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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협곡 따라 철컹 철컹, 열차만 허락된 비경 속으로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에서 경북 봉화군 분천역까지 심산유곡을 헤집고 달리는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시속 30㎞로 느리게 달려 운행 중에도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경치 구경을 할 수 있다.


1963년 영동선(강릉~영주)에 통합된 옛 영암선 구간은 강원도 철암에서 경북 영주를 잇는 철길이다. 광복 후 태백산맥 깊숙이 묻힌 석탄을 실어 나르느라 산간오지를 헤집어가며 만들었다. 덕분에 전국 기찻길 중 경치 좋기로는 단연 첫 손에 꼽힌다. 특히 외딴 간이역이 이어지는 경북 봉화군 승부역에서 분천역 사이가 압권이다. 깎아지른 협곡과 굽이치는 낙동강이 때 묻지 않은 비경을 자아낸다. 자동차는 감히 접근조차 힘든 오지다. 오로지 기차에만 허락된 정취다. 간이역에 서는 기차가 적어 그마저도 스쳐 지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12일 코레일(korail.com)이 정식 운행을 시작한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가 반가운 이유다.

코레일 ‘V-트레인’ 오늘부터 운행



지난달 29일 시운전에 나선 V-트레인에 올랐다. 철암역을 떠난 열차는 승부~양원~분천에 이르는 총 27.7㎞ 철길을 시속 30㎞으로 느릿느릿 운행했다. 객차 좌우측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너른 창문이 있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정겨운 산촌 풍경이 품 안에 와락 안겨왔다. V-트레인을 타는 건 철길에 깃든 질박한 삶을 가만히 품어가는 일이었다.



V-트레인은 창문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전망석이 있어 협곡 풍광을 즐기기에 좋다.
추억 속으로 달리는 열차



지난달 29일 오전 9시30분쯤 V-트레인이 철암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호의 희고 검은 줄무늬를 새긴 디젤기관차 뒤로 진분홍색 객차 3량(총 158석)이 쪼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앙증맞은 외관이 장난감 기차 같았다.



열차 안은 그야말로 고색창연했다. 선명한 하늘색 천장엔 구식 선풍기가 달려 있고 초록색 등받이 좌석은 나무 벤치를 닮아 있었다. 객차마다 묵직하게 놓인 목탄 난로에선 감자·고구마가 구수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은 선풍기로, 겨울은 난로로 난다는 게 이 복고풍 열차의 방침이었다.



철암역을 출발한 열차가 석포역을 지나쳐 승부역으로 향했다. 열린 창 틈으로 눈부신 햇살과 함께 산들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발상 참 좋다.” 오덕원(77)씨가 아내에게 말했다. 철도 관련 일만 40년 넘게 했다는 오씨는 국립철도고등학교(현 국립철도대학교) 교사 시절 제자의 초대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 간이역은 기차가 서로 갈 길을 비켜주느라 잠시 서던 데였어요. 간이역만 다니는 관광열차라니…. 시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느껴져요.”



승부역에 5분여간 정차한 열차는 다시 다음 역을 향해 협곡을 내달렸다. 처얼컹~ 처얼컹~. 기차 바퀴가 선로 이음매를 지나는 규칙적인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기차들이 속도가 빨라지고 선로가 직선화되면서 거의 사라진, 오래된 철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오씨가 지그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짧은 터널의 어둠이 경쾌한 스타카토 리듬처럼 다가왔다 멀어졌다.



객차마다 놓인 난방용 난로.


주민의 애환 서린 간이역 부할



“양원역입니다!” 1970년대 복장의 승무원이 우렁차게 외쳤다. 승강장에 내려서자 번듯한 기차역은 오간 데 없고 자그마한 대합실만 홀연히 서 있었다.



사실 양원역은 정식 역이 아닌 임시승강장이다. 55년 영암선이 개통될 당시에는 그마저도 아니었다. 철길과 나란히 흐르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서쪽은 경북 봉화군 원곡리, 동쪽은 경북 울진군 원곡리다. 처음에 ‘양원’, 즉 양쪽 원고리 주민들은 마을을 관통하는 기차를 빤히 보면서도 승부역이나 분천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그때마다 한참을 에둘러 가는 산길 대신 기찻길을 되밟아 갔다.



