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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건국 헌신한 유석 조병옥 박사 생가보러 병천 들러볼까

이번호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 계속된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어사의 이야기를 듣고 비밀결사대 신민회를 조직한 이동녕 선생의 일대기를 접한 뒤 대한민국 건국에 그 이름을 남긴 조병옥 박사의 생가를 둘러보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그 어느 때 보다 거세지고 있는 요즘, 나라 사랑의 마음을 다시 한번 일깨울 수 있는 뜻 깊은 나들이가 될 것이다.



백순화 교수와 떠나는 천안이야기 여행 ⑨

정리=최진섭 기자 , 사진·도움말=백순화 백석대 교수



◆박문수 어사 묘



박문수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호는 기은, 사후 시호는 충헌이다. 병조판서, 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까지 벼슬이 올랐다. 탕평책을 편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인물이며 당파 싸움의 근원지가 됐던 안동서원을 철폐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암행어사로 더욱 유명하다.



어사 박문수의 묘는 동남구 북면 은지리 은석산 자락에 있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지혜가 명석하고 기지가 뛰어났으며 세무행정과 군사행정에 기여한 공로가 많았다. 암행어사 직책을 맡았을 때에는 곳곳을 떠돌며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어려운 백성의 구제에 힘쓰는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영남암행어사, 충청도암행어사 등을 거치며 당파 싸움에 휩쓸리지 않았고 욕심 없는 정치를 한 인물이다. 묘 앞에는 화강석으로 된 무신석 두 개와 상석, 오른쪽 정면에 묘비가 있다.



묘서에서 약 1㎞떨어진 곳에 고령박씨 종중재실이 있다. 종중재실은 박문수의 제사를 모신 곳이다. 그가 말년에 기거했다는 고령박씨 종중재실 담장 옆으로 박문수어사 기념유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교지·관복·마패·전적류 등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 이동녕 선생 생가지



구한말 독립 운동가였던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가 터는 목천읍 동리에 있다. 이동녕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 용정촌으로 망명했고 1907년에 귀국해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비밀결사대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이동녕 선생은 1893년 원산에서 부친이 운영하던 광성학교에서 육영사업을 시작으로 민족주의 교육을 전개해 나갔다. 한때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대성학교를 세워 청년교육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어 191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광복투쟁을 주도적으로 담당할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했다. 석오 선생은 일찍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교육 사업을 지속해온 민족의 교육자였다.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의정원 의장을 지냈고 후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주석을 겸임했다. 1928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해 이사장이 됐고 1935년 한국국민당 간부로 활약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939년 김구와 함께 전시내각을 구성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중국 사천성에서 병사했다. 1962년에 그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다.



이동녕 선생 생가지에는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생가지 입구에는 생전에 자주 인용한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의 ‘산류천석’을 새긴 가로3m×세로5m 규모의 휘호석이 있다. 생가지 안으로 안채와 문간채, 우물, 천년 쯤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건물의 전체 평면은 ㅁ자형이며, 안채와 일자형 문간채가 어우러져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생가마당에는 의자에 곧게 앉아있는 석오 선생의 동상을 볼 수 있다.



◆ 조병옥 박사 생가지



항일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및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큰 업적을 남긴 유석 조병옥 박사.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 병천면 용두리에 생가(사진)가 있다.



조병옥 박사는 1909년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했고 1914년에 연희전문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미했다. 와이오밍 고등학교를 거쳐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마침내 1925년 컬럼비아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조병옥 박사는 독립 운동가였으며 또한 정치가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창당했고 한국 전쟁 때 내무부장관, 이어 제 3, 4대 민의원을 지냈다.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1960년 2월 15일 불의의 신병으로 67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조병옥 박사에게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현재 생가는 복원돼 있다. 원래 초가였던 생가가 이후 기와집으로 변형된 것을 문중의 고증을 받아 다시 초가로 복원한 것이다. 생가는 일자형 초가와 헛간·외양간으로 사용하는 부속사와 우물 등이 있는데 그의 공적을 길이 선양하고 후세에 본받을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생가를 복원했다. 유관순 열사 생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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