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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 없애 부드럽게 원색으로 발랄하게

1 독일 COR사의 소파 세트 멜 2, 3 전시장 풍경
봄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춥고 비 오는 날씨에도 2013 디자인 위크(4월 9~14일)가 열린 밀라노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바이어와 기자들로 도시 전체가 들썩였다. 밀라노 로 박람회장이 트레이드 전시라면 밀라노 동쪽 람브라테 구역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전시와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북유럽 기업들의 리서치 장소로 선호된다. 또 남부 토르토나 존은 디자이너들이나 외국 문화부, 트렌디한 회사들의 컨셉트 이벤트 행사장으로, 그리고 브레라 미술학교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도시 중심에서는 수퍼스타 디자이너들의 특별전시와 만남의 장이 이루어진다. 그 열기 넘치는 가구조명박람회 현장을 둘러봤다.

2013년 밀라노 가구조명박람회를 가다

단순하고 정직한 디자인이 대세
가구는 집 안을 장식하는 도구가 아니라 편안함을 제공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왔다. 침대 모서리는 더 이상 모서리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다리나 받침도 최소한만 보이도록 했다. 반짝이는 쇠 다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필요 없는 장식은 떨어져 나가고 디자인을 과연 했는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제품은 단순하고 정직하다.
거대한 쿠션을 나란히, 혹은 위아래로 쌓아 쉽게 만든 것 같은 소파는 사방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고 기분에 따라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
푹신푹신한 느낌이 나도록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표면을 장식한 콘솔이나 덧문도 인기다. 멀리서 보면 쿠션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만져보면 다른 재질로 튼튼하게 만든 견고한 문이다. 장식장이나 콘솔의 특성상 천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주는 디자인이 집 안 분위기 전체를 부드럽게 만든다.
메리디아니의 홍보 담당 바네사 몰테니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회사는 작년부터 침대나 소파 등 가구의 모서리를 없애고 있다. 색상도 기존에 쓰던 무채색보다 노랑·녹색·보라색 등 원색에 가까운 발랄한 색상들을 사용했다. 집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가구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규격화된 럭셔리가 아닌, 자신의 취향에 맞춘 퍼스널 럭셔리를 구현할 수 있는 가구들이 배치된 집에서 사람들은 가장 편안함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드리아데의 32 쿠션을 디자인한 건축가 파올로 리차토는 “많은 쿠션과 여러 색상을 사용해 소파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에 따라 이 제품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컨셉트에서 벗어나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소파에 앉으니 바로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유럽 가구 회사들은 시각적·촉각적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제품을 대량 선보였다. 의자의 등받이와 쿠션의 색상을 다르게 하거나 서랍 각 층의 색과 재질에 변화를 주었다. 식탁 네 다리의 색이 각기 다른 제품, 책꽂이 칸막이 색이 다르거나 쿠션과 팔걸이 색이 다른 소파, 혹은 소파 앞뒷면의 색을 다르게 한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한 세트의 소파를 위치를 바꾸거나 조립하고 분해해 다른 형태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접으면 벽장식으로, 펴면 침대가 되는 제품(캄펫지)이라든가 일렬로, 혹은 뒷면이나 옆면으로 돌려 배치해 장소에 따라 여러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소파(독일 COR)도 눈길을 끌었다. 옷걸이 겸 의자, 농구대 겸 의자 등으로 제품 자체가 여러 기능을 가진 아이디어 상품도 줄을 이었다. 테이블이나 의자에 조명 기능을 삽입한 제품도 인기다.
중국이 유럽의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럽 디자인 회사들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속속 내놨다. 모던한 유럽식 디자인에 중국식 실용성이 첨가되면서 탄생한 제품들이다. 중앙이 돌아가는 원형 테이블, 거울이 달린 서랍장 등이 대표적이다.
구리를 사용한 제품도 많이 보였다. 냄비 등 주방용기에 사용되는 구리는 열전도율이 뛰어나고 멸균효과가 있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구리로 만든 세면기기나 전등 갓, 또 의자나 테이블 다리에 삽입돼 나무나 가죽 제품과 멋진 조화를 이뤘다.

