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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 외면 무단 횡단 여전 … 엘리베이터 설치비만 날린 꼴

천안역 동부광장 앞 도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무단횡단을 막고 보행약자들의 보행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08년 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지자체와 경찰서에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기관들의 판단 착오로 2억원이 넘는 예산만 낭비한 채 무단횡단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횡단보도가 아닌 지하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 2년 후 동부광장 앞 도로를 다시 찾았다.

12일 오후 천안역 동부광장 앞 왕복 4차선 도로를 보행자들이 무단횡단하고 있다. 이곳은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지 않아 지하상가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길을 건너야 한다.

12일 오후 5시 천안시 동부광장 앞 왕복 4차선 도로.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편으로 무단횡단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후에도 학생들은 물론 노인, 주부, 직장인 등 보행자 대부분이 수시로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었다. 익숙하게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들은 사고위험에 따른 긴장감 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불과 30여 분 만에 도로 위를 지나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만 100명을 넘어섰다.

무단횡단이 이뤄지고 있는 바로 옆에는 무단횡단을 막고 노인과 장애인 등 보행약자를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터가 있다. 천안시가 2억 65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준공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길 건너편으로 가는 시민은 고작 9명에 불과했다. 대학생(4년) 김모씨는 "이 일대는 친구들과 약속 장소로 자주 찾는 곳인데 5~6초면 건널 수 있는 길을 왜 불편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장애인 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건너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무단횡단이 개선되지 않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지하도를 이용해야만 하는 보행자들의 불편함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횡단보도가 설치됐어야 한다. 하지만 천안시와 천안동남경찰서가 사고의 위험이 높다며 횡단보도 대신 지하도를 이용하도록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2008년 3월 천안역 동부광장 앞 4차선 도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무단횡단과 장애인과 노인 등 보행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경실련은 보행약자들의 경우 길을 건너기 위해 수백 여 m를 돌아가야 하고 일반 보행자들은 지하도를 통행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무단횡단을 유발시키는 원인이라며 모든 보행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횡단보도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실련은 횡단보도 설치가 교통정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천안역 주변 도로의 각 차선에 대한 시간대별 교통량과 보행자수, 무단횡단 현황, 횡단보도 설치 유무 등 보행환경 설문조사를 벌여 천안시에 제시했다. 하지만 시가 횡단보도 설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경실련은 국가인권위운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2009년 10월 인권위는 진정에 대해 천안동남경찰서장에게 횡단보도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또 천안시장에게는 횡단보도 설치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것을 함께 권고했다.


 인권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천안역 동부광장 앞 도로에는 지하상가를 통해 지나는 지하보도가 설치돼 있지만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이 없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에는 지하보도를 이용한 도로 횡단이 불가능하다.  

또 횡단보도는 동부광장 앞 삼거리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110m, 남쪽 방향으로 130m, 동쪽 방향으로 300m 떨어진 지점에 설치돼 있어 장애인들이 명동거리 입구에서 공설시장 방향으로 도로를 횡단하는데 최소 500m에서 900m 이상을 우회해야 한다. 인권위는 특히 경사진 도로 구조상 횡단보도 설치가 곤란하다는 경찰의 의견에 대해서는 현재의 버스정류장을 이전할 수 있고 내리막길에 속도저감시설과 신호기를 설치할 경우 교통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점, 버스정류장 바로 앞쪽이 아니더라도 삼거리 교차로 근접지점에 횡단보도 설치가 가능한 점 등을 볼 때 도로 구조상 횡단보도 설치가 곤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횡단보도를 설치할 경우 예상되는 지하상가의 집단적 민원 우려에 대해서도 지하상가의 영업권과 활성화와 같은 이익은 도로교통법에 의해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은 아니므로 합리적인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지하도가 200m 이내라 하더라도 보행자의 안전이나 통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해당 도로는 천안역, 공설시장, 명동거리, 동남구청이 근접해 있는 등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아 보다 높은 수준의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더욱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현장 조사를 통해 결정한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에도 불구하고 천안시와 천안동남경찰서는 횡단보도 설치가 아닌 지하상가를 통해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인도 양쪽에 설치했다.


인권위의 횡단보도 설치 권고를 환영했던 경실련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장애인의 이동권은 어느 정도 보장됐다고 볼 수 있지만 예산만 낭비한 채 수시로 발생하는 무단횡단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병인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결정대로 횡단보도를 설치했다면 엘리베이터 보다 적은 예산으로 장애인은 물론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무단횡단 행위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될 수 있었다”며 “인원위의 권고와 시민들의 불편함은 생각하지 않은 대책은 호응을 얻어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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