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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전문가 대담] 도입 15년 사외이사제 자리 잡으려면

라피 아밋 미국 와튼스쿨 교수(왼쪽)와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회장이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한국 대기업은 해외 진출이 활발한 데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도 큰 글로벌 기업이다. 독립적 사외이사 등 투명한 경영 시스템이 없으면 해외 투자자들이 외면할 수 있고 이럴 경우 한국 주주들도 피해를 본다.”(라피 아밋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대기업 지배주주들은 독립적 사외이사 같은 외부의 입김을 꺼리는 것 같다. 거꾸로 묻고 싶다. 우리 대기업의 규모와 능력을 따져볼 때 독립적인 이사회를 만들어서 안 될 이유가 과연 뭔가.”(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회장?변호사)

대기업 주주총회(이하 주총) 시즌이 막 끝났다. 더불어 기세등등했던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경기 침체와 맞물려 한 걸음 후퇴하는 기미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주총을 전후로 지난 2, 3월 롯데·두산·신세계 같은 대기업 오너 총수가 잇따라 등기이사 또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겉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을 내세웠지만 ‘몸 사리기’라는 비판적 시각도 엇갈린다. 모두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로 귀결된다.

주총에서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관련해 독립적 사외이사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의견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이번 주총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소위 ‘전관예우’가 가능한 공정거래위원회나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 선임이 부쩍 늘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이 위상에 걸맞게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명 경영과 상관관계가 큰 사외이사제도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라피 아밋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다. 세계 각국의 가족경영 연구로 유명하다. 황주명 회장은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대우그룹 법제실장을 역임한 국내 ‘사내변호사 1호’라는 평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다수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법무법인 충정에서 두 사람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아밋 교수=지난해 대선 때부터 경제민주화가 정치적 쟁점이 된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재벌의 공과를 정확히 봐야 한다. 재벌은 기술 혁신과 역동성으로 한국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물론 그 위상에 걸맞게 개선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재벌 규제는 한국 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규제가 돼서는 안 된다.
황주명 회장=아밋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그는 미국·중국·유럽 등 전 세계의 가족 경영 기업 지배구조 연구 분야의 석학이다.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게 자칫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역으로 한국 대기업들이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외이사 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황=외환위기 이후 공기업을 민영화할 때 처음 도입됐다. 기업 투명성 확보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는지 평가해 보면 부정적이다. 제도는 많이 정비됐지만 운영이 제대로 안 된다. 사실 경영진이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얘기도 통하고 반대도 하지 않는 부드럽고 편한 사람들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밋=한국 대기업의 사외이사 활동을 평가하는 좋은 데이터가 하나 있다. 2011년 5월부터 2012년 4월까지 1년간 상장사 이사회 안건 5700건을 전수로 검토한 결과, 사외이사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단 36건으로 0.6%에 그쳤다. 누가봐도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일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주주와 관련 있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뽑는 자체가 이해관계 상충에 해당된다.

-문제가 되는 지배구조는 어떤 게 있나.
아밋=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 중 현대엘리베이터 사례가 눈에 띈다. 지배주주가 계열사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위험성 높은 파생상품 계약을 했다. 이사회에서 이에 반대한 2대 주주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했고 사외이사들의 문제 제기도 없었다. 해외에선 찾기 어려운 사례다.
황=저축은행 사태는 독립된 사외이사가 없는 지배구조가 어떤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개선이 필요한가. 참고할 만한 사례는 있나.
아밋=사외이사는 독립성은 물론이고 회사의 전략 또는 관련 사업에 대한 법제도까지 훤히 알고 있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선임돼야 한다. 이들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까지 그렇지 못해 개선의 여지가 크다. 미국에도 오너 가족이 지배하는 대기업이 꽤 있다. 포드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포드의 여러 기업 지표를 분석해 보면 가족 기업이 아닌 회사보다 더 투명하다. 그 이유는 이사회에서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경영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염려해 항상 신경을 쓴다. 지배주주 가족이 선임한 이사보다 독립적 사외이사가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
황=한국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약하다는 점에 동감한다. 왜 이렇게 됐는지를 따져보자.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심 없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사외이사를 구하려고 해도 누가 적합한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대안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시민단체 같은 데서 적합한 사외이사 후보자들을 모아 인재은행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적합한 사외이사 후보자들을 모아, 교육도 시키는 거다. 1만 명 정도 1차 후보자 인재은행을 만들고, 기업들은 그들에 대한 인터뷰와 배경 조사를 통해 후보를 추리는 것이다.
아밋=사외이사 인재은행 아이디어에 동의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한국 내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시각에서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황=처음 사외이사를 뽑을 때는 경영진에서 쪽지에 이름을 써서 ‘아무개를 사외이사로 시키라’는 방식이 많았다. 지금은 공시를 한다. 이걸 더 발전시키자. 사외이사 인재은행에서 몇 명의 후보를 뽑고, 선임 전 충분한 기간을 두고 사외이사 후보자 명단을 공시한다. 사외이사 후보자 A는 대주주와 어떤 관계이고, 어떤 분야 전문가라는 점 등을 청문회 하듯 검증할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모든 기업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공기업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사외이사 경험이 여러 번인데,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냈나.
황=처음에는 쓴소리 많이 했지만, 경영자나 다른 이사들이 대부분 거북해했다(웃음). 사외이사 임기는 3년인데, 첫해는 강한 의지로 일한다. 2년째가 되면 ‘기업이 알아서 잘하는데 이견을 내봐야…’ 하고 넘어간다. 3년째가 되면 재선임을 염두에 두면서 몸을 사리게 된다. 사실 사외이사 제도는 그동안 많이 발전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역할을 하려면 마련된 절차를 철저히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나 정부의 정치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사외이사 스스로 투명경영 의지를 인식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 민영 대기업과 비교해 보면.
아밋=중국은 정부가 통제하는 국영 기업이 많아 직접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중국의 민영 기업들 중에도 몇몇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전자회사 하이얼은 중국 내수시장을 위한 자체 이사진 외에도 글로벌 이사진을 충원한다. 통신기업 화웨이도 외국인 이사진이 포함돼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기업들의 역량이나 성과는 아직 한국 대기업에는 못 미친다. 다만 한국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더 필요하다. 독립적인 사외이사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


이승녕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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