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대통령이 꼭 IT 알아야 하나

2012년 2월, 서울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중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서류를 받기 위해 아는 대학원생을 만났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일 시위가 계속되던 당시 그는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그랬듯 ‘이상적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에게 “당신과 당신 친구들은 무엇에 반대하는가”라고 물었다.

 대답 중 한 토막이 놀라웠다. “국가 지도부가 정보기술(IT)을 잘 모르는 걸 좌시할 수 없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세대가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는 지도자는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악관을 나온 뒤에야 휴대전화 사용법을 배웠다는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더구나 요즘은 세상에 출시되는 첨단기술 제품이 셀 수도 없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지식은 국가 운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그 대학원생의 말엔 확실히 깊이 따져볼 만한 점이 있었다. 한국은 그중 좋은 사례다. 생활 전반에서 유비쿼터스 기술을 구현하고 IT 제품 생산과 소비가 국가 경제발전 전략의 일부가 됐다. 나라가 크지 않아 전국을 광통신망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게 IT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영토가 수천㎞에 걸쳐 펼쳐져 있고 사람이 없는 곳도 많은 러시아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의 급한 성격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인데,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서두르는 법이 없는 러시아인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선 문자 그대로 네트워킹 소사이어티가 되었다. 아직까지 필자에게도 나이 지긋한 한국 남성이 ‘카카오톡’의 수신음을 듣자마자 서둘러 문자판을 누르고, 노인들이 모바일 통신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러시아 노인들은 일반 전화기조차 사용법을 오래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이 일반화돼 있다. 전엔 흡연 여부나, 어떤 옷을 입는지에 따라 그룹이 나누어졌다면, 요즘에는 어떤 SNS에 가입해 활동하는지에 따라 그룹이 나뉜다.

 선거에도 SNS가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한국의 총선에서는 종종 SNS 덕분에 청년층의 투표율이 기록적으로 높아져 소위 ‘민주진영’이 이길 때도 많다. 연예인들이 투표 인증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게시해 청년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후보자들은 IT와 SNS를 적극 활용해 ‘나도 현대적이고 앞서가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펴기도 했다. 이같이 IT는 일반인이나 정치인 모두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IT는 사람의 자유도 뺏는다.

 24시간 내내 휴대전화의 메시지에 반응하게 만들어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할 시간을 못 갖게 만든다. 쉴 시간을 가질 권리를 빼앗긴 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움직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자동화될수록 인간은 덜 중요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버스가 3분 뒤 도착한다는 걸 알게 되면 편리하기만 할까. 그 정보에 묶여 주변을 둘러보거나 생각해볼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문제 해결을 위해 1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데 쓰고 최종 해결엔 5분만 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화된 체제가 우리로 하여금 재빨리 문제 해결의 알고리즘을 찾아 움직이게 만들며, 나머지 시간은 메일함을 확인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는 데 허비하게 만든다. IT는 가상세계를 창조했고, 그 가상세계 속에서 인간은 중심에 있지 못하다. 그래서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은 IT보다 국민에 대해 더 고민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연구교수로 부임.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