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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미·중의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가 얼마 전 사설(4월 3일자)에서 눈길을 끄는 주장을 했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활용해 미국은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유일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을 움직이려면 그 정도 당근은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김씨(金氏) 왕조가 붕괴할 경우 한반도에서 미군기지를 철수하겠다고 베이징에 약속하라는 것이다. ‘그레이트 게임’을 해본 나라 언론다운 통 큰 발상이라고 해야 할까.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순방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케리는 세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보호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그 하나라면 북한이 구체적 행동으로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인다면 기꺼이 평양과 대화하겠다는 것이 또 다른 메시지다. 더 중요한 것은 베이징에 보낸 메시지다. 중국이 작심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선다면 미국은 중국에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용역료를 놓고 미·중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케리는 공개적으로 그런 의사를 내비쳤다.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미 NBC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된다면 이 지역에 전진배치된 (미사일) 방어 태세를 유지할 당위성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에 맞서 최근 요격용 대공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함 두 척을 동아시아에 급파했고, 괌에 ‘고고도 지역방어시스템(THAAD)’을 갖춘 미사일 방어(MD)망을 곧 배치키로 했다. 또 미 국방부는 10억 달러를 들여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지상발사 요격미사일 14기를 2017년까지 미 서부 연안에 추가 배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중국은 사실상 대중 봉쇄를 목적으로 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의 일환이라며 반발해 왔다. 겉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중국을 겨냥한 포석이란 것이다. 케리의 발언은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핵 문제 해결에 나서준다면 미사일 방어망 재배치에 따른 중국의 우려를 해소해 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언론이 이 점을 부각시켜 보도하며 미·중 담판 가능성을 제기하자 케리는 도쿄 기자회견에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논리적으로 당연한 얘기를 한 것뿐이며 이 문제에 대해 중국과 전혀 협의한 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워싱턴이 가진 속내의 일단을 드러내 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케리는 방중 결과를 설명하면서 “미·중 양국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중의 합의는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 정책”이라며 “앞으로 양국의 고위급 접촉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화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북한의 손목을 비틀어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든지, 북한 정권의 숨통을 조여 핵을 끌어안고 스스로 주저앉게 만드는 방법뿐이다. 둘 다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은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중국에 치러야 할 대가를 셈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동상이몽(同床異夢)에 가까워 보인다. 중국에 아웃소싱해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워싱턴의 생각이라면, 북핵 문제를 지렛대 삼아 동아시아에서 지역적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베이징의 속셈이다. 지난주 서울에서 만난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이론가들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약화가 동북아에서 중국의 전략적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냉전시대의 유물인 한·미, 미·일 동맹이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근본적 위협 요인이란 게 그들의 시각이다. 미국 중심의 동북아 양자 동맹체제를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안보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베이징의 목표이고,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 메커니즘으로 6자회담을 고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란 것이다. FT의 주장은 이런 배경에 대한 통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값을 너무 세게 불렀다. 북핵 문제 해결이 미국에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와 맞바꿀 정도라고 보긴 어렵다.

 미·중이 발벗고 나서지 않는 한 풀기 어려운 게 북핵 문제다. 그렇다고 미·중의 빅딜을 마냥 지켜만 볼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딜레마다. 미·중과 소통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해법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미·중을 설득해야 한다. 또다시 강대국들 손아귀에 놀아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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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