“컴컴한 터널을 지날 땐 작대기로 벽을 짚으며 갔지요. 철교를 지나다가 기차가 오면? 어떡해요, 뛰어 내려야지.”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마흔네 살 마을 토박이의 얘기다. 이웃 춘양면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시장 봐온 보따리는 원곡리를 지날 즈음 차창 밖으로 던져두고 승부역에선 몸만 내려 짐을 되찾아갔다고 한다. 가마니가 수풀에 찔려 쌀을 죄 쏟기도 했고, 애써 빻은 밀가루를 낙동강에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애먼 목숨을 잃은 이도 부지기수다. 88년 마을 소년이 쓴 눈물의 탄원서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양원역에도 하루 서너 번은 열차가 서게 됐다. 마을 주민들이 추렴해 시멘트를 사 승강장도 만들고 대합실도 지었다.



중부내륙 순환열차 (O-트레인) 표지판. O-트레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에도 선다.
V-트레인이 다니면서 양원역엔 이제 하루 열 번이나 기차가 선다. “값이 비싸 주민들은 많이 못 타겠지만 마을을 찾는 손님은 늘겠지요. 그러니 먹일 (음식) 준비를 해야지.” 양원역 옆, 95년 폐교된 삼근초등학교 원곡분교에 간이식당을 짓던 마을 노인이 순박하게 말했다.



철암역을 떠난 지 한 시간여 됐을까. V-트레인의 마지막 역인 분천역에 다다랐다. 역에서 만난 김인호(49) 코레일 경북본부장은 “양원리 옆 비동에도 임시승강장을 세워 관광객을 위한 역간 트레킹 코스를 조성할 예정”이라며 V-트레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글·사진=나원정 기자



●이용 정보



V-트레인을 타려면 일단 영동선 분천역이나 철암역에 가야 한다. 분천역에서 오전 8시50분부터, 철암역에서 오전 10시30분부터 각각 세 시간여 간격으로 출발해 하루 3회 왕복 운행한다. 어른 기준 편도 8400원.



서울에서 기차로 분천역·철암역에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청량리역에서 오전 10시40분 무궁화호를 타고 오후 1시 23분 영주역에 도착해 오후 1시35분 분천역·철암역행 무궁화호로 환승하는 방법이다. 환승 포함, 어른 기준 편도 1만5300원.



둘째, 중부내륙 순환열차(O-트레인)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O-트레인은 겨울철에만 이용할 수 있었던 ‘환상선 눈꽃열차’ 구간을 연중 운행하는 관광열차로, 12일 V-트레인과 함께 출시됐다. 하루 네 편 운행하는데, 어느 열차를 타든 분천 또는 철암역으로 갈 수 있다. 오전 7시45분 O-트레인 열차 두 편을 하나로 연결해 서울역을 출발, 제천역에 도착해 다시 두 편으로 분리한 뒤 한 편은 영월~태백~영주~단양 방향으로, 다른 한 편은 반대 방향으로 순환하고 다시 제천역에 돌아온다. 나머지 두 편은 각각 영월과 단양 방향으로 순환선을 돈 뒤 제천역에서 하나로 연결해 오후 10시5분쯤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제천 순환 구간을 통틀어 모두 14개 역에 정차한다. 열차 한 대별 객차는 총 4량, 205석 규모다. 파티션이 쳐진 오붓한 연인·가족석과 창문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전망석, 아늑한 카페칸도 있다.



열차 운임은 어른 기준 서울~제천 1만8900원, 제천~제천 1회 순환 2만7700원. 여행패스를 구입하면 더 저렴하다. 권종별 정해진 기간에 O-트레인·V-트레인뿐 아니라 중앙선·영동선·태백선·충북선·경북선 등 중부내륙 산간지방을 누비는 일반 열차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 어른 기준 1일권 5만4700원, 2일권 6만6100원. 1544-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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