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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은 어디 갔나 … '고구려비' 논란 더 키웠다

‘지안(集安) 고구려비’의 실체는 무엇인가. ‘정묘년(丁卯年·427년·장수왕 15년) 미스터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고대사학회 학술회의
중국 측 보고서엔 없던 ‘정묘년’
한상봉 소장 입수 탁본서 나와

 10일 중국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 장푸유(張福有·장복유) 부원장이 “지안 고구려비는 정묘년에 제작됐다”는 글을 ‘중국문물보’(문화재청에 해당하는 중국문물국의 신문)에 실었다. 하지만 사흘 후인 13일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임기환) 주최로 열린 ‘신발견 지안 고구려비 종합검토회의’에선 또렷한 실마리가 나오지 못했다.



 이 비석은 지난해 7월 중국 지안 지역에서 발견됐다. 그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건 올해 1월 중순. 중국 측 평가단이 ‘중국문물보’에 1월 4일 올린 보고서를 통해서다. 이후 진위 여부와 함께, 광개토대왕때 비석인가, 장수왕때 비석인가를 놓고 여러 주장이 나왔다. 특히 한상봉 한국서예금석문화연구소 소장이 입수한 탁본에 정묘년이란 글자가 확인돼 관심을 끌었다. ‘중국문물보’의 1월 보고서에는 정묘년이란 글자가 없었다. <본지 3월 13일 8면>



 한 소장의 탁본에 나온 정묘년과 장 부원장이 ‘중국문물보’에 실은 정묘년은 일치했다. 장 부원장은 ‘정묘세간석(丁卯歲刊石)’이란 글자를 확인해 냈다. 비석을 세운 연대가 장수왕 15년(427년)이란 얘기다.



 ◆핵심 비껴간 학술회의=이번 학술회의는 기대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행사의 3분의 2가 지날 때까지 발표자와 토론자 중 장푸유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행사에 중국 퉁화(通化·통화)사범학원 겅톄화(耿鐵華·경철화) 교수와 지린박물관 쑨런제(孫仁杰·손인걸) 연구원이 참석했기에 더욱 의아했다. 장 부원장과 겅 교수, 쑨 연구원은 모두 중국 측 ‘지안 고구려비’ 평가단의 일원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말을 했다. 겅 교수는 광개토대왕 때라고 했고, 쑨 연구원은 장수왕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추정의 근거까지 명쾌하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장 부원장의 정묘년 발언이 있던 10일 겅 교수와 쑨 연구원 두 사람이 한국에 온 점이 흥미롭다. 그들은 『지안(集安)고구려비』라는 중국 측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그 보고서에는 겅 교수의 주장이 주로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묘년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자 취재기자들이 공동의 질문을 작성해 주최 측에 제출했다. 장 부원장의 발언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중국 보고서에 다양한 의견이 반영이 안된 이유를 물었다.



 겅 교수는 “장푸유 선생의 연구 결과를 존중한다. 정묘년으로 본 해석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정묘년 글자는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중국의 공동 연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쑨 연구원은 “장푸유 선생만큼 고문에 내공 있는 사람 많지 않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보고서에는 하나의 의견이 주로 실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풀리지 않았다. 장푸유·겅톄화·쑨런제 모두 동북공정 작업에 깊이 관련된 인물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실마리를 제대로 풀지 못한 데는 학술회의 운영 방식도 한몫했다. 중국학자들의 견해 차이를 집중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을 비껴가는 듯했다. 객석의 질문과 기자들의 인터뷰도 차단할 정도였다.



 비석의 실물과 탁본을 보지 못한 한국학자들은 불리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이날 발표된 한국학자의 글은 1월부터 제기돼온 주장의 반복이거나 ‘상상의 창작’ 수준에 그친 모양새였다. 오후 5시 무렵 토론자로 발언권을 얻은 이문기 경북대 교수가 장 부원장의 정묘년 관련 글에 대해 재차 질문했지만 그럴듯한 답변은 없었다.



 겅 교수는 이날 ‘중국 지안 출토 고구려비의 진실성’이란 글을 발표했다. 비석의 위작 가능성을 제기한 문성재 박사(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본지 2월 6일 2면)에 대한 반론이었다. 겅 교수는 광개토대왕 때 만들어진 실제 고구려비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김영하 성균관대 교수는 “위작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제2의 동북공정’이 거론될 만큼 중국학계가 고구려를 고대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영대 기자





어느 쪽이 옳을까



왼쪽 탁본은 한상봉 한국서예금석문화연구소 소장이 중국에서 입수해 지난달 13일 중앙일보에 공개한 탁본. 오른쪽은 11일 중국 측이 공개한 『지안(集安)고구려비』 191쪽에 실린 자료 사진. 양쪽을 비교하면 비석의 모양도 같을뿐더러 대부분의 글자도 같거나 유사하다. 한 가지 크게 차이 나는 부분이 바로 정묘년이란 글자다. 비석 제작 시기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 열쇠다. 오른쪽에서부터 읽어가면 7번째 줄 앞부분에 나오는 ‘정묘세간석(丁卯歲刊石)’이 바로 그것. 한상봉 소장의 탁본에선 육안으로도 확인된다. 오른쪽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10일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장푸유 부원장은 “지안 고구려비는 정묘년에 제작됐다”는 글을 ‘중국문물보’에 실었다. 중국 퉁화사범학원 겅톄화 교수는 13일 “정묘년이란 글자를 못 봤다”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이 비석 관련 중국 측 평가단의 일원이다. 두 사람이 본 탁본은 다른 것인가. 정묘년 수수께끼는 더 꼬이게 됐다. 오른쪽은 비석 사진으로 보이나 중국 측의 자료에는 탁본이라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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