었다.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길에는 산다이스기(三代杉)도 있었다. 3대째 내려오는 나무. 산다이스기의 추정 연령은 3500년이었다. 윌슨 그루터기는 밑동만 남은 삼나무인데, 구멍이 뚫린 밑동은 지름이 4m가 넘어 사람 여남은 명이 들어가고도 남았다. 월슨 그루터기의 나이는 3000년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조몬스기는 높이가 25.3m이고 둘레가 16.4m여서 아무리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도 전체 모습을 담기가 어려웠다. 야쿠시마의 나무는 하나같이 크고 오래됐고 신비스러웠다.



그런데 야쿠시마 삼나무는 무슨 비밀이 있어 이리도 오래 사는 걸까. 야쿠시마에서 13년째 산악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하야시다 노부아키(林田信明·52)에 따르면 비가 많이 내려서도 아니고 숲이 깊어서도 아니었다.



야쿠시마는 해저 화산이 터지면서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융기해 생긴 섬이다. 화강암에 오랜 세월 흙이 덮이면서 그 흙에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뿌리는 단단한 화강암을 뚫지 못했다. 야쿠스기도 마찬가지였다. 야쿠스기는 얄팍한 흙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만 받아먹었다. 야쿠시마 환경문화촌 센터에서 확인한 야쿠스기의 나이테는 0.1∼0.2㎜였다. 1년에 0.1㎜씩 자랐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자란 게 아니다. 버틴 것이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려고 나무는 욕심을 버렸다. 그래서 1000년 세월을 살아남았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여행정보



야쿠시마 가는 시간이 확 당겨졌다. 매일 오전 9시30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후쿠오카행 아시아나항공을 타면 일본 국내선 항공기를 이용해 야쿠시마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후쿠오카에서 야쿠시마행 비행기를 갈아탈 때 대기시간은 2시간15분이다. 규슈 남쪽의 가고시마까지 가서 야쿠시마행 배를 타면 3박4일 이상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여정이면 2박3일로 일정을 줄일 수 있다. 여행박사(tourbaksa.com)가 이 일정으로 2박3일 야쿠시마 상품을 내놨다. 조몬스기 트레킹, 시라타니운스이코 트레킹 등 야쿠시마 주요 명소를 둘러보고 이와사키 호텔에서 묵는다. 1인 140만원부터. 070-7017-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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