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48) 거절의 수사학, 김한수

1975년 11월 15일 부산 기계공고를 찾아 훈련생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왼쪽). [중앙포토]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봉투 들고온 김사장 “땅 기증 받아주셔서 감사 … ”
정수직업훈련원 땅 기증자
봉투 거절하다 사이 틀어져
시행착오 끝 거절요령 터득



 “역대 지사들 제가 뒷바라지를 다 했는데, 그걸 뭐 또 영수증까지 보내시고…. 지사 업무를 하시려면 판공비도 많이 필요하실 텐데. 하하하.”



 박 회장은 흰 봉투를 책상 위에 꺼냈다.



 “네, 맞습니다. 도지사로 일하려니 야근하는 사람들 밥값도 주고 술도 사주고 해야 하는데 가친께서 매월 판공비를 보내주십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박 회장은 봉투를 내가 앉은 쪽으로 밀었다. 지난번은 500만원 현금이었다. 봉투가 그때보다 얇은 것을 보니 수표 같았다. 나는 봉투 위로 손을 얹어 박 회장 쪽으로 밀며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님이 매월 판공비를 주십니다.”



 “아닙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봉투를 두고 세 번을 서로 밀기를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 공직 수칙을 이해해 주십시오.”



 박 회장은 봉투를 옷 안에 집어넣었다. 그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렇게 헤어지고 돌아오니 마음이 영 불편하고 미안했다. 박 회장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도의 원로가 아닌가. 며칠 후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광주에 오시는 날에 맞춰서 제가 점심을 모시겠습니다. 전에 점심도 사주셨고. 광주관광호텔에서 어떠신지요.”



 다행히 박 회장은 내 청에 응해줬다. 그 다음부터 매달 박 회장과 점심을 가졌다. 도내 원로 경제인인 그와 의견을 나누는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밥값은 그와 내가 월마다 번갈아 가며 냈다. 광주고속과의 일은 그렇게 잘 마무리됐다.



 하지만 반대의 사례도 있었다. 1979년 중순 내가 청와대 정무 제2수석비서관으로 일할 때다. 서울 용산구 정수직업훈련원을 찾아 총경 출신인 이기일 원장을 만났다. 이 원장에게 운영상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다.



 “원생들이 열심히 기능 훈련을 하는데 운동장이 너무 좁아서 점심시간에 운동도 못하고 보기에 딱합니다. 훈련원 위쪽 산에 있는 미군 부대가 이전하는데 그 땅 주인이 운동장 부지로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수직업훈련원에 관심이 많았다. 박 대통령에게 그 일을 직접 보고했다.



 “정수직업훈련원의 애로 사항으로 점심 때 원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동장이 없다고 합니다.”



 “도리가 없잖아.”



 “마침 훈련원의 운동장 부지를 그 땅 주인이 희사하겠다고 합니다.”



 “어. 그래. 그거 고마운 일이네.”



 박 대통령은 결재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러곤 물었다. “그 지주가 누구지.”



 “김한수 한일합섬 사장입니다.”



 김 사장은 청와대와 정치적으로 미묘한 긴장 관계에 있던 김택수 공화당 의원의 형이었다. 박 대통령이 잠시 정색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결재는 이미 끝났다.



 돌아와서 김한수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업훈련생들도 정말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내가 불필요한 말을 덧붙였다. “각하께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김 사장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30분도 채 안 돼서 청와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봉투를 꺼냈다.



 “(땅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땅을 준 사람에게 고마워해야지 내가 감사받을 일은 아니었다. 돈봉투를 물리며 다시 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요.”



 그렇게 두어 번 거절을 하다가 언성이 높아졌다.



 “제 공직 철학도 받아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서로 얼굴을 붉힌 채 사무실에서 헤어졌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8·15 경축식이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렸다. 청사 안 로텐더홀에서 칵테일 파티가 열렸다. 청와대 수석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저 멀리 김한수 사장이 보였다. 그때 일도 미안하고 해서 손을 들고 ‘그리로 가겠다’는 신호를 했다. 사람을 헤치고 갔더니 김 사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자리를 피한 거였다.



 마음이 불편했다. 돈을 거절하다 잘못하면 인간 관계가 끊기고 불필요한 긴장이 생길 수 있겠다 싶었다. 거절의 수사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나름의 해답은 이렇다. 1단계는 ‘정말 고맙다. 하지만 뜻만 받겠다’고 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통하는 경우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아닐 때면 2단계로 넘어간다. ‘제가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판공비가 있어 어려울 게 없습니다. 판공비가 필요하면 그때 요청하겠습니다’. 대부분 2단계에서 웃으면서 해결이 된다. 물론 당장의 대가성이 없어 보이는 소위 ‘떡값’에 한해서다. 한보 사태 때 정태수 회장처럼 명백한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건네는 것은 나를 모욕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때는 야단을 치면서 물리쳤다.



정리=조현숙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