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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공들여 만든 내 책 500년 이상 갈 것”

책의 종말을 논하는 시대, 책의 가치를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 ‘아트북의 전설’로 불리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63)이다.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 로버트 프랭크, 현존하는 팝아트의 거장 짐 다인, 샤넬의 수장 카를 라거펠트.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책을 펴냈다. 샤넬·에르메스·롤스로이스 등 상업 브랜드도 특별한 컬렉션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그를 찾았다. 지난 43년간의 ‘필모그래피’다.

내한한 아트북의 전설,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슈타이들의 아트북은 그 자체가 예술로 인정받는다. 무게·두께·타이포그래피 등은 물론 종이, 결 방향, 케이스 등 재료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내는 그이기에 ‘크레이지 디테일’ ‘완벽주의 아티스트들의 히어로’라는 별칭도 붙는다.

그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이 마련한 전시 ‘슈타이들과 책을 만드는 법(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의 오프닝 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10월 6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협업한 예술가의 작품을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해 고안한 정교한 인쇄기술, 브랜드 인쇄물에서 보여줬던 실험적 시도, 그리고 책의 커버가 디자인되는 과정 등이 낱낱이 공개된다.

슈타이들은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인사말을 대신해 ‘책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종이와 책의 종말을 논하지만 틀린 얘기예요. 심오하고 깊은 사색이 필요할 땐 언제나 책이 우선시되죠. 아날로그의 가치가 부활하면 책은 또다시 르네상스를 맞을 겁니다.”

‘출판의 오트 쿠튀르’를 내세우는 그의 작업 방식은 남다르다. 15세기 구텐베르크 시절 출판문화를 그대로 답습한다. 원고를 고르고, 디자인하고, 알맞은 종이를 택해 인쇄하고 배포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한 지붕 아래 이뤄진다. 독일 중부 도시 괴팅에 직원 50명을 두고 차린 출판사가 모든 걸 다 한다는 얘기다. 최대 이윤을 내기 위해 분업화·아웃소싱(특히 조판, 스캐닝, 인쇄)을 당연시하는 요즘 출판사들, 그로 인해 ‘흉한 책’들이 나오는 현실에 대한 반기다.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일을 하니 예술가들의 바람이 그대로 반영되고, 또 1년에 400권을 만들 수 있죠. 아이디어가 인쇄되기까지 1주일이면 충분해요. 왜 세계 최고라는 미국 출판사들은 책 한 권 내는 데 석 달씩이나 걸리는지 모를 일이에요.”

그의 자부심은 협업 아티스트 선정에서 더 확실히 드러난다. 하루 2~5명의 예술가들이 그에게 책을 만들자며 메일을 보낸다. 1년이면 1500여 통에 이른다. 하지만 99%는 거절의 답을 보낸단다. 대개 누가 전에 했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거나 기대치 이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씩만 보물을 찾는다. 올가을 나오는 『아프간 골드(Afghan Gold)』가 그런 경우다.

“5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다큐 사진을 찍은 작가가 연락을 해왔어요. 전장 속에 가려져 있던 그곳의 아름다운 석양·산·계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죠. 지금껏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작업이라 단박에 맘에 들었어요.”

이런 옥석을 가리는 안목이 어릴 적부터 생긴 건 아니었다. 제빵사였던 아버지는 서독으로 이주해 수공예로 생계를 이어갔다. 집에 돈이 없어 누나가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인쇄기술 역시 1968년 앤디 워홀의 전시에서 감동을 받아 독학으로 익혔다. 부모로부터 지적·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그는 이를 두고 ‘인생의 대단한 우연’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출판업에 뛰어든 뒤 문학·사진 등 예술 서적으로 방향을 잡은 건 1980년대 초부터.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뭔가 배우고 싶고, 작품의 비밀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늘 그들의 학생이길 바라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 좋은 책을 만들어주고 싶죠.”

그는 다음 세대를 위해 가장 투자가치가 높은 것이 바로 책이라고 했다. 서재는 아름다운 집 안의 보물창고여야 하며, 아름다운 책을 수집해보는 재미를 느껴보라고도 했다. “나는 한 장 한 장 공들여 만든 내 책이 500년 이상 갈 것이라고 보장해요. 책은 쓰고 버리는 공산품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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