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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햇살·정성을 먹고 맛있는 소금이 익어간다

염전의 봄은 새하얗게 온다. 늦가을 염전을 비웠다가 이듬해 첫 소금이 나는 춘삼월이면 염전에선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이웃들이 장만해온 음식을 다 같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그해 첫 소금을 나눠 가졌다. 드넓은 염전에도, 동네 아낙의 함지박에도 봄볕에 여문 소금 꽃이 희고 곱게 피었다.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전남 신안 증도 태평염전에서는 지금도 매년 3월 28일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염부(鹽夫)와 그 가족, 이웃들이 모여 첫 소금을 뜨는 조촐한 ‘채렴식(採鹽式)’을 한다. 잠시 명맥이 끊겼던 것을 2004년 되살려냈다. 올해 채렴식은 여느 해보다 신명이 났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건 시합도 하고 흥겨운 풍악도 울렸다. 검게 그을린 염부들의 얼굴에도 짭짤한 웃음꽃이 가실 줄을 몰랐다. 염전의 봄은 그렇게 다가왔다.



증도 소금밭으로 떠나는 하얀 봄여행

1 전남 신안 증도 소금밭 전망대에서 본 태평염전 전경. 단일염전으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2 지난달 28일 열린 올해 첫 채렴식에서 소금 수확 경주를 하는 염부들. 3 증도 소금박물관. 소금의 역사와 생성 원리 등이 상세히 전시돼 있다.천일염에 관한 숱한 오해도 말끔히 풀 수 있다.


햇소금 수확 날은 매년 3월 28일



“요새는 봄이 많이 늦지요.” 채렴식이 있던 지난달 28일 태평염전 조재우 상무가 말했다. 햇볕만 따뜻했지 갯바람이 거센 날이었다. 염전 한가운데 줄지어 선 소금창고 나무 벽이 휘이이잉 휘파람 소리를 냈다.



첫 소금 뜨는 날을 못 박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천일염이 먹을 수 없는 ‘광물’에서 ‘식품’의 위상을 되찾은 게 바로 2008년 3월 28일이었다. “회사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이 지대하여….” 지난해 우수 소금장인(전문 기술을 가진 염부)을 기리는 시상 문구에서 자긍심이 묻어났다.



채렴식에서 천일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소금장인들.
천일염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염부들의 오감 품평이 쏟아졌다. “2012년산(천일염)은 뒤가 싸~허고, 2005년산(천일염)은 짠맛이 들허고….” 맛을 보는가 하면, 오직 손끝으로 감별하는 이도 있었다. 2대째 염전 일을 한다는 임정묵(50) 소금장인은 “천일염은 오래 묵힐수록 단단하다”고 비결을 귀띔했다.



올해의 첫 소금 채렴은 염부들의 시합으로 진행됐다. 20여 일 전부터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든 천일염을 가장 먼저 강구(대바구니)에 채워 오면 승리였다. 부상으로 돼지 한 마리를 걸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동네 아낙들의 농지거리 섞인 농악에 맞춰 염부들의 손발이 자진모리장단으로 휘달렸다. 몸집 좋은 염부가 결승선을 밟자 사회자가 외쳤다. “1등! 2013년 첫 소금입니다!” 와아아아. 다시 한 해를 맞는 염부들의 환호성이 봄 하늘에 장쾌하게 울려 퍼졌다.



소금이 맺힐 때까지 꼬박 20여 일



염전도 농사와 같아 해마다 새로 일궈야 한다. 겨울에도 일거리가 수두룩하다. 염판과 밭둑을 다지고 소금이 여무는 결정지의 장판도 새로 깐다. “동계 작업을 잘해둬야 이물질 없이 깨끗한 소금이 나지요.” 올해 소금장인 대상을 거머쥔 장만석(52) 장인이 설명했다.



증도와 이웃한 섬 화도의 명물 함초빵. 빵을 만드는 정길자씨의 이름을 따 `길자빵`이라고도 부른다.
고향에 갔던 염부들이 돌아오는 이맘때면 염전도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켰다. 먼저, 저수지에 가둔 바닷물을 증발지로 퍼 올린다. 증도 토박이에 따르면 1980년 증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진 염부가 일일이 수차를 돌렸다고 한다. 웬만큼 증발이 되면 계단식으로 이어진 다음 증발지로 물꼬를 터준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바닷물을 앉히면 낮 동안 갯바람과 햇볕이 소금을 빚는다. 그때는 염부들도 일손을 쉰다. 오후 3시 재작업 때까지 잠깐의 휴식이다. 여러 증발지를 거치는 동안 바닷물은 염도가 짙어진다. 마침내 결정지에 소금이 맺힐 때까지는 꼬박 20여 일이 걸린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물을 만들어야 많은 소금을 낸다. 염부의 하루가 꼭두새벽부터 시작되는 이유였다.



여러 증발지와 하나의 결정지를 묶어 ‘판’이라 하는데 판마다 소금장인이 조장이 돼 종업원 두서너 명과 일을 했다. 조장은 부지런히 바람도 살피고 물의 염도도 맞췄다. 그 판단에 따라 소금 소출이 한 판에도 몇 가마씩 차이가 났다.



태평염전이 지난해부터 생산한 토판염은 훨씬 더 민감했다. 장판을 까는 대신 갯벌만 단단히 다져 결정지를 만든다. 천일염보다 수확은 예닐곱 배 더디고, 소출은 3분의 1 수준이다. “그만큼 알도 크고 맛이 달지요.” 생산의 고단함은 다 잊은 듯 장 장인의 표정이 뿌듯했다. 누가 그랬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나도 사람이 있어야 소금이 난다고. 봄날의 염전 한복판에서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여행 정보



증도는 멀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가도 증도까지는 5시간 남짓 걸린다. 대중교통은 센트럴시티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에서 전남 신안 지도터미널로 가는 직행버스가 가장 빠르다. 하루 2회 운행. 2만1900원. 지도읍에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30여 분 더 가야 증도가 나온다.



태평염전(www.naturalsalt.kr)이 운영하는 소금박물관·소금힐링동굴·염생식물원·소금가게는 한데 모여 있다. 소금가게에서는 천일염도 살 수 있다. 천일염 10㎏ 2만4500원, 토판염 1kg 1만9000원. 서울사무소 02-756-0531. 오는 20일부터 소금박물관(saltmuseum.org)에 사전 예약하면 염전체험도 가능하다. 어른 1만원, 어린이 9000원. 061-275-0829. 태평염전이나 증도 주민여행사 길벗(061-261-6200)에 문의하면 염전과 연계한 증도 투어도 할 수 있다.



증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게 있다. 증도와 노두로 연결된 이웃 섬 화도 토박이 정길자(54)씨가 만드는 함초빵이다. 염전에서 자라는 염생식물 함초를 넣고 만든 찐빵인데 담백한 게 식사 대용으로도 좋다. 양파 맛도 있다. 큰 것 800원, 작은 것 400원. 전화로 주문해놓고 가는 게 좋다. 010-9624-5561. 증도 고향식당의 짱뚱어탕(1만원)도 속이 든든한 별미다. 061-271-7533.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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