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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에 아내 포함되나 … 대법원, 부부강간 격론

“부녀(婦女)에 부인이 포함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김혜정 영남대 로스쿨 교수)



 “국어대사전에 간음의 뜻은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성행위라고 돼 있습니다.”(신영철 대법관)



 18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에선 때아닌 낱말 뜻풀이 논쟁이 불붙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대법관과 검찰·변호인·로스쿨 교수 등 법률전문가들이 낱말 풀이에 열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날 공개변론 대상은 아내 강간 사건이기 때문이다. 공개변론은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사건 가운데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큰 경우에 열린다. 이날 대법정에서 양측 전문가들은 법리뿐 아니라 문화·역사·어원 등을 따져 가며 격론을 벌였다.



◆부녀 vs 부인=A씨(46)는 2011년 10월 부인 B씨(42)와 다투다 부엌칼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에도 A씨의 흉기 위협과 강제 성관계는 두 차례 더 있었다. A씨는 B씨 친정식구들의 신고로 그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법은 A씨에게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상 특수강간죄를 적용, 징역 3년6월과 10년간의 전자발찌 부착을 선고했다. 형법 297조에 따르면 강간범죄는 ‘폭력·협박을 동원해 부녀(婦女)를 간음했을 때’ 성립한다. 특수강간은 흉기나 집단으로 강간범죄를 저지른 경우 적용한다.



문제는 부녀에 배우자, 즉 부인(妻)이 포함되느냐다. 여성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당연히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공소 유지를 맡은 이건리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형법에 부녀에서 부인을 뺀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 변론을 맡은 신용석 변호사는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동물에 포함되지만 문리적으로 사람을 동물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라며 “가족 관계에서 아빠가 부인이나 딸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부부관계 특수성 vs 법 취지 살려야=부인은 강간범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시각에는 ‘부부간 동거의무에는 성생활도 포함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피고인 측 참고인으로 나선 강원대 로스쿨 윤용규 교수는 “부부 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아내 강간을 처벌하면 사이가 틀어진 부인이 이혼소송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악용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법 제정 취지를 강조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온 김혜정 교수는 “이 법 조항이 보호하려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며 “결혼이 곧바로 성적 자기결정권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세계 추세 vs 한국 판례=선진국들은 1980년대 이후 배우자 강간을 처벌하고 있다. 배우자 면책(marital exemption) 이론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91년 최고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이론을 폐기했다. 미국에서는 84년 뉴욕주 항소법원이 “혼인신고서는 아내 강간 자격증이 아니다”는 판결로 아내 강간을 유죄로 인정했다. 프랑스에서는 부부간 강간을 일반 강간보다 중하게 처벌하는 사유로 꼽는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유엔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부부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는 나라는 8개국뿐이다. 일본 역시 부부 강간이 유죄로 인정된 판례는 없다.



한국에서는 부부간 강간사건이 재판에 회부된 사례가 5건 있었다. 이 중 대법원까지 온 사례는 2건으로 70년엔 무죄, 2009년엔 유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유죄가 선고된 사건의 경우 이미 두 사람이 이혼에 합의한 상태여서 부부라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지금까지 판례는 아내 강간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선 이런 경향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2009년 서울고법은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던 중 아내를 강간한 정모(71)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정씨가 상고를 포기해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이 이번에 A씨에게 유죄 판단을 내린다면 43년 만에 판례가 바뀌게 된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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