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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 내용과 구형량 판이한데도 3건 모두 4년형

최근 서울의 한 형사법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증인으로 나온 60대 남성이 긴장한 탓인지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이를 보다 못한 40대 판사가 “아까와 말이 다르잖아”라며 다그쳤다. 초로의 남성은 머리를 조아리며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변호사는 “막말 파동으로 대법원 징계가 나오거나 하면 잠시 잠잠해지다가 며칠만 지나면 또다시 군림하고 윽박지르는 고압적 행태가 재발한다”며 “우리나라 판사들, 아직 멀었다”고 한탄했다. 판사 출신 중견 법조인은 “그래도 요즘 판사들은 막말을 하면 언론에 오르내릴까봐 소송 당사자들에게는 조심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변호사들은 법원 입장에서는 ‘을’의 처지이기 때문에 몸종 다루듯 함부로 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막말, 전관예우, 돌출판결, 여론 눈치보기 … 논란의 중심, 사법부

지난달 법관징계위원회는 형사사건 피고인에게 막말을 해 논란을 빚은 고양지청 최모(47) 부장판사에게 감봉 2월의 징계를 내렸다. 최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는 막말을 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60대 여성에게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말했던 서울동부지법 유모(46) 부장판사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국민 43.5% “법원 재판·판결 불공정”
막말 판사뿐 아니다. 요즘 사법부는 툭하면 구설의 한복판에 서기 일쑤다. 1000억원대 학교 예산 횡령 혐의로 기소된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가 지난 2월 병보석으로 석방되는 과정에서는 향판 폐단과 전관예우 논란이 벌어졌다. 이씨의 변호사 A씨는 광주지법 관내에서 검사와 판사를 지내다 지난해 퇴임한 뒤 순천에서 개업한 지역법관(향판) 출신이었다.

돌출 판결도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의 단독판사는 중국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30억원을 챙긴 혐의(도박 개장 등)로 기소된 최모(34)씨에게 “이미 거악(巨惡)을 범하고 있는 국가의 손으로 피고인을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복권·경마·경륜·카지노 등 사행산업을 운영하는 국가가 개인의 도박장 영업을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개인 소신을 지나치게 앞세운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법원은 “이 같은 사건들이 모두 개별적인 사항이어서 책임이 있더라도 판사 개인이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사법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한국비교형사법학회 회장인 강릉원주대 오경식(법학과) 교수는 “사법부가 헌법에 부여된 권한과 독립성을 철저하게 향유는 하되 여기에 대해 견제받을 제도적 장치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진단했다.

사법권력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1년 9월 취임한 뒤 사법부는 시민사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전국의 20대 이상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법원의 재판·판결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43.5%로 나왔다. 아직도 절반 가까운 국민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원이 국민의 불신을 사는 이유는 고압적 태도, 전관예우, 들쑥날쑥 판결 등이 꼽히지만 정치권이나 여론, 그리고 법원 내부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지적도 많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언론 인터뷰에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한화 김승연 회장의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새로 심어줬다. 과거 경제가 어려울 땐 신분이 양형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런 영향력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의 ‘구속지침’과도 같은 이런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 법조계에서 일었다. 실제 양 대법원장의 발언 이후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시도상선 권혁 회장이 연이어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됐다. 서로 다른 재판부가 다뤘고, 기소 내용과 검찰의 구형량이 다른데도 세 사람 모두 똑같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항소심에서 다퉈야 할 쟁점이 산적해 있는데도 인신구속을 강행해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한 점은 문제”라며 “사법부가 대기업 범죄는 무조건 엄벌해야 한다는 정치권이나 법원 상층부의 기류를 수용한 신종 여론재판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기업 총수의 양형에 영향을 미친 배임죄만 해도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판사는 등산해도 서열 순으로 오른다?
법원이 지난해 대선을 전후로 높아진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를 판결에 반영했다는 얘기다. 국민 여론도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형정원 조사에서 국민의 41%가 ‘권력으로부터 중립적이지 않다’고 답변했다. 검찰(30.3%)과 경찰(31.5%)에 비해 중립성이 더 의심받는 점은 충격적이다.

법원의 법정구속은 2008년 7940명, 2010년 8468명, 지난해 8948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반면 검찰이 구속한 피의자는 2009년 4만2732명에서 지난해 2만7341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사법부가 정치적 코드에 기대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시도상선 권 회장은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 두 차례 청구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지만 1심에선 법정구속된 경우였다.

사법부의 특권의식에서 문제점을 찾는 시각도 많다. 민만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젊었을 때부터 변호사나 다른 사회 생활 없이 바로 법관으로 임용되면서 특권의식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일정한 변호사 경력을 가진 사람을 판사로 임명해 법조 일원화가 뿌리내리면 이런 폐단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특권의식은 기수로 상징되는 서열주의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장은 식사할 때도 좌우 배석판사들 가운데에 앉고, 등산을 갈 때도 서열순으로 올라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또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내려오는 사법 관료제는 사법부의 특권의식을 지켜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대법원의 행정조직인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하나회’(박민식 새누리당 의원)로 지목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사법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건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사법부에 대한 통제를 이루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국민참여 재판제 확대 ▶법조 인력의 다양성 확보 ▶법관 인사 방식의 개선 등이 제시되고 있다. 또 하급심 판결문을 모두 공개하는 것도 사법부에 대한 견제장치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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