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돼지’를 330만 번 인쇄한 족자가 예술인 까닭

미술관에 길이 22m, 너비 약 2m인 분홍색 족자가 걸려 있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흰 족자에 분홍색 텍스트가 촘촘히 인쇄된 것이었다. ‘돼지 354,678 돼지 354,679 돼지 354,680…’ 하는 식으로 ‘돼지’라는 말이 일련번호와 함께 반복적으로 인쇄돼 있었다. ‘아, 또 무슨 말장난을 하려고’라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설명을 들으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2010~11년 구제역 사태 때 생매장된 330만여 마리의 돼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원래 도살당하는 돼지 피부에 자홍색 잉크로 일련번호를 찍는다고 한다. 필자도 당시에 ‘돼지 330만 마리 살처분’의 뉴스를 접했지만, 너무나 큰 숫자여서 도리어 그 참혹한 규모를 체감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건을 잊었다. 그런데 이 족자를 보니 문자와 숫자로 기호화된 돼지조차 330만 마리가 모두 들어가려면 20m가 넘는 종이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 영문 모르고 생매장당한 돼지들의 실제 물리적 부피는? 순간 섬뜩한 전율이 흘렀다.

최선 작 ‘자홍색 족자’. [송은아트스페이스]

이 작품-2012년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최선 작가의 ‘자홍색 족자’-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개념미술에서는 작가의 개념이 중요하고 미술(美術)의 전통적 요소인 아름다움(美)과 기술(術)은 거의 배제된다. 분홍색 족자는 처음 볼 때 시각적 매력이나 충격이 거의 없는 무미건조한 사물에 불과하다. 작가의 손재주가 발휘된 것도 아니다. 관람자가 언어로 설명된 작가의 개념을 접하고, 관련된 관람자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과 느낌에 이르게 되면서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자홍색 족자라는 물질적인 오브제보다 그를 둘러싼 비물질적인 개념이 중요한 셈이다.

일찍이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Georg W. F. Hegel·1770 ~1831)은 예술이 조각·회화 등 감각에 호소하는 물질적인 것에서 점차 정신적인 것으로 이동해서 나중에는 학문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예술의 종언’이 올 것이라고 했다. 개념미술의 탄생은 그의 예언이 어느 정도 맞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난 글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왜 인문학과 경계도 없는 예술을 굳이 미술관에서 봐야 하나?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담론은 그냥 책에 글로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자홍색 족자’는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돼지 330만 마리가 생매장됐다. 330만은 이러이러한 큰 숫자다’라고 책에 쓴 것과는 또 다른 효과를 거둔다. 관람자는 최소한으로 기호화된 돼지조차 330만 마리면 22m 족자를 차지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러고는 족자 위에 텍스트화된 돼지를 산더미 같은 돼지의 이미지로 머릿속에서 전환하면서 감각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그냥 구제역 살처분에 관한 글을 읽는 것보다 훨씬 큰 감각적 충격이다. 물론 굴착기로 돼지 떼를 구덩이에 떠밀어 파묻는 TV 뉴스 영상만큼 즉각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충격은 아니다. 하지만 ‘자홍색 족자’를 통해 돼지 생매장의 규모를 주체적으로 유추해 보고 생각해 보면서 훨씬 긴 여운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예술’이다.

이렇게 볼 때 헤겔의 ‘예술의 종언’은 틀렸기도 하다. 헤겔은 감각의 궁극적 배제를 말했지만, ‘자홍색 족자’를 비롯한 여러 인상적인 개념미술 작품은 어쨌거나 감각을 통해 더 활발하고 주체적인 사고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육체의 오감을 통해 세계를 접하는 한,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예술에서 사라지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관람자의 감각적 공감과 사고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 만약 필자가 미술관 전시장에 투명 아크릴판을 둘러치고 그 안에 주저앉아 김밥을 먹으며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한 요제프 보이스 말마따나) 나는 예술가이고 이것은 행위예술이다”라고 선언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이겠는가? 다음 회에서 그것을 논하며 동시대의 개념적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