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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45) 두 번째 멘토 홍성철

홍성철 전 국토통일원 장관(오른쪽)은 노태우 정부 때 남북총리회담이 성사되도록 막후에서 활동했다. 1990년 열린 1~3차 남북총리회담에도 참여했다. 사진은 남측에서 열리는 3차 남북총리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90년 12월 11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 도착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가운데)와 그를 안내하고 있는 홍 장관. 연총리는 환영 나온 박예진(왼쪽)양이 건넨 카네이션 화환을 목에 걸고 있다. 당시 10세였던 박양은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1974년 5월 어느 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간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가 민관식 문교부 장관을 만났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기다렸다는 듯 민 장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 국장, 다음 달 새마을국무회의 때 문교부가 하고 있는 새마을 교육운동을 안건으로 해서 보고해주면 어떻겠나.”

 “네. 이달은 안 되겠고 다음 7월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으로 일하던 나는 73년 10월 강원부지사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부지사로 부임한 지 43일 만인 12월 10일 다시 내무부 지방국장으로 불려왔다. 대한민국 정부 3대 국장으로 내무부 지방국장과 치안국장, 재무부 이재국장을 꼽던 시기다. 요직인 지방국장으로 젊은 나이인 내가 승진해 임명됐을 때 ‘예외의 인사’란 평이 나올 만큼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지방국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새마을국무회의의 안건을 정하고 보고하는 일이었다. 일반 국무회의는 총리가 주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새마을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장·차관들은 자기 부처 정책을 새마을국무회의 안건에 올려달라고 심심찮게 민원을 넣었다. 4년째를 맞은 새마을운동의 열기는 대단했다. 학교 새마을운동, 직장 새마을운동…. 모든 정책에 ‘새마을’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매달 열리는 새마을국무회의에서 나는 지난 한 달 동안의 새마을 사업 성과와 문제점, 각 부처의 필요 지원 사항, 다음 달의 추진 방향을 슬라이드로 제안하고 설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관계 부처가 새마을운동에 협력하고 지원하도록 조정해줬다. 또 향후 새마을운동의 방향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다.

 나를 지방국장으로 발탁한 사람은 홍성철 내무부 장관이었다. 새마을담당관일 때 그는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실무 담당관으로서 전해준 새마을운동에 대한 생각과 지방의 실태, 문제점을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 치의 가감도 없이 옮겨줬다. 또 박 대통령의 말과 생각도 있는 그대로 전해줬다.

 그는 청와대 정무수석에서 내무부 장관으로 옮기며 나를 지방국장으로 불렀다. 홍 장관 덕분에 새마을담당관으로 맡았던 업무를 지방국장 자리에서 계속 해나갈 수 있었다.

 홍 장관은 나의 두 번째 멘토였다. 공직자로 갖춰야 할 인화와 협력을 그에게서 보고 배웠다. 해병대령 출신인 홍 장관의 별명은 ‘홍코’였다. 성이 홍씨이기도 했지만 코가 크고 붉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붉은 코에서 알 수 있듯 술자리를 즐겼다. 아주 소탈했다. 직원들이 편하게 ‘홍코’라고 별명을 부를 만큼 아랫사람과 스스럼없이 자주 어울렸다.

 내무부 장관이라고 판공비가 넉넉했을까. 그래도 자주 직원들과 저녁 자리를 가졌다. 일과를 마치면 직위 고하를 불문하고 여러 명 직원을 이끌고 서울 무교동의 ‘호반’이란 음식점으로 향했다. 황해도식 순대를 파는 소박한 식당이었다. 황해도 출신의 홍 장관은 고향 맛이 그리웠는지 그 집을 자주 찾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며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탈하고 인정이 넘쳤다. 구성원 각각의 특성을 알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북돋웠다. 다른 정부부처와 업무를 조율할 때도 그의 장점이 발휘됐다. 관계 부처의 협조를 얻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인화를 바탕으로 행정조직의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생산적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점을 그에게 배웠다.

 그는 2004년 작고했다. 허름한 순대집에서 소주를 한 잔 마시며 호탕하게 웃던 홍 장관.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그와의 술자리를 이제는 가질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 홍성철

홍성철(1926~2004)=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인천상륙작전 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부대에서 통역 장교로도 활동했다.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한 62년 주미 대사관 참사관으로 발탁됐고, 66년부터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 내무부·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88년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90년부터 국토통일원(지금의 통일부) 장관으로 북한과 막후 교섭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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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