카를 라거펠트, 엘리엇 어윗 … 대가들의 참여
매그넘의 최고령 회원인 세계적인 사진작가 엘리엇 어윗(85)이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밀라노 가구회사 다네제와 협력해 나팔혼과 헤드라이트가 장착된 지팡이를 제작했다. 패션계의 거장 카를 라거펠트는 모델도, 옷도 아닌 카시나의 제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장소에 들어가도 몇 초 안에 그래픽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그는 카시나의 제품을 예술적 사진으로 표현했다. 카를 라거펠트의 사진 전시는 카시나의 밀라노 매장에서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스웨덴이나 벨기에 등 북유럽의 기업과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개성 넘치는 독자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디자인 거리 토르토나 존에 들어온 스웨덴관의 한 대학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만든 염소 젖 보관 냉장고를 공개했다. 염소가 뜯어먹어 이빨 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생나무로 벤치를 만든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리서치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스웨덴을 선두로 태국, 페루 등 많은 국가는 수공예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컨셉트로 전시에 참여했다. 중국은 다도 문화를 주제로, 태국도 음식과 관련된 제품에 집중해 가구와 제품을 선보였다.
조명 분야에서 LED 전구 제품은 2년 새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이탈리아 브랜드 멜로그라노의 담당자는 “흰색의 빛을 내는 LED 등은 찬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작년까지 야외나 공공장소, 사무실이나 매장 등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올해부터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탁상용 스탠드부터 야외용 조명까지 LED 전구는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아르테미데나 폰타나 아르테, 포스카리니 등 대기업들은 여전히 디자이너나 건축가,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빛을 내는 예술품을 창작해 냈다. 프랑스의 한 조명 디자이너는 수은전지로 작동하는 LED 전구가 삽입된 목걸이를 만들어 전시 중에 홍보하기도 했다.

“한국 공예, 정감 있고 개방적 … 태양 같은 분위기”
올해 디자인 위크에서는 한국이 돋보였다. 밀라노 남부 디자인 구역인 토르토나 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퍼스튜디오 플러스 템퍼러리 전시장은 삼성, LG, 현대의 차지였다. 현대는 천장에 탁구공 같은 아크릴 구(求) 1만 2000개를 나일론 실에 연결해 매단 뒤 8개의 레이저 빔을 쏘아 영상을 만들어내는 설치작품 ‘플루이딕 스컬프처 인 모션(FLUIDIC Sculpture in motion)’을 선보였다. 레이저 빛이 아크릴 구와 만나 점에서 선, 선에서 면, 그리고 3차원 입체로 발전하는 빛으로 디자이너가 자동차를 디자인하듯 조형을 만드는 과정에 관람객의 움직임을 반영해 디자이너와 관람객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LG도 상상력의 자유라는 모티브로 위트 있는 영상과 오브제를 함께 선보여 소재들의 장점과 유연성, 가능성 등을 표현했다. 삼성은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주제로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 예술가 프랑수아 콘피노와 협력한 전시를 선보였다. 입장객은 삼성 갤럭시S3를 이용해 나무를 심고, 꽃을 피우며, 나비가 날게 하는 등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벽면의 영상을 꾸몄다. 전시장에서 만난 콘피노는 “제품 전시 대신 방문객들이 상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추상적이지만 시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한국의 하이라이트는 트리엔날레 디자인 전시장에서 열린 ‘법고창신’ 공예전이다. 트리엔날레는 밀라노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디자인 전시 공간으로 디자인 위크 기간을 찾는 모든 방문객이 꼭 들르는 곳.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이 전시에는 전통 공예가 16명이 준비한 도자, 한복, 이불, 목가구 등 11세트의 전통 공예품이 전시되었는데, 현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기자회견장에 온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관련 웹사이트의 디렉터도 디자인의 우수성에 놀라 기자를 따로 불러 특집기사를 쓰게 했다. 또 케이블TV SKY에서도 특별취재에 나섰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건축가이며 디자이너인 마리오 벨리니는 “한국 사람들이 지금 같은 시대에 이런 제품으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라고 극찬하며 60여 평에 불과한 작은 공간에 한 시간을 머물다 돌아갔다. 트리엔날레 박물관장은 “한국의 IT나 자동차가 발달한 이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드디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디자이너 손혜원씨는 10년 전부터 밀라노로 출장을 다니면서 한국의 공예품을 갖고 세계 디자인의 심장부인 밀라노에서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쟁력은 전통공예입니다. 전통공예 장인들이 아직도 각 분야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계신데 이것이 나라의 경쟁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만큼 외국인 눈높이에 맞춰 진행한 것도 먹혀들어갔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충실한 도록을 만들어 이탈리아 회사를 통해 홍보했고, 전시공간 디자인은 밀라노의 밀리오레 세르베토 건축 스튜디오에 맡겼다. 평론가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일본 작품은 무겁고 딱딱해 그림자 같은 느낌을 주는데 한국은 정감이 넘치고 개방적이라 태양과 같은 분위기”라고 극찬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전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도자기 등 몇몇 제품은 이탈리아 수집가들에게 팔렸다. 한복을 디자인한 서영희 작가는 트리엔날레 측에서 강의해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한복 차림으로 전시 오프닝에 참가한 김영석 주 이탈리아 대사는 “유럽의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한국 디자인 행사이기 때문에 이 행사가 매우 뜻깊다”며 “이런 섬세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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