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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어른들이 들일을 나간 빈 집 마루에 앉아 어린 미당은 흐렁흐렁 잠이 들었다. 전북 고창의 미당시문학관 전망대에서는 한가로운 오후, 미당이 살포시 잠들었던 미당 생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당 서정주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자화상’ 중)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이 16일 재개관한다.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를 찾아나선 13일, 그가 태어나고 잠든 질마재의 바람은 거셌다. 갯내음을 실어온 바람은 그가 사랑했던 소요산을 향해 내달렸다. 질마재에 자리잡은 미당시문학관은 그래서 ‘바람의 집’이다.

 문학관을 지은 건축가 김원씨는 “설계를 하러 땅을 보러 갔을 때 바람이 좋았다. 옛날에는 미당의 집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도 하고…. 그래서 바다가 보이고 바람이 느껴지고, ‘자화상’이 절로 떠오르는 공간을 짓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2001년 문을 연 문학관은 아담하다. 폐교를 활용한 이 건물에서 눈에 띄는 건 수직으로 우뚝 솟은 전시동이다. 사실 문학관의 백미는 전시동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바람의 전망대’라 명명한 이곳은 미당을 키운 바람과 조우하는 공간인 동시에 미당의 처음과 끝을 한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10시 방향으로 그의 생가가 보인다. 2시 방향에는 그와 그의 아내가 잠든 묘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미당의 작품 속에 스며든 바다와 갯벌이 앞쪽에, 질마재와 소요산이 뒤쪽에 버티고 있다. 미당을 추억하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곳이 없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시의 정부’로 불리는 미당의 자취를 더듬는 이에게 부족함이 많았다. 미당의 유품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공간임에도 두서 없는 전시와 관리 소홀로 조금씩 스러져갔다. 이에 고창군이 12년 만에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간 것이다.

미당 고향인 고창 질마재 마을에 다시 문을 연 미당 시문학관 전경. 담쟁이 덩굴이 정취를 더한다.
 주로 매만진 곳은 1층 전시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미당의 연보와 그의 시집이 관람객을 맞는다. 첫 시집인 『화사집』부터 『귀촉도』와 『질마재 신화』등 미당이 남긴 시 1000여 편을 담았던 시집들이다. 가족의 방과 비디오실을 거쳐 시인의 방에 이른다. 생전 미당의 서울 남현동 방을 재현한 2층과 미당의 유품 등도 제자리를 찾았다.

 미당의 제자인 동국대 윤재웅 교수는 “그간 방치됐던 유물을 정리하고, 미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기쁘다”고 말했다.

 미당시문학관은 이날 반가운 손님도 맞았다. 연초 두 번째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를 낸 미당의 아우 우하(又下) 서정태(90) 선생을 만나러 온 독자 40여 명이 새로 만들어진 비디오실을 찾았다. 미당이 동생의 첫 시집에 써준 ‘네가 쓴 시들이 부디 명이 길어 나와 너의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 살아있는 것이 되기만을 바랜다’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문학관을 나서는 길, 바람의 기세는 잦아들지 않았다. 바람의 집에 깃든 미당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섭섭하게/그러나/아주 섭섭치는 말고/좀 섭섭한 듯만 하게//이별이게/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어디 내생에서라도/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연꽃/만나러 가는/바람 아니라/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엊그제/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한 두 철 전/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연(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고창=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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