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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40년 보따리 장사의 초심

7살에 출가해 올해 80세가 된 노스님의 생신날이었다. 흩어져 있던 가까운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노스님은 대단한 명성이 있는 분도 아니고, 젊어서 공부를 많이 했거나 왕성한 포교활동을 한 분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수행하고 일상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기도하고 정진해 왔다. 그래서인지 외려 노스님의 뒷모습이 더욱 존경스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출가해 한 길을 올곧게 간다는 건 쉽지 않다. 머리 깎은 형상을 유지하는 것이 그야말로 별일 아닌 게 아니다. 출가자에겐 항상 남들보다 엄격한 잣대가 준비돼 있다. 하물며 수행자다운 면모를 견지해가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내기란 다시 말해 뭣하겠는가. 끝없는 인내심과 자신과의 싸움, 이것이 수행이다.

언젠가 학회를 마치고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선생님의 퇴임 축하를 겸한 자리였다. 평생을 시간강사만 했다는 그분은 유행에 뒤처진 듯 보이는 양복과 넥타이 차림에, 머리는 희끗희끗해 길거리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40년을 보따리만 들고 다니며 이 학교 저 학교 강의만 해서 일생 강사 타이틀을 떼지 못한 사람입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일생 동안 제가 한 강의 시간이 여기 계신 그 어느 교수님보다도 더 많을 겁니다.”

여기까지 얘기하자 모임 장소가 떠나갈 정도로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옆에 앉아있던 교수님도 “정말 대단해. 저렇게 살려면 소신이 있어야지”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쉬이 끊이지 않는 박수 소리에 그 선생님은 몇 번이나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소감을 이어갔다. “이렇게 초라한 강사의 마지막 자리를 함께해 주신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생 동안 교단에 서서 교수가 아닌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육에 대한 저의 소신이고 자부심입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강의했습니다. 다만 제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일생 동안 제게 바가지만 긁던 마누라가 요즘 들어 계속 잘해주더니, 제가 좀 안쓰러웠는지 이제 그만두고 쉬라 하지 뭡니까. 그래서 저도 이제 이만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너무 늙어서 인기도 없고, 거기다 허리까지 아파서 서서 강의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또 한번 웃음과 감동의 박수가 터졌다. 선생님의 얼굴도 감회로 흔들렸다. 여러 차례 감사인사를 하고 그는 다시는 오르지 않을 강단을 내려왔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에 대한 온갖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초연했다. 자리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맑고 밝은 빛으로 화사했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퍼질 수 없어도 덕 있는 이의 명성은 바람을 거슬러 온 세상에 퍼지는 법, 나는 이분이야말로 그런 분이 아닐까 싶었다.

급변하는 사회, 우리의 마음은 쉬이 변한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물건까지도 말이다. 뭐든 소유한 뒤에는 금세 싫증을 낸다. 처음에 간절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흔들림 없던 초심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갈 길이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오늘은 잠깐만 뒤를 돌아보시라.